[아트코리아방송 = 김미영 기자] 새해 여수 디오션호텔 갤러리(박은경 관장)에서는 금보성 작가의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이 열린다. 

금보성 작가는 신학교 입학하던 스므살에 첫 전시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한글을 서양화로 뿌리내린 39년 동안 78회 개인전을 하였다. 이미 사십대에 한글회화의 거장이라 하였고, 최근에 금보성 작가는 한글회화의 제왕이라 한다. 40년을 한 길로 걸어왔던 것은 겨자씨 만한 믿음과 신앙이 녹아 있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측 첫 동문상을 목사가 아닌 화가인 금보성 작가가 선정되었다. 한국인의 모국어인 한글을 회화로 작업하였던 것은 어려서 시를 썼으며, 시를 해체하여 색을 입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기에 하는 것마다 최초였고 기록이 되었다.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신학원 졸업 후 지켜보던 교수님이 문화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금보성 작가는 해외에서 15년간 미술관 박물관 작가 작업실 등 현장에서 작가의 삶과 전시 등 경험을 축적하였다. 귀국 후 종로구 평창동에  ‘창작의 수고로운 짐을 진 자유로운 영혼의 쉼터’ 금보성 아트센터를 개관하였다. 고 김흥수미술관으로 전시와 영재교육에 힘썼던 김흥수 화백의 정신처럼 교육과 철학을 기본으로 전시를 기획하였다. 12년 동안 26,000명의 작가 초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화랑이나 갤러리에서 전무한 기록이다. 개인전.그룹전.동문전.해외작가. 코리아아트페어.화동페어 등 한국미술 100년 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적 행보였다. 정부도 할수 없는 일들을 작은 아트센터에서 뚜벅뚜벅 진행중이다. 

금보성 작가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소통과 나눔에 대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아트센터는 90% 무료대관이며, 지정한 작가 외 작품 판매 비용도 받지 않기에 일반적 화랑이나 갤러리로서 접근 방식이나 기업이나 정부지원 받는 미술관 처럼 하지 않고 독립적이다.  금보성아트센터의 지원 프로그램은 한국작가상.청년작가상. 신진작가상.청년조각상.공예작가상.직장인신춘문예상.서정문학상. 현대시문학상.문학평론가상 등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그외 1년에 2천여명의 작가 전시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건강한 뿌리를 만들고자 철학모임인 개신포럼과 우리문화연구회 등 철학과 석학들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시로 등단한 시인으로 화가로 전시기획자로 음암동 성도교회 성도로 작은 교회에서 10여년을 봉사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하였다면, 금보성 작가는 훈민정음의 모음과 자음의 의미와 속내를 드러내는 획기적인 일을 하였다. 한국인으로서 한번도 생각치 못했던 모음과 자음의 의미 부여는 또 하나의 반포와 같은 의미이다. 화가로서 한글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으며, 우리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만든 한글을 현대회화로 변환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수 있다. 작가의 상상으로 시작한 해학적이며 민족의 놀이와 신명을 예술로 철학으로 추출한 것은 현대미술에 대한 명료한 개념을 정리하였다고 한다.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작품보다 철학적 이론이 먼저다러고 할만큼 이론 정립에 오랜 시간 준비하였다. 
문자로서 고정된 한글을 미술의 장르에 탑재시켰으며, 현대미술로 끌어 올린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금보성 작가는 ‘이제야 겨자씨가 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듯 싶다’고 한다. 한글이 한국인에게 친숙하지만 예술로 받아들이는데 보이지 않은 선입견과 경계가 있었다. 처음 한글을 접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다는 것은 금보성아트센터 존재감으로 느낄수 있다. 한글이 종교처럼 소통하게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생수가 되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을해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데 사용하지만 그는 반대로 살아왔다. 작가로서 성공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누고 베푸는 존경할만한 작가가 없는 것이 한국미술의 주소다. 

그만큼 성장이 더딘 이유는 표절과 유행에 민감한 것은 철학적 사고없이 그림만 가르친 미술대학의 인성이 부족하다고 볼수 있다. 이제 한글이 대중적 키워드로 뿌리내렸기에 감사하지만 39년전에는 한글을 그린다는 이유로 배척과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럴지라도 앞으로 가는 줄을 선택하지 않고 ‘나’다운 ‘나’만의 길을 찾고자 했다. 한글회화에서 현대미술로 성장한 금보성 작가는 한글로 보여 줄수 있는 모든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회화.조형.설치.영상.건축 등이다.  새해 여수 디오션호텔 갤러리 박은경 관장(은파교회 권사)의 초대로 두달간 전시를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아닌 그때마다 길을 열어 주신 것이기에 걸어가고 있을뿐이다고 한다.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지켜낸 한글회화'전

금보성 작가

홍익대일반대학원 박사수료,
한국예술가협회 이사장
금보성아트센터관장
백석대학교 교수.
시인, 화가,
개인전78회, 시집 7권 상재.\
코리아어트페어 대표
전시기획 5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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