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미적개념-美的槪念' Ⅲ 

근세의 미학은 시점을 역전시켜 미를 주관적 측면에서 규정하는 길을 택했다. 환언 하자면, 미적 대상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마음의 특질에 의해 미를 정의하려고 하는 공략이다. 대표적으로 칸트의  『취미판단』에서 제 1계기(질)’로 본 미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취미란 일체의 어떤 대상이나 표상의 방법을 만족ㆍ불만족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만족 대상을 가리켜 미라고 한다’.

The High Priest Coresus Sacrificing Himself to Save Callirhoe - Fragonard, 1765
The High Priest Coresus Sacrificing Himself to Save Callirhoe - Fragonard, 1765

이것은 미를 대할 때의 특정한 태도에 의해 미를 규정하는 것이다. 근대철학의 관념론적 경향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을 참된 현실로 인정하려고 하는 동향에서 생긴 입장이다. 확실히 의의를 갖는 것은 실제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따져 볼 때 ‘우리들의 태도를 제어하면 대상 여하에 관계없이 일체의 물질이 모두 미로 지각된다’는 생각을 읽어 낼 수 있다. 확실히 정관적인 태도는 바로 만족을 주는 것이며 완만한 의미라면 무엇을 보아도 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의 예술의 제도화 동향에서 뒤바뀐 사태가 뿌리내린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감탄을 강요하는 거대한 미를 잊은 결과이며 미가 정관적인 태도를 갖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두 가지 입장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객관적인 규정이면서 주관적인 경험으로 포착할 수 있었던 특질을 대상에 투영시킨 것으로서 상당히 유력한 관점이다. 상술(上述)의 빛의 은유에서도 이미 그 성격이 나타났다. 가장 단순한 것으로서는 다양에 있어서의 통일인데, 다양도 통일도 지각의 함수로 밖에 인지할 수 없는 객관적 특징이다. 보다 유의미한 정의로서는 이념의 감각적 현현(顯現)이나 현상(現象)에 있어서의 자유가 이 형에 속한다. 이념도 자유도 정신에 의해 포착할 수는 없다.

이것들의 정의는 감각적 소여에서 혹은 정신적 의미나 자유정신이 파악된다고 하는 예술작품의 체험이나 사람의 행위에 언급하는 경험을 모델로 세워진 것으로써 대립적인 측면을 대상의 특질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유의미라고 생각하는 체험으로 출발하고 있는 만큼 무의미한 규정에 빠지는 것을 모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주관적인 규정의 일면성도 모면하고 있으며, 미의 체험 특유의 긴장을 포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라오콘(Gruppo del Laocoonte) - Agesandro, Atenodoro, Polidoro, BC105 ~ BC50
라오콘(Gruppo del Laocoonte) - Agesandro, Atenodoro, Polidoro, BC105 ~ BC50

복잡한 뉘앙스를 가진 예술작품을 체험하면서 그 작품이 미인가? 라고 문제를 제기했을 경우에는 그 작품이 걸작인 것에는 이의가 없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에는 저항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의 개념에는 가치에 대한 계기뿐만 아니라 어떤 독특한 질감(물질의 성분을 정하는 차이)이 포함되어 있다. 미와 같이 직관적으로 지각되는 가치로서는 우아, 숭고를 필두로 비극적ㆍ희극적인, 그리고 부정적인 가치가 있다. 이 정성차이의 레퍼토리(Repertory)는 미적 범주, 혹은 미적개념 등으로 불린다. 즉, 미를 확장한 것은 미적인 것으로 총칭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개념 사이의 종차(種差)가 상술의 정성차이로써 미적인 것에는 정성차이가, 그리고 미에는 가치가 특히 우세한 성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미적 범주론이 형성되어 온 18세기에 있어서는 미라는 일원적(一元的)인 가치로부터 이 정성차이로 이행되어가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예술사의 조류가 미라는 보편적인 가치로부터 작자의 개성표현으로 움직여 간 것과 조응(照應)하고 있다. 이 점을 눈여겨보면 미는 과거의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정성차이를 일시적으로 괄호에 넣고 넓은 의미로 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법은 예술에 있어서의 소재나 수법 등 일체의 개별성을 사상(捨象)하고, 그 창조성에 주목하는 표명이며, 또한 미의 힘을 강조하는데 뿌리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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