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누구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는 얹고 살 것이다.
컬렉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소개 하고 싶었던 작가는 고맹기호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글을 썼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려와서 썼다 지우길 반복 해왔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오늘 내가 소개를 가장 아끼고 아껴왔던, 내 인생의 선배이자 나의 은인이었던 맹기호 화백에 대한 글을 써 볼까한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맹기호 화백은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타나서 나를 지켜주었고, 또 내가 컬렉터로서 길을 걷는데 안목이 무엇인지 눈 뜨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내가 작가를 선택하는데도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고 이동엽 선생을 추천하며 내가 단색화에 눈뜨게 했으며, 이건용 선생님을 추천하여 아산갤러리의 미래를 도모하게 했다.  지방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작가 발굴이며,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 하는 길이 아산갤러리가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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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가끔씩 나와 이건용 선생이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틈이 생기면, 나에게 호통 하며 딴 짓 하지 않고 오로지 이건용 선생님만 집중 하도록 조언 했었다. 또 이건용 선생에게 달려가 아산갤러리를 도와 주시라는 말로 선생을 설득해 다시 모시고 오곤 했었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어느 날 맹기호 화백은 매일같이 찾아오는 갤러리 이지만 그날은 갤러리 안으로 들어 오지도 않고 밖에 선 자리에서 나에게 심오한 말 한마디를 했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이건용 선생은 세계미술사의 중심에 서서 세계에서 가장 그림값이 비싼작가로 남을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선생과 헤어지지 말고 함께 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 당부를 마지막으로 웃으며 나간 선생의 비보가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그 말은 맹기호 선생이 나에게 한 마지막 유언이 되어 버렸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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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맹기호 선생이 돌아가시고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건용 선생과 나 사이에는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었고, 중개자 없었던 선생과 나에겐 각각 서로 다른 이간질까지 덮치면서 화해의 기회조차 만들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선생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던 이건용 선생과는 절대 다투지 말라는 말을 내가 져 버리고 만 것이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맹기호 화백은 나이가 54살인 2006년이 되어서야 처음 그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비 전공자였던 선생의 그림은 언제나 전공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그게 서운했는지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고, 그리고 2년 과정을 마치고는 곧바로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집념도 보였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맹기호 화백은 하루 중 대부분을 그림에만 매달렸고, 그림을 시작 한지 불과 5년만에 과로로 인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그 짧은 시간에 남긴 작업은 드로잉을 포함 600점에 가까웠고, 다음 작업을 위해 미리 준비한 기초 작업도 500점을 넘길 만큼 선생은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언제나 나에게 먼저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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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그런 선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언제나 2% 부족을 들먹이며 트집만 잡았고, 그토록 원하던 개인전 한번 열어드리지 못한 채 선생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선생의 모든 흔적을 갤러리로 옮겨와서 봉인하듯 해 놓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다짐에 다짐을 한다.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33 -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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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젠가는 반드시 맹기호 선생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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