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영국 런던 마졸레니 갤러리가 2023년 10월 1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승조(1941-1990)와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1935-2013)의 2인전 《근접성의 역설The Paradox of Proximity》을 개최한다. 두 모더니즘 거장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와 마졸레니 갤러리, 그리고 이승조 유족과 아고스티노 보날루미 아카이브의 협업으로 진행되며, 이탈리아의 저자이자 미술 평론가, 큐레이터인 마르코 스코티니Marco Scotini가 기획하였다.

한국의 기하추상을 선도한 이승조는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기둥 모티프를 근간으로 시각성의 관념에 도전하며 한국적 모더니즘을 구축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이승조의 〈핵〉 시리즈와 함께 아고스티노 보날루미의 ‘엑스트로플렉션extroflexions’ 작업이 전시된다. 단색조의 캔버스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의 차원을 탐색한 보날루미의 작품은 각 캔버스를 구성하는 색에 따라 이름 붙여진다. 이번 2인전은 보날루미의 〈비앙코Bianco〉(1973)를 비롯한 일련의 백색 작품과 이승조의 〈핵 73-18〉(1973)과 같은 짙은 회색 및 흑색 작품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두 작가의 작업 양상을 아우르는 ‘단색’이라는 주제를 조명한다.

《근접성의 역설》전은 지난 2016년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열린 획기적 전시 《전후: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예술, 1945-1965》로부터 영감 받아, 미술사의 영역을 서반구 너머로 확장하고자 하는 중요한 시도를 구체화한다. 당시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기획한 이 전시는 개인, 문화 네트워크, 예술적 체제, 나아가 이들 간의 관계를 다양한 맥락에서 구조화해야 할 당위성을 시사했다. 이는 머지않아 현대미술의 주요 사안으로 자리매김했고, 나아가 미술계 내 대안적, 병렬적, 비균일적인 모더니티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촉발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2인전은 이탈리아의 아고스티노 보날루미와 한국의 이승조라는 두 거장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1960-70년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예술적 지평을 조망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지닌 두 작가는 캔버스의 평면성을 거부하고 단색조를 활용해 앵포르멜 표현주의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긴밀히 맞닿아 있다.
이승조의 파이프 형상은 반복적이고 율동적이면서도 강박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한편, 보날루미의 ‘엑스트로플렉션(외굴곡)’ 모티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해 골이 새겨진 효과 내지는 셔터가 닫힌 듯한 형태를 띤다. 이렇듯 전시 제목 《근접성의 역설》은 서로 간의 시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면에서 공명하는 두 작가의 역설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는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실험적 미술과 한국 초기 기하추상의 흥미로운 유사성을 강조한다. 마졸레니와 국제갤러리는 이러한 협력을 기반으로 오는 10월 11일부터 15일까지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마스터스’의 공동 부스를 기획함으로써 한국 미술과 이탈리아 미술을 잇는 연결고리와 공통된 주제를 폭넓게 탐구하고, 관람객과 컬렉터 모두가 이 두 나라의 문화적 융합을 목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고스티노 보날루미(1935-2013)〈Bianco〉1975Shaped canvas and vinyl tempera70 x 60 cmCourtesy of Mazzoleni, London - Torino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아고스티노 보날루미(1935-2013)〈Bianco〉1975Shaped canvas and vinyl tempera70 x 60 cmCourtesy of Mazzoleni, London - Torino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 소개: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1935-2013)
1935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비메르카테에서 태어난 아고스티노 보날루미는 기술 디자인과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독학으로 회화를 배워 어린 나이에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58년 보날루미는 동료 작가인 엔리코 카스텔라니와 피에로 만초니와 함께 밀라노의 갤러리아 파테르에서, 이후 로마와 로잔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이듬해 보날루미와 카스텔라니는 ‘외굴곡 캔버스extroflected canvas’ 혹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라 지칭되는 3차원 캔버스를 처음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른바 ‘회화-오브제painting-object’라 불리며 발전해왔다.
이어 1960년대에 보날루미는 캔버스의 외굴곡이 두드러지는 연작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과 방법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으며, 부피와 공백, 오목과 볼록 사이의 역학관계를 탐구하며 이를 점차 다듬어 나갔다. 1961년 작가는 로잔의 카스퍼 갤러리에서 신유럽학파Nuova Scuola Europea를 공동 창립했다. 1965년에는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 아르투로 슈바르츠의 밀라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미술 평론가 질로 도르플레스가 전시 도록의 저자로 참여했다.
이후 1966년부터 밀라노에 소재한 갤러리아 델 나빌리오와 긴밀한 협업을 시작한 작가는 해당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1973년 질로 도르플레스가 집필을 맡은 도록 『에디지오니 델 나빌리오Edizioni del Naviglio』를 출판했다. 1966년 작가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으며, 이어 1970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단독 공간에 작품을 선보였다. 그 후 작가는 아프리카 지중해 지역과 미국 등지에서 공부와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첫 미국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보날루미는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1968년에는 파리 청년작가 비엔날레에 초청된 바 있다. 1967년 작가는 그의 첫 환경 예술인 〈블루 아비타빌레Blu abitabile〉를 제작해 폴리뇨에서 열린 《로 스파치오 델리마지네Lo spazio dell’immagine》전에 선보였으며, 이듬해 독일 도르트문트의 암 오스트발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 또 다른 대규모 환경 예술 작품 〈그란데 네로Grande Nero〉를 선보였다.
보날루미는 발레리나 수잔나 에그리가 1970년 베로나의 테아트로 로마노에서, 그리고 1972년 로마의 테아트로 델 오페라에서 시연한 작품의 무대와 의상을 제작하는 등 세트 디자이너로서도 활약한 바 있다.
1979년에는 밀라노의 팔라초 레알레에서 열린 《피투라-암비엔테Pittura-Ambiente》전에 환경 예술 작품 〈달 지알로 알 비앙코와 달 지알로 알 비앙코Dal giallo al bianco e dal bianco al giallo〉를 선보였고, 1980년에는 만토바의 팔라초 테에서 그의 작업세계를 망라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 2001년에는 최고 영예의 이탈리아 대통령상Premio Presidente della Repubblica을 수상하여 2002년 로마의 산 루카 국립 아카데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이어 2003년 독일 다름슈타트의 마틸덴회에 인스티튜트에서 개인전 《아고스티노 보날루미: 3차원의 회화Agostino Bonalumi: malerei in der dritten dimension》를 선보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꾸준한 회화적 연구를 지속하며 1960년대 후반에 고안했던 디자인을 기반으로 청동 조각 시리즈를 완성했다. 작가로서의 활동 끝 무렵 그의 작품은 브뤼셀, 모스크바, 뉴욕,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전시되었다. 2013년 여름, 보날루미는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에 참여했으나 개막 전 이탈리아 몬차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졸레니는 아고스티노 보날루미 재단을 대표한다.

