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엄기옥 이석준 이정희 정영희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류가헌에서는 2023년 12월 12일(화) ~ 17일(일)까지 김경희, 엄기옥, 이석준, 이정희, 정영희 작가의 sUJI sALON + 꿈꽃팩토리12기 사진전 '숨 깃든 숲'이 전시 중이다.


오랫동안 땅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는, 어느 순간 욕망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생명의 원천이 뒤바뀌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할 때, 저 멀리 던져버린 소소한 주변과 자연과의 공명이 우리를 다시 깨운다. 나이 먹음을 넘어선 지혜와 이타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채집해 시각적 예술적 언어로 바꾸는데 다가가고 있다.

 엄기옥의 ‘이식된 광합성’은 아파트 주변에 이식된 식물들을 통해 자연에 관한 인간의 욕망을 탐색한다. 함부로 잘리고 생명을 다한 식물을 주어다 핀홀 카메라로 찍어서, 아름답고 아스라한 그들의 생명 초상을 그려낸다. 

 이정희의 ‘식물 반려’는 일상의 공간에 함께 하는 식물들의 다양한 아픔과 상처를 돌아보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편의에 의해 그들을 들이고 버렸는지를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다시 품어 아름답게 이별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석준의 ‘조.화’는 우리의 애경사에 등장하는 조화가 축하의 메신저로 화려히 개화했다가 소멸되고 그들을 무한 생성하던 화원은 개발의 등쌀에 못 이겨 무덤이 되는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들의 욕망이 조화처럼 화려함이 무한하기를 바라며 만들어진 폐기 불가의 플라스틱 같은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정영희의 ‘낯선 중독’은 우연한 기회에 받아들인 두 생명체와의 동행을 통해 낯선 행복감에 중독된 자신과 그 행복감이 그들에게도 같이 하기를 바라는 이타의 마음이 마이크로렌즈를 통해 섬세하게 클로즈업되었다.
 
 김경희의 ‘오래된 미래’는 사라져가는 을지로 철공소 골목의 가슴 따스한 이야기이다.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얼마나 많은 미래가치를 갖게 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도시개발은 몹쓸 외형을 가져, 존치되어 좋을 미래적 가치를 대안 없이 깨부순다. 이 부조화한 시간의 기억들은 부재를 통해 가슴속에 시리게 박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들의 다양한 이야기의 공명이 작은 픽셀에 고정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음으로써, 불특정 다수에게 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진이 멋진 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물음과 이미지화 과정 중 반복된 행위의 체화를 통해 위의 작업자들처럼 세상의 틀걸이를 넘어 ‘숨 깃든 숲’에 빛을 그려낸다는 데 있다. 모두 한 번쯤 도전해봄 직하지 아니한가.

오래된 미래-김경희
오래된 미래-김경희

서울 을지로 철공소 골목은 나에게는 낯선 곳이다. 대부분 40~50년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아온 장인들이 있는 곳, 골목 여기저기에 삶의 흔적들이 있었다. 난 여기서 먼저 바라보고 인사하고 말을 걸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투박한 철공소 골목에서 사장님들의 따뜻함과 감동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작업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시는 사장님, 이 골목 곧 사라진다고 열심히 사진 찍어보라는 사장님, 집집이 작업하는 작품을 설명하며 이 골목의 역사를 설명해 주시는 사장님, 커피 한잔 마시고 사진 찍으라며 배달 커피를 주문해 주시는 사장님, 막걸리에 순대로 휴식을 취할 때 함께 먹어 보라는 사장님, 트럼펫을 연주해 주시는 사장님, 딸에게 카메라를 사주고 싶다며 카메라에 관해 물어보시는 사장님.

을지로 철공소 골목에서 장인들의 생생한 삶의 순간을 다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진지함을 담아내고 싶었다. 둔탁한 망치 소리, 불꽃 튀는 소리, 기계 소리, 웃음소리, 음악 소리 등과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순간에 장인의 손과 얼굴에 맺힌 땀과 삶의 흔적들을 담고 싶었다. 한 장의 사진이 오래된 미래의 을지로 철공소 골목에서 따뜻하고, 행복했고,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까지도 추억하며 가슴 깊이 담기게 하고 싶었다.

이식된 광합성-엄기옥
이식된 광합성-엄기옥

나는 편하다는 핑계로 아파트로 이사해 살고 있다.
하지만 답답하다는 이유로 공원으로 산책을 자주 나간다. 어느 날 산책을 하면서 항상 보게 되는 아파트 정원이나 주변 공원의 식물들이 궁금해졌다. 벚나무, 장미, 목련, 살구나무, 라일락, 상수리나무, 귀룽나무, 꽃 사과나무, 맥문동, 방울덩굴, 이팝나무, 구골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무심코 지나칠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그들도 원래 살던 곳에서 원치 않게 이식되어 여기로 옮겨 살게 된 것이다.
이 식물들은 모두 아파트관리실 직원이나 구청 직원들이 관리를 해준다. 작년 늦가을에는 아파트 정원 나무들을 가지치기 한 적이 있다.

