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직관과 개념의 경계선은 직관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관계로 포착되고, 그것과 개념은 간접적이어서 논증적·통람적 방식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직관도 결코 개체에 멈추지 않고 전체를 발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 전체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를 통람하여 최종적으로 그것들의 요소를 하나로 모으는 것에 의해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보이면, 그 의미에서는 직관으로 이미 논증적·통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그렇지만 개념은 직관적 종합의 이 형식에 대하여 어떤 새로운 레벨의 높은 논증·통람의 방법을 수립한다. 즉, 개념은 제현상의 유사성이나 현상상호간 직관적으로 파악 가능한 관계를 안정된 노선으로 가는 것 뿐만 아니라 개념을 답습하여 적응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답습시키는 기능 바로 그것이다. 직관은 결합의 어떤 정해진 길로 나아가는, 그리고 정말로 거기에서조차 직관이 순수한 형식과 그 도식기능의 본령이 있다. 그렇지만 개념은 단지 이것들의 길을 알고 있다는 의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것들의 길을 지시한다는 의미에 있어서 직관을 무시하고 있다. 즉, 개념은 이미 개삭(開削)되어 이미 알려진 길을 걸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의 개삭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물론 엄밀한 경험론으로 보았을 경우 개념의 기본적인 힘이야말로 개념의 주관성이라는 오점을 결정적으로 지게하는 것이다. 실증주의적·경험론적 인식이론의 전체에 이 의혹과 비난이 널리 퍼져 있다. 빠르게도 베이컨(Bacon)밑에서 모든 개념적 사고에 가할 수 있는 본질적 논란은 바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차지하고 있다. 즉, 개념적 사고는 순수한 소여로서의 경험의 현실에 만족할 일은 없으며, 개념적 사고는 이 현실을 단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얼마간의 의미로 개조하는 것이며 이렇게 개조함으로써 그것을 위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념의 자유나 자발성은 단순한 자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층 깊은 비난의 근거는 경험론이 다름 아닌 자유라는 의미를 결코 전폭적으로 받지 않고 그것을 단지 조합의 자유라고 해석하는데 있다. 즉, 개념은 새로운 인식내용을 정립하거나 출산할 수는 없다.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감각에 의해 제시되는 단순관념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옮겨 가고 그것들을 임의로 결합하거나 분리하거나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해서 인식의 참된 원재료로 끌어내는 제현상이 출산되게 되지만, 이것들의 현상은 혼합의 결과로 되지 않고, 단순한 혼합의 소산이 갖는 불안정성을 통째로 띠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로크(John Locke)도 이러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혼합양태(mixed modes)’는 오성이 내적 지각이든 외적 지각 사이에 현존하고 있는 것을 포착하는 것 만큼 만족할 수 없고, 오성에만 속하는 새로운 결합을 형성할 경우에 도처에서 생긴다.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Ⅳ

 

감성적 감각에서도 현실적 대상의 세계에서도 이 혼합양태의 원형이나 원본은 없다. ‘이것들의 관념을 한층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완전히 다른 기원(起源)을 가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음은 다양한 결합작용을 할 때 능동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도 마음은 일단 단순관념을 갖추면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통합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복합관념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때 복합관념이 자연에서 실제로 상정(想定)하여 통합으로 존립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근거로부터 관념은 개념(notions)이라고 불린다. 마치 이러한 관념은 사물의 실재 범주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서야말로 원상(原像)이나 지속적 존립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종류의 개념이 통일성을 손에 넣는 것은 다름이 아닌 다양한 단순관념을 부분으로 하는 한 개의 복합적 전체로서 포착하는 마음의 작용이다.’〈John Locke,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 Ⅱ, chap. ⅩⅩⅡ, sect.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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