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글 : 최연하(사진평론가)

한자어 ‘窓(창)’을 살펴본다. ‘穴(구멍 ‘혈穴’)’과 ‘厶(나 ‘아厶’, 아무 ‘모’)’, ‘心(마음 ‘심心’)’이 창(窓)이라는 글자를 형성하고 있다. ‘내 마음의 구멍’이 바로 창(窓)인 셈이다. 한자어 사전은 우리말의 의미를 찾는 내비게이터가 될 때가 있는데, 유심히 ‘창(窓)’을 보며 그 뜻을 새삼 헤아린다. 그리고 박종현 작가의 신작, <마음의 바람>이 창으로 불어왔다가 불고 가는 바람의 흔적-사진임을 알아챈다. 구멍을 통해 바람이 들락거리며, 바깥 세계와 작가의 내부가 숨으로 소통하며 만든 이미지이다. 즉, 마음의 구멍인 창(窓)은 세상으로 직진하는 통로이자 세상을 살피고 세상이 들어오는 루트였다. 삶의 경험과 세계 인식의 틀(frame)의 미학적 장치로 창(frame)을 선택하고, 프레임의 예술인 사진 매체를 활용해 박종현 작가는 <마음의 바람>을 구현하려고 한다.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박종현 작가의 <마음의 바람>은 창/문의 상징성을 통해서 세계와 마주한 작가의 내면의 풍경과 바깥세상을 중첩해 제시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던 불 켜진 네모난 유리창으로부터 작업은 시작한다. 캄캄한 밤 아파트의 작은 창에 켜진 불빛을 통해 작가는 일순 삶과 꿈, 기쁨과 고통 등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드라마를 본다. 창의 속성인 열림과 닫힘, 빛과 어둠, 보고보이는 감각이, 비록 하나의 구멍, 좁은 통로이지만 파노라마처럼 흐르게 된 것이다. 작가가 아주 고독하고 아픈 때였다. 박종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중첩해 자신의 한계(frame)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카메라의 뷰파인더(View Finder)는 작가가 세계를 향한 인식의 틀이고,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는 매개이자 그라운드가 되었다. 박종현의 사진 속에 ‘후쿠시마’와 ‘이태원’과 ‘한국의 현실정치’가 프레이밍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진은 세계를 재현(represent)하고, 복제(copy)하고, 옮기고 바꾸는(translate)데 창문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사진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전시가 있다.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가 기획한 <거울과 창(Mirrors and Windows)>(Museum of Modern Art, , New York, 1978년) 전시이다. 사코우스키는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미국 사진을 거울(mirror)과 창(windows)이라는 두 가지 미학적 카테고리로 정리해 전시한다. 대표적으로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제리 율스만(Jerry Uelsemann), 랄프 깁슨(Ralph Gibson) 등의 작품을 내면세계를 반영한 ‘거울’ 영역으로 배치한다. 세계를 비추는 ‘창’으로는 게리 위노그랜드(Gerry Winogrand),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등의 사진을 전시했다. 즉, 거울 영역에는 자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도구로 사진 매체를 활용하는 작가군을,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해 사실적으로 사진을 제시하는 작가들은 ‘창’으로 상정해 전시한 것이다. 이 전시는 당시 새롭게 급부상한 사진 매체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도운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으나, 사진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해 사진의 다채로운 가능성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거울과 창> 전시가 사진의 속성을 ‘거울’과 ‘창’으로 나누어 단순하게 제시했다면, 박종현 작가는 ‘거울 같고 창 같은’ 사진의 속성을 <마음의 바람> 전시를 통해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내가 거울을 봄과 동시에 거울을 통해 (내가) 다시 보여지는 상호 교통적인 행위이다. 마찬가지로 창을 통해 세계를 본다는 것은 세계와 마주한 자신의 내면을 다시 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처럼, 창을 통해 세상을 마주하는 것은 개인과 세계, 주체와 대상, 안과 밖이 넘나드는 역동적인 운동이다. 닫힘과 열림의 운동으로 이뤄진 사진은, 카메라의 셔터가 열렸다 닫히며 촬영이 되듯이, 작가를 세계와 연결해 세상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카메라의 원리와 밀접한 ‘원근법(perspective)’이라는 말에 ‘무엇을 통해 보다’라는 뜻이 있다. 예술 창작의 원동력에 자기 성찰과 세계 인식이 함께 일어남을 알게 하는 말이다. 사진가는 창이 달린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의 윈도우(windows:MS)를 통해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다시 본다. 사진을 촬영할 때는 관찰자(observer)였다가 모니터를 통해 세계와 접속하는 화자(narrator)가 되고, 작품이 탄생하는 긴 어둠의 시간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와 홀로 머문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 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 Charles Baudelaire, 『파리의 우울』, 황현산 역, 문학동네, 2015, p. 102.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세상과 나를 향한 창(窓)-박종현 뉴욕사진전을 보고

 

보들레르의 시, <창문들>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보이는 것보다, 그 너머의 세계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일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지를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창은 나의 상상을 현실 세계에 구현해 줄 통로라는 것. 박종현 작가의 <마음의 바람>은 창을 통해 세계와 구체적으로 접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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