아파트 관리인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베어진 가지들이 아파트 도로에 쌓여갔다. 가지치기 된 나무들은 거의 밑줄기만 남아 키가 반으로 줄어버렸다. 잔가지뿐 아니라 큰 가지들도 거의 베어져 버렸다. 가지들이 싹둑 잘려 버린 나무는 뿌리와 큰 줄기만 남아 나무라고 할 수 없는 형상이 되어버렸다. 쳐다보기 민망한 오싹한 느낌마저 든다.

인간 힐링을 위해서 '돌보기와 가꾸기'라는 명목으로 '구속된 자연'을 만들고, 거기에 덧붙여 보기 좋게 만든다고 전지(剪枝)라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상처를 내고 버림을 자행해 버린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밑바닥까지 본 것 같아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인공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회색의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 왠지 불편해진다. 인간의 자연 지배의 욕망이 결국 인간의 파국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진을 통해 아파트 주변에 이식된 식물들의 잎들을 모두 담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조.화 -이석준
조.화 -이석준

동네 한 곳이 조만간 개발이라는 과정에 들어간다. 
소담한 마을이 있고, 조그마한 텃밭이 있고, 꽃들을 파는 화원이 자리한 동네.
개발이라는 바람이 불어 보상금을 받고 한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네를 사진으로 담아 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조화를 주목했다.

다 떠나간 빈 곳인줄 알았는데, 아직도 몇곳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화환을 만드는 화원이었다.

모두 다 떠나기 시작하고, 빈 곳으로 남고, 하우스들이 바람에 뜯겨 폐허로 변하는
그곳에서 화환을 만드는 장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환은 대표적으로 축하와 애도의 상징으로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사라지는 장소에 축하와 애도의 상징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곳은 죽음과 탄생(개업)을 동시에 생산하는 공간이다.
매개체를 만드는 한 사람은 한 공간 안에서 두 세계를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도 개발을 피해가지를 못한다.  이주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한 공간 너머에는 개발된 아파트들이 남은 이들에게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야 되는 
불안한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도 존재의 증거와 부재의 증명이 함께 공존한다.
버려진 조화들이 이곳이 단순한 화원이 아닌 죽음과 탄생을 만들어낸 
장소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버려진 조화와 화환들이 과거의 시간 속에서 존재했던 이야기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증거들을 그 장소는 말해주고 있다.

식물 반려 -이정희
식물 반려 -이정희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면서, 하나둘 식물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꽃들의 유혹에 빠져 가까운 화원에서 장미와 수국도 골라오고, 
이사 가는 이웃이 버리고 간 유칼립투스와 로즈메리를 데려왔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에게 공격을 당해 잎이 찢겨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여인초도 입양했다.
   
어느새 식물들의 상태를 살피는 걸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그들이 목말라 하지는 않는지, 빛을 못 봐 우울해하지는 않는지, 뿌리가 물에 잠겨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지는 않는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우린 교감하며 소통한다. 나는 그들의 몸짓언어를 알아듣고, 그들도 나의 실수를 눈감아 주면서 추억을 쌓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지만, 우리는 그들을 하찮은 소모품으로 여긴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병이 들거나 아프면 뽑아 버리고, 이사 갈 때 있을 자리가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쉽게 버리기도 한다. 식물들도 우리와 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휴식도 하고, 아픔과 상처로 몸부림친다.

이런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어 그들의 초상을 찍었다.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사진으로 담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면서 받은 내 상처와 내 아픔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낯선 중독-정영희
낯선 중독-정영희

어느 날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우리 집에 온 어린 고양이 삐용이와 까망이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나의 생활도 이전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낯선 사람을 싫어하는 특성 때문에 집으로 사람들을 부르지도 않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반해서 고양이에 관한 별다른 상식도 없이 옆에 두었다. 도도하고 새침한 그녀들과 친해지려 노력했고 그 결과 까다로운 고양이들의 집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동시에 전에 없던 괴로운 알레르기 비염이 생겼고 때때로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오는 재채기와 콧물은 정신까지 혼미하게 만들 정도다. 

그럴 때마다 집사로 인정받은 대가라 생각하자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우아한 움직임과 보석처럼 빛나는 신비로운 빛깔의 눈동자에 감탄한다. 뒤통수가 간질거려 뒤돌아보면 어느 위치에서나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고 행방이 묘연할 때도 있어서 오히려 내가 찾아다니기도 한다. 집안 어디엔가 있을 줄 알면서도 이름을 불러 찾아다닌다. 

이쯤 되면 치명적인 고양이의 매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증이라고 봐야될 것 같다. 이따금 창밖을 바라보는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밖에 뭐가 보이지, 밖에 나가고 싶은가, 잠깐이라도 경험했던 바깥의 삶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그저 햇빛을 즐기는 걸까.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뒷모습이다. 내가 고양이들과 함께 살면서 느끼는 포근함과 안정감, 행복감을 우리 집 고양이들도 알아주길 바란다. 내가 그들에게서 받는 마음의 위안을 그들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밖이 그립고 나가고 싶어도 집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집사가 본분을 망각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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