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해作 라팽아질의 노래
박정해作 라팽아질의 노래

                                                         

-라팽아질의 노래-

 

고흐가 밀밭 길로 돌아갈 때

청색시대 피카소

파리 뒷골목에서 사랑을 찾았네

날쌘 토끼 냄비에서 뛰쳐나오는 

주점 간판 라팽아질

가등이 켜지고

에디뜨 피아프가 부르는 장밋빛 인생의 노래

모퉁이 길을 백색으로 점유한

위트릴로의 독주는 탁자에 넘쳐흐르네

다리 위의 시인도 옷 벗는 모델도

어릿광대와 함께 밤은 빛나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음역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문득 라팽아질 출입구에는 모딜리아니 

술잔에 눈물의 별 뜨는 날

 

  몽마르뜨르2016
  몽마르뜨르2016

                                                               

                                                                                 

라팽아질에서 2016
라팽아질에서 2016

                                                                       

1860년대 만들어진 파리의 카바레 라팽아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위트릴로의 작품  속에서 였다.

20세기초 피카소, 모딜리아니, 르느와르 등 화가와 시인들이 드나들던 예술가들의 선술집은 민첩한 토끼라는 토끼그림의 간판이 달린 파리 18구 솔르거리에 있었다.

수년 전 파리 7 구역 화랑에 전시 작품을 출품했던 나는 적지 않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와 파리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보고 싶은마지막 여행지였다. 영어도 불어도 안 되는 나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손목을 조심하라는 소매치기 정보를 듣고 여간 긴장한 여행이 아니었다.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리는 예술가의 언덕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때도 뒤섞여 들려오는 언어의 소음에 유쾌하지 않았는데 40년 걸려 완성한 샤크레쾨르 대성당의 멋진 양식에 감탄하고 계단 위에서의 하프 연주자 음악에 취한다.

관광객의 초상을 그려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무명의 화가들 거리 모퉁이를 지나며 고흐도 그림을 그렸다는 이곳이 그에게 있어 절망의 언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문득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에 라팽아질 가게가 아닌가 하여 간판의 토끼를 보니 토끼가 가짜라고 아이가 옆에서 팔을 당긴다.

한바탕 웃다가 언덕길 옆 가게를 발견한다. 무대도 없이 손님과 하나가 되어 오래된 와인을 마시며 샹송을 부르는 가게 문은 닫혀 있었고 노란 잎들이 발 밑에 뒹굴고 있다 문틈으로 이브몽땅의 고엽이 흘러나올 것 같아 잠시 입구의 벤치에 앉는다.

고흐의 그림 한 점 생전에 사주지 않았던 프랑스인들의 냉정과 악마의 술 압생트를 그림과 바꿔마시고 곯아떨어져 거리에서 잠들던 가난한 화가의 애환을 라팽아질은 기억하리라.

그리고 세월은 또 흐르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슬픔조차 메워지리라.

시인화가 박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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