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신항섭(미술평론가)

현대미술에서 전면회화는 빈번하게 나타나는 회화양식이다. 화면 전체를 균질한 질감 또는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만으로 채우는 표현방식이다. 다시 말해 특정의 이미지가 중심을 잡는 게 아니라, 같은 이미지의 나열이나 초점이 없는 화면구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방법론을 중시하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전면회화는 하나의 경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일한 이미지의 반복과 나열이라는 방식을 통해 화면 전체를 채우는 작업이다. 이렇듯 화면의 균질성은 한국미술계에서는 ‘단색주의’ 회화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태희도 여기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그 조짐은 일찍이 있었다. 스스로 ‘섹슈얼’이라는 용어로 규정하는 구상작업에서 기하학적인 직선의 나열 및 배열이라는 동일한 이미지의 반복이 있었다. 지금도 전면회화 작업과 병행하고 있는데, 무수한 직선이 그리드를 형성하면서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그 안쪽에는 인체가 흐릿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발을 통해 들여다보는 듯싶은 상황이다. 그러고 보면 직선의 그리드는 인체의 이미지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같은 크기의 수직의 선들이 횡렬을 이루고, 그 횡렬이 반복해 이어지면서 그리드를 형성하게 된다. 수평의 그리드가 화면 전체를 채우는 지극히 간결하고 단순한 구성이다. 이들 수직의 직선과 그리드는 인체를 반투명의 상태로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바코드를 연상케 하는데, 흰색의 선을 채도의 높낮이로 조절함으로써 바코드와 유사한 이미지를 보여주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평의 선과 수직의 그리드로 되어 있는 작품도 있다. 이는 일테면 조형의 변주인 셈이다. 

  최근에 시작된 전면회화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이전의 구상작업에서 이미 싹을 보이고 있었음을 실증하고 있다. 인체를 발로 가려놓는 듯싶은 수직의 선들은, 선 사이사이에 알록달록한 채색을 입힘으로써 선이 면과 하나가 되는 구조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작은 단위의 색 면들은 독립된 장방형의 형태를 가지기 직전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색채의 면들에 장방형이라는 독립된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장방형이라는 기본 단위로 가득한 전면회화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이전의 구상작업에서 인체의 이미지를 제거하면 바로 전면회화로서의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면회화 방식을 결정하는 기본 단위인 장방형의 이미지가 출현한다. 그는 이 이미지를 바람과의 연관성으로 설명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만국기에서 착상한 것일까. 아무튼 장방형의 이미지는 이전의 구상작업에서 쓰이던 직선과 그리드가 변형된 상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직선이 장방형의 이미지, 즉 카드와 유사한 형태의 작은 이미지들이 병렬을 이루고 그 병렬이 그리드를 형성하면서 화면 전체를 덮는 방식이다. 거의 같은 크기의 장방형 이미지들은 무한 반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은 장방형 이미지들은 캔버스에 갇히지 않는 바깥으로의 확장성을 가진다.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신항섭 미술평론] 김태희 작품세계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아름다운 집적의 미’

 

  이렇듯이 아주 작은 크기, 캔버스 크기에 따라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장방형 이미지들이 수직으로 횡렬을 이루고 그 횡렬이 상하로 이어지면서 캔버스를 가득히 덮는다. 이러한 이미지 구성방식에서는 장방형의 이미지들만의 집적을 가져오고, 집적된 이미지는 리듬과 질서를 형성하게 된다. 단순 반복이라는,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이미지 집적임에도 리듬과 질서로 인해 시각적인 즐거움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작은 장방형 이미지는 단순한 평면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표정을 가진다. 장방형 이미지에 띠, 즉 선이 지나가거나 그러데이션 기법이 적용됨으로써 표정이 생긴다. 작품에 따라서는 삼각형과 유사한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들어서기도 한다. 그 표정을 결정짓는 이미지는 장방형의 이미지와 함께 이중적인 형태의 집적이 이루어진다. 이로써 장방형의 기본 단위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표정의 집합으로 전체적인 인상이 결정되는 것은 물론, 작품으로서의 개별성 및 독립성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갖가지 표정을 부여한 장방형의 이미지들로 채워지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 장방형의 이미지는 최종적인 표현이 되는 셈이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십여 차례의 작업을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가 겹쌓이게 된다. 눈에 보이는 장방형 이미지 그 안쪽에는 겹겹이 쌓이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반복되는 작업에 의해 다층구조를 이루게 된다. 물감을 흘리고 뿌린다든가 주사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가느다란 물감의 선을 만들어 덮기도 한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기법을 혼용하고, 십수 차례의 작업 과정을 통해 겹겹의 물감의 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최종적인 장방형의 이미지를 견고히 떠받치는 구조물로서 기능하게 된다. 어쩌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다층구조의 화면을 만드는 건 불필요한 노력의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그는 애써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구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중층의 추상적인 색채 공간은 작품의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 때문이다. 장방형의 형태 사이로 그 존재를 살짝 드러내는 중층의 추상공간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손의 기능과 정신과 감정이 합일하는, 시각적인 공간 너머를 상정하는 사유의 터전이다. 

