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게 하는 작가, 보이게 하는 그림 – 장혁동 

장혁동은 우리 화단에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작가이다. 왜냐하면, 그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독일에 체류하면서 프랑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주로 유럽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는 아니다. 이미 지난 2006년 정헌메세나 작가상(프랑스 파리) 수상, 2015년 Beautiful Bridge 2(예술의 전당)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그의 작업은 좋은 평가를 얻어 그 작품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마주하다
마주하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독특한 것은 일상적인 풍경묘사나 인물이 표현이 아니라 풍경의 모티브가 특별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런 그의 회화에 몇 가지 주제와 특징을 살펴보면 주변의 모습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예를 들면 작가 자신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그림 그리는 화가의 초상도 그렇다. 커다란 화폭에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을 담은 작품, 다리를 쭈그리고 열심히 구석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도 등장한다.

붉은문
붉은문

 

또 다른 풍경은 배 위에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남자, 건물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무엇인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련의 사람들 경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놀이를 하는 소녀들, 나뭇잎 사이로 모여 있는 사람들, 공간 사이로 오가는 시민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장면 등 그의 화폭에는 이렇게 다양한 어쩌면 흔한 그러나 작가들이 좀처럼 주제로 삼지 않는 삶의 흔적들이 대부분이다.

시선
시선

 

이런 화면 속의 정경들은 특별한 목적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어떤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도 않다. 물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표정이나 몸짓처럼 연극적인 공간의 일부처럼 인식되는 작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작품들은 그럼에도 하나의 일관된 패턴과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형식이란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의 공간에 장면을 포착한 것이지만 그것을 향하는 작가의 시선이 전반적으로 멜랑콜리하다는 점이다. 다소 우울하거나 어둡고 칙칙한 풍경들. 이 그림들은 모두 어떤 특별한 이슈나 상황을 드러내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음울한 장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거부감이나 어색함 없이 익숙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바탕을 형성하는 색채와 구도들은 밝고 행복한 인상이기보다는 고독한 풍경들로 가득 차 있어 무엇인가를 사색하게 한다.

외출
외출

 

이 인물들과 배경은 왜 거기에 놓여 있으며, 왜 얼굴들의 표정은 거의 가려져 있거나 뭉개져 있는 것일까? 그의 회화공간에 무대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공간처럼 만들어지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풍경과 만나서 배경이 되고 마침내 작품 속에서 그 불길한 분위기와 일체를 이룬다. 또한, 매우 특징적인 인상은 색채 전체가 채도가 낮고 회색계열의 어두운 색상이 화면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침울하다. 어떻게 보면 색채의 사용에서 원색이 매우 절제된 색채들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 우울하고 감성적인 색채와 표정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궁금증을 유발하고 동시에 작가의 내면에 무엇이 있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분명히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내면의 언어이자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 시선의 메시지이다. 이 감성적이고 침묵의 언어들은 고독한 풍경들에 대해 함께 바라보고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자화상
자화상

 

이렇게 장혁동 작가의 작품들은 결국 그의 삶의 울타리에서 보이고 비추어지는 것들에 대한 비장한 응시이자 관심이 본질적인 목적으로 판단된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삶의 표정이자 우리들 삶의 표정임을 인지시키고 반추하게 만든다. 바로 여기서 작가는 그 삶의 주인공이자 풍경의 관찰자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우리를 향해 질문한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삶이라고, 아니 예술가의 운명이고 삶이라고. 이것은 이국땅에서 외롭게 화가로 살아가는 자화상이자 작가 삶의 그림일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회화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도구 이전에 하나의 삶의 방법이거나 전달형식이다. 

장혁동이 건네는 그 메시지의 중심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삶의 표정과 인간들의 자화상 탐구이다. 내 삶의 풍경 안에서 머물고 흩어지고 사랑하는 인간, 예술가의 존재 그 자화상 같은 것이다. 작가는 “기억되는 어릴 적 ‘캄캄한 밤하늘의 반짝’ 거리는 것에 대한 두근거림... 10대의 꿈꾸는 자아와 몸부림들” 그 삶의 풍경이란 시간 안에서 삶을 관조하는 화가는 쓸쓸하고 고독한 풍경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색과 테크닉을 추구하기보다 절제된 색과 순수한 붓질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는 작가의 이 진솔한 고백은 화가의 열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장혁동의 그림들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더욱 우리들에게 보이게 하는 것이 작품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화려한 외출
화려한 외출

 

작가는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낯선 타국에서의 쓸쓸하고 외로운 삶의 풍경을 가감 없이 때로는 비장하게 풀어내고 있다. 마치 뭉크가 ”나는 자연을 통해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고 했던 것처럼 장혁동은 그림에서 “예술은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 나온다”는 피카소의 명언을 장혁동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또 무엇인가? 되물으며 울컥하는 감정들이 불쑥 생겨나는 이유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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