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Ⅴ
관념은 로크의 경험론의 체계 가운데에서 이러한 승인을 받고 있지만, 개념은 보다 빈약해서 불확실한 기반 위에 설치할 수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존립이나 타당성을 뒤흔들기 위해서는 일격으로 충분하다. 한편으로 버클리(G·berkely)는 이러한 조건의 승인마저 철회함으로써 개념에서 인식의 자립적인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나 오류의 원천을 보는 것에 의해 로크보다 한층 명민하게 조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모든 진리의 근거가 단순한 감각 여건 가운데 있다고 하면 이 근거를 버리자마자 단순한 가상상(假象像) 밖에 생길 수 없게 된다.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Ⅴ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Ⅴ

 

버클리의 개념일반에 대해 내려지는 재결(裁決)에서 모든 종류의 논리적 위계의 개념이 포섭된다. 이 재결이 곧바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일견(가장 정밀)으로 보이는 개념, 즉 수학이나 수학적 물리학의 제개념이다. 버클리는 ‘보이는 것만 있다. 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것은 표상 또는 관념이다. 따라서 버클리의 주장은 ‘표상(혹은 관념)만 있다.’또는 ‘표상(혹은 관념)이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각은 외부 대상과 표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즉, 둘 다 있다는 것이 상식과 일치한다. 하지만 버클리는 표상이 아닌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외부대상과 표상 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당신과의 관계다. 당신 앞에 당신의 연인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고 하자. 그리고 반복적으로 눈을 깜박거리면, 분명 무엇인가는 계속 있고, 무엇인가는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다행스럽게도 사랑스런 당신의 연인은 당신이 눈을 감든 뜨든 상관없이 당신 앞에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눈을 감으면 사랑스런 연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눈을 뜨면 사랑스런 연인의 모습은 나타난다. 표상은 당신 연인의 모습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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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외부대상은 당신의 연인 그 자체에 해당한다. 표상과 외부 대상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당신에 의존하는지 여부다. 당신의 연인 그 자체의 존재는 당신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연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당신에게 의존한다. 철학에서는 당신과 같이 지각하는 것을 지각 주체라고 부른다. 그럼 표상은 지각 주체에 의존하지만, 외부대상은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버클리가 외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렇듯 지각 주체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각 주체에 의존한다. 그것들의 개념은 모두 실재나 사물의 진리나 본질에 통하는 길이 아니라  거기에서 일탈하는 길이다. 그것들의 개념은 마음을 예민하게 하는 경우지만 직접적인 지각에 있어서 얻어지는 단지 하나의 참된 현실에 대하여 마음은 둔감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Ⅴ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Ⅴ

 

그러나 개념에 대한 철저한 거부에서야말로 역사적으로 보아도 체계적으로 보아도 사고가 독특한 회전(回轉), 참된 급전(急轉)이 준비된 것이다. 버클리는 비판에 의해 개념의 근원에 타격을 준다고 믿고 있지만, 이 비판을 최후까지 생각해도, 오히려 개념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적극적 계기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것도 명맥이 끊어지는 개념이 아닌, 오히려 예리하게 제거되는 것은 지금까지 몇 세기에 달하는 논리학과 심리학의 전통에 의해 개념(一般表象)이 ‘general idea(일반개념)’과 결부시킬 수 있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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