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청운동 113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는 2023년 4월 25일(화) ~ 5월 14일(일)까지 이동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 한옥의 차경借景'이 열린다.

담양 소쇄원 제월당 대청마루 2016
담양 소쇄원 제월당 대청마루 2016

고산경행루(高山景行樓). 대구 지역에 있는 오래된 한옥의 누마루에 걸린 편액 글이다. 산처럼 덕이 높은 선인을 따르겠다는 속뜻을 품고 있지만, 누마루에 올라서면 가까이 둥근 잎의 파초 뒤로 푸른 대숲이 사방을 감싸고, 앉으면 대숲과 솔숲 너머 저 멀리 능선 첩첩한 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데 높은 산이 이 마루까지 다니러 오는 것이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하여 밖의 경치를 감상하는, 이것이 한옥 건축미학의 절정으로 꼽히는 ‘차경(借景)’이다. 
 차경은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이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서 즐기는 것이다. 하루 낮밤 때에 따라 다르고 사계절에 따라 바뀌는 이 경치는, 한옥이 제 안에 걸어둔 ‘살아있는 풍경화’다. 
 사진가 이동춘이, 한옥이 품고 있는 이 풍경화들만을 쫓아서 ‘한옥의 차경’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펄펄 눈발이 날리는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의 사랑채, 흰 창호지를 바른 문 한쪽에서 푸른 그늘을 드리운 설월당 앞 느티나무, 배롱나무꽃으로 진분홍 물이 든 병산서원의 들어열개문, 소박한 정취에서부터 빼어난 절경까지, 우리나라 곳곳의 오래된 고택들의 ‘차경’ 40여 점을 선별하였다. 

대구 광거당 누마루 2018
대구 광거당 누마루 2018

이동춘은 오랫동안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고택과 종가, 서원 등 우리 문화의 옛 원형을 기록해오다 2010년 <오래 묵은 오늘, 한옥>을 발표하면서 단박에 ‘한옥사진가’라는 수식을 얻었다.  2020년에 15년간 안동 고택 107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 200여 점이 담긴 책 <고택문화유산 안동>으로, 2021년 전시와 책으로 선보인 <한옥∙보다∙읽다>로 다시금 자신의 수식을 공고히 했다. 디자인하우스 사진부에서 일했던 이력대로, 스트레이트 사진임에도 자연과 고택을 마치 거대한 자연광 스튜디오에 옮겨서 촬영한 듯 빼어난 연출력과 구성을 보여준다. 

 국내 전시 외에도 해외에 소재한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미국 LA, 독일 베를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 사진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김영목은 “이동춘은 사진작가지만 과거의 현대성, 또 현대 속의 과거성을 인간을 위한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이미지 문화 인류학자이기도 하다.”고 상찬했다. 

안동 동곡서사 서쪽 방의 문그림자 2019
안동 동곡서사 서쪽 방의 문그림자 2019

특히 이번 전시작들은 국가무형문화재 117호 한지장 김삼식 장인이 직접 만든 ‘문경한지’에 옮겨져 더욱 우련하다. 루브르박물관 복원지로 사용되는 문경한지 중에서도 이동춘의 사진에 특별히 맞춘 맞춤한지가 차경을 담아낸다. 

 동춘(東春). 동녘동에 봄춘자니, 동쪽의 봄이라는 뜻이다. 이름 뒤에 한옥 공간의 이름을 더해서 ‘동춘헌’ ‘동춘루’ ‘동춘전’ 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뜻이 어여쁘고도 드문 이름이다. 우직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한옥을 찍어 그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진가에게 참으로 맞춤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차경을 들이고자 한 이가 꿈꾸었을, 바로 그 

한옥의 차경을 찍는 일은, 늘 기다리는 일이었다. 
꽃이 필 때까지, 단풍이 들 때까지, 눈이 올 때까지.... 
그것도 그냥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피어서, 단풍이 들어서, 눈이 내려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렸다. 그 한옥에 문과 창을 만들어 차경을 들이고자 한 이가 꿈꾸었을 경치의 절정을 기다렸다. 

