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개념-美的槪念 Ⅱ

또한 미에 있어서의 언어나 개념은 훨씬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미가 주는 쾌는 정신을 활성화한다. 그 상태에서 개념적인 사유가 적극적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면, 회화에 그려진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해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미에 대한 해명은 언어적이다. 또한 묘사 대상을 동정(同定)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말에 의해 미에 도전하려고 한다. 동정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변이를 오인하고 버리기 십상이다.

색채 변이나 약간의 형태의 변이를 중대시하고 별종이라고 판단하고 버리거나 비슷한 별종을 동일시해서 버리거나 한다. 다시 말해, 미는 그것을 말에 의해 포착하려고 시도하고 싶어지는 매력이며 동시에 어떤 말로도 그것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미인 것이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라이프니츠를 필두로 근세 철학자들이 미에 부여한 대표적인 규정이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해해야 한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1721경)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1721경)

미는 대상의 성질로 지각된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1721경)의 《키테라섬의 순례》의 저녁놀이 아름답다라고 한다든지 A씨는 미인이다라는 것과 같다. 따라서 미를 객관적이며 일반적인 특질이나 구조에 의해 정의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도이다. 고전적인 대표적 정의는 비례에 의한 것과, 빛의 은유에 의한 것이다. 전자(前者)는 피타고라스파에 의한 음률의 이론과 그리스어로 ‘카논(canon)’이라는 인체비나 황금비의 이론 등에서 볼 수 있다.

또한 후자는 플라톤파가 영원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플라톤 자신에게도 윤회하는 혼의 천상에 있어서의 생에 대해 언급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미는 그때 그것을 본 우리들의 눈에 찬연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 양자는 소박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각각 어떤 흥미있는 특질을 인정할 수 있다.

플라톤파 이미지
플라톤파 이미지

우선 비례설에 있어서 주로 음악과 건축에서 형성되어 온 이론 형성의 배후에는 경험의 집적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음악에서 말하면 관악기 관의 길이(구멍의 위치)나 현악기의 현(弦)의 길이(현을 억제하는 손가락의 위치)를 익히면서 서서히 찾을 수 있었던 법칙이며 수비(數比)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음악의 경우 협화(協和)의 관계에 관해서 거의 일의적인 귀(耳)의 판단을 포착하고 있어서 객관적 규정을 대표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협화음에 대해서 절대적인 확실성을 쟁취했다고 해도 악곡 전체의 미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는 모든 객관적 규정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이다. 다만 실천 지식이 실제로 작가에게 유익한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규정에 결정하지 않는 여러 가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비례가 그것들을 활용하는 지침이나 단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은유는 미의 가장 현저한 특질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으로 미는 미라는 동어(同語) 반복이 있지만, 상술의 객관적 규정의 한계를 인식한 뒤에서의 정색이라고도 보인다. 적어도 매력이 없는 것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정리된 형태를 하고 있어도 미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을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리고 같은 대상의 특질로부터 미를 규정하려고 해도 비례설과는 다르며, 보는 사람에게 대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살아 있는 미의 측면을 포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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