이승조(1941-1990)〈핵 C〉1976Oil on canvas116 x 91 cmCourtesy of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이승조(1941-1990)〈핵 C〉1976Oil on canvas116 x 91 cmCourtesy of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 소개: 이승조(1941-1990)
이승조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화가로, 모더니즘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1967년 처음 선보인 〈핵〉 연작으로 기하추상 화풍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후 작고하기까지 20여 년간 일관되게 특유의 조형 질서를 정립하는 데 매진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는 무채색의 전면 회화를 전개하거나 한지와 같은 재료를 도입하는 등 단색화 움직임과의 연계성 속에 작업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기둥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이승조의 회화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환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시각성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물질의 기본 요소를 의미하는 ‘핵’으로 명명된 이승조의 작품은 순수하게 회화적인 것에 대한 작가의 심도 깊은 고찰의 응결체로서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본질을 드러낸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49세의 나이에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중앙대학교 회화과 등에서 오래간 교편을 잡았다. 전위미술 단체 ‘오리진’과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동인으로서 활약한 한편, 보수적 구상 회화 중심의 국전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전위와 제도권 미술의 흐름을 뒤바꾸는 데 일조했다. 나아가 단색화가들이 이끌었던 주요 단체전과 해외전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 화가로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이승조의 화업은 최근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에서 체계적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토탈미술관, 도이치은행 등이 있다.

마졸레니Mazzoleni Art
이탈리아 토리노와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마졸레니는 지난 35여 년 동안 전후(戰後) 이탈리아 및 현대 미술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미술관 수준의 전시를 꾸준히 개최함은 물론, 아트 바젤, 프리즈, 테파프 등의 주요 국제 아트 페어를 비롯해 아티시마, 아르테피에라, 미아트 등 이탈리아 기반의 아트 페어에도 참여해왔다. 최근에는 프리즈 서울, 아부다비 아트, 아트 두바이에 참여하며 그 활동 반경을 점차 확장해 가고 있다. 마졸레니 컬렉션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팔레 드 도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과 에스토릭 컬렉션, 밀라노의 노베첸토 미술관과 팔라조 레알레,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나폴리 도나레지나 현대미술관, 트리엔날레 밀라노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 및 비엔날레에 전시된 바 있다. 마졸레니는 아고스티노 보날루미 재단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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