고택과 종가, 서원 등 수백 채가 넘는 한옥을 다녔고, 예전에 갔던 곳을 몇 년 후에 다시 가거나 여름에 갔던 곳을 겨울에 다시 가면서,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한옥에서 보냈다.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요소들과 특징들을 찾아서 그것을 내 사진 안에 담아내고자 탐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통틀어서, 어느 때고 나를 놀래고 감동케 하는 것은 그것이 서원이든 종가든 작고 소박한 고택이든, 한옥채들이 품고 있는 차경이라는 경치였다. 바깥의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안에 앉아 마당을 보고 담을 보고 담장 너머의 산과 풍경을 본다. 집안에서도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보다, 서울서 안동을 오가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끝냈다고 생각한 5년 전에 아예 안동 가까이로 거주지를 옮겼다. ‘때’를 기다리느라고 종일 동네를 서성이고 있으면 “아직 안 갔어?” “아직도 있네?”하는 말을 안동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는데, 이젠 아예 나도 안동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힘든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 차경을 앞에 두고 앉아 차를 마시던 순간들은, 긴 기다림의 시간과 제실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있던 외롭던 순간들을 보상한다. 지금 차경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고산경행루> 현판이 걸린 광거당 누마루가 떠오른다. 누마루에 앉아 차를 마실 때 바라다보이던 그 겹겹의 풍경들, 그 풍경을 ‘빌어서 품은’ 한옥의 아름다운 정취를 내 사진이 담아 전하길 바란다. 

2023. 4 이동춘

안동 병산서원 서재 들어열개창의 차경 2011
안동 병산서원 서재 들어열개창의 차경 2011

사진가 이동춘은 이화여고 사진반에서 기초를 다진 후 신구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광고사진 전문 스튜디오에서 광고사진 작업을 하다가 ㈜디자인하우스에 들어갔다.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사진부에 재직하며 한옥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과 음식, 인물 등을 촬영했다. 우리 문화원형을 간직한 경북의 종가문화에 매료되어 안동을 중심으로 한옥과 종가의 관혼상제·서원·한식·한복·한지·해녀 등의 촬영에 주력하고 있다. 

이동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 한옥의 차경借景'
이동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 한옥의 차경借景'

개인전 
2021. 7<한옥 ∙ 보다 ∙ 읽다> 서울, 모이소갤러리
2019. 9〈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미국, LA 한국문화원
2018. 10 〈그림속을 걸어가다〉 예천, 신풍미술관
2018. 10 〈도산구곡, 예던 길〉 서울, 유경서원
2018. 5 〈소금, 빛깔 맛깔 때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15. 11 〈경주, 풍경과 사람들〉 서울, 류가헌갤러리
2014. 4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미국 UCLA대학 전시
2014. 4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미국 UC버클리대학 전시
2013. 4 〈선비정신과 에를 간직한 집, 종가〉 불가리아, 소피아국립문화궁전
2013. 2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헝가리, 부다페스트한국문화원
2012. 10 〈섬김과 나눔의 리더십, 종부〉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2012. 5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독일, 베를린한국문화원 
2010. 3 〈오래 묵은 오늘, 한옥〉 서울/인사동, 토포하우스 

출판 
2021. 7  <한옥∙보다∙읽다> (주)디자인하우스 (사진공저) 
2020. 12 <고택문화유산 안동> 안동유네스코협회(사진공저)
2019. 12 <구경 속을 거닐다>(사진공저)
2018. 12 〈도산구곡 예던 길〉, 〈선성지〉, 〈안동 50선 2〉 천우(사진공저)
2017. 12 〈태사묘〉, 〈안동식혜〉 민속원(사진공저) 
2015. 8  〈경주, 풍경과 사람들〉 이동춘사진집, 맹그로브아트웍스 
2012. 4  〈선비의 마음과 예를 간직한집 ‘종가’〉 이동춘사진집, 파라북스
2011. 3  〈도산구곡 예던 길〉 도서출판 대가 (사진공저) 
2010. 3  〈오래 묵은 오늘, 한옥〉 이동춘사진집, (주)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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