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해作 네르파의 귀향

                                                   

-네르파의 귀향-

 

먼 빙하기에 북극해 이어진 호수에서 왔을까

겨울에 떠난 연인 같은 섬 찾아 다시 온다

핵 잠수함에 고유의 이름자 붙여주고

세계의 낯선 여행자들에게 점프를 보여주는

해양 박물관 아기물범도 잊고서,

얼어붙는 마지막 호숫가에서 아기들은

달빛 따라 돌아가야만 했었다

붉은 눈물 노을 출렁이고 마을 어부들의 저녁

자작나무 잎들 서로 몸을 부딪칠 때

물의 전설로 다시 오는 너,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푸른 땅 곶(串)에 당도해

회백색 털이 태양에 바래져 가면

작은 지능으로 생각해 내는 것

오십 년을 살다 간 후에는

걸어 다니거나 기어 다니거나 인간들이 평화로웠으면

포획자의 추적 없는 세상에서,

너는 두 눈을 껌벅이며 온 힘을 다해 물살을 가른다

 

 

                                                                    바이칼호수

                                                             
호수 침엽수림

                                                                                                                   

*초원의 지평선에 맞닿은 툰드라 침엽수 사이를 가르는 바람은 드세었다
비행기로 날고 낡은 군용 지프로 수 시간 달려간 곳
천칠백사십일 미터의 수심과 삼만 천오백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으로
바이칼 호수는 거대한 자연의 신이었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퇴각하는 군인들과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삼킨
깊고 푸른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린다 
이백만 년 전 물길을 잃고 흘러들어 온 물범 네르파를 키워내고
한민족의 시원이라 보는 견해가 샤먼의 나무들을 자라게 한 것일까
바이칼엔 한국의 무속인들이 찾아와 춤을 추고 제를 올리는 부르한 바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부랴트족이 있다
물의 신화를 찾아 떠난 스케치 여행은 멸종위기의 네르파 이야기를 모티브로

시작됐고 다시 한국의 수족관에서 네르파를 만났을 때는 너무 반가웠다
흰털의 새끼가 자라면서 검은 털 물범이 되고
조련 후에 쇼를 하며 관람료를 받는 상행위에 비애를 느낀 나는
색을 표현하는 미술에서 네르파를 화이트의 기억으로 캔버스에 남긴다
덧칠 기법으로 물감층의 효과를 살려 발색에 최선을 다한 '네르파의 귀향'은
2018 밀라노 한국 현대미술 아트페어에 출품한 나의 유화작품이다
핵무기 실험과 남획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해양동물들
물범도 인간도 향기로운 세상으로 가야 한다
수 만 년 전 천마를 타고 온 용사
아바이 게세르의 말발굽 소리 들리는 초원의 호수로……
자작나무 숲은 노을로 불타고 총을 버린 수렵꾼의 순한 눈망울이

붉은빛으로 반짝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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