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역사적 근간 Ⅱ

그러나 예술품의 가치는 이것으로부터 구성되는 것이다. 예술품은 쾌적(快適)하지 못해도 좋은 예술품일 수 있다. 미적 판단은 조금도 인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예술품이 줄 수 있는 최초의 기쁨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제일 조건이다. 이 기쁨은 미적 쾌감이며 한층 높은 기쁨이다’.〈피들러 《예술론》17, 24, 40쪽〉

즉, 미는 쾌감정의 문제인 것에 대해 예술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 피들러의 주장이다. 이것이 미와 예술과 감성을 중합시키며 근대미학의 구상이 미보다 진리의 인식으로 기울고 있는 현실 예술사의 동향 속에서 모순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Max Dessoir
Max Dessoir

피들러를 이어 예술학을 주장한 것이 데수와르(Max Dessoir)와 에밀 우티츠(Emil Utitz)로써 특히 데수와르는 1906년에 미학 일반잡지 Zeischrift für Ästhetik und allgemeine Kunstwissenschaft를 창간했다. 그러나 서구의 용어법에 있어서의 aesthetics는 실용적으로 예술철학이며, 굳이 science of art라고 말하는 경우, 독일에서는 미술학이며 실질적으로는 미술사학이고, 프랑스에서는 실험적 수법을 이용한 예술연구로써 각각 뉘앙스가 달라서, sciencs의 ‘개별과학’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많은 논자(論者)에 있어서 미학은 예술철학이다. aesthetics를 일종의 미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서양에 없는 것은 아니다. 피들러의 주장은 분석미학으로도 계승되어 예술적 가치와 미적 가치를 구별하는 문제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이 발전하는 것이며 예술철학과 미학을 구별하려는 주장도 된다. 그러나 예술로부터 분리된 미학의 실태는 미적질(美的質)의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창조성도 감성적 인식의 신체적·공동체적인 감성적 표현의 학문이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지니는가 아닌가도 의문이다.

근세 이전의 미학이나 예술학에 있어서 미나 예술에 관한 고찰은 18세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여기에서 그 역사를 말할 수는 없지만, 고전으로서 오랫동안 사색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예가 있다.〈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3 vols〉

우선 미의 철학으로는 플라톤(Platon) 및 플로티노스(Plotinos), 그리고 이 양자의 학통(學統)에 이어지는 플라톤주의, 특히 르네상스에 있어서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 17세기 말의 섀프츠베리(Third Earl of Shaftesbury)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은 『향연(饗宴)』에서 미의 학문을 말하고 있다. 이 대화편의 주제인 사랑을 미에 대한 사랑, 미의 추구로 다시 파악한 다음 주인공 소크라데스(Socrates)는 무녀(巫女)로부터 들은 말로 아름다운 육체로부터 아름다운 인간의 경영으로, 그리고 미의 학문으로부터 미를 대상으로 삼아 배움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사람의 혼은 예전에는 천상에 있다고 믿어서 신들과 생을 즐기고 있었지만 윤회에 의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미는 그 빛남에 의해 천상의 생을 상기시키는 실마리가 되었다.〈플라톤의 저서 『파이드로스 메논』, 248-50〉.

따라서 『향연』에서 말한 상승 운동은 혼이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도정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육체로부터 출발하고 구체성을 벗어나 미학에 이르는 계제였다. 미학은 직접적으로 ‘미 그것을 본다 theaomai’라고 말하듯이 체계적 학문이라는 것보다 미의 관상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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