  그림이 단순히 시각적인 이미지만으로 그 존재가치가 끝난다면 반복되는 행위와 그에 따르는 감정 및 의식의 흐름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하는, 즉 창작행위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단순히 시각적인 이미지로 결말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고 선을 만드는 행위에는 반복되는 과정에서 안정된 기술, 평온한 감정, 의식의 집중이 일어나는데, 이는 최종적인 결과물을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다층구조의 바탕은 심도와 관련이 있다. 단색의 바탕 위에 존재하는 장방형의 이미지와 다층구조의 색채 공간 위에 얹히는 장방형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가진다. 평면 공간에 직접 밀착되는 얇은 장방형의 이미지는, 두께를 가진 다층의 색채 공간에 자리하는 장방형 이미지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면회화 형식을 따르는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성과는 다름 아닌 방법론이다. 한마디로 결과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현대미학의 속성을 이해하고 중시한다는 얘기다. 눈에 보이는 건 작은 부분이지만 기하학적인 장방형 이미지의 집적에서는 심미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차피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표현행위는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행위로 인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엄연한 사실을 직접 보지 않는다고 하여 의심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는 장방형의 단순한 이미지의 집적과 나열이 가져오는 동어반복 또는 자기복제의 함정을 의식해, 채색으로 변화를 준다. 작품마다 색채이미지를 달리함으로써 시각적인 차별과 작품 하나하나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회색조, 청색조, 등 일련의 단색조의 색채이미지와 두세 가지의 색채를 병치하거나 그러데이션을 주는 경우 등 일련의 색채이미지로 조형의 변주를 꾀한다. 그리고 그리드에도 조금씩 변화를 준다. 테이핑으로 정확한 간격의 그리드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리드에 근사한 구조를 가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모두 조형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장방형의 이미지를 배치하는데 질서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배치가 이루어지는 작품은 무질서한 듯싶지만 유사한 이미지들의 집적이 만들어내는 심미 표현은 또 다른 조형적인 해석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작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주제나 방향성, 확장성 그리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탓할 데가 없다. 시작 그 자체만으로 높은 완성도를 실현함으로써 개별적인 형식의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다. 더구나 동일한 이미지의 반복과 이미지의 집합 및 집적은 전면회화로서의 명확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모호하거나 애매한 이미지가 아니라 기하학적인 또는 그에 근사한 기본 단위야말로 개별적인 형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어느 면에서 삼각형이나 사각형 그리고 원은 그 자체로 완결된 형태이다. 그 하나인 사각형인 장방형의 형태를 기본 단위로 하는 그의 작업은 태생적으로 실패할 이유가 없지 싶다.  

  이러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그의 전면회화는 이후 무궁무진한 변주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표현 방법, 즉 방법론 또한 현대미학이 추구하는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즉 형식과 내용이 등가를 이루는 조형세계인 것이다. 물론 이처럼 잘 갖추어진 시작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면서 완결된 형식미로 귀결하리라 기대한다. 그럴만한 풍부한 감각적이고 지적인 이해력 및 해석력을 갖추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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