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눕는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하였다.

몰입대상과 하나가 된듯한 일체감을 가지며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는 과정을 몰입(flow)라는 용어로 정의한 것이다. 작품에 몰입할 때,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바로 '몰입의 즐거움'일 것이다. 몰입하면 자의식이 사라지고, 자의식이 사라지므로 고통 또한 사라진다. 필자가 심리상담이라는 본업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작품 활동을 놓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엄마가 눕는다
엄마가 눕는다

 

엄마가 눕는다
누워서 언덕이 된다.

엄마의 얼굴은 사라지지만

엄마는 누워서 커지고
 퍼져서 하늘이 되어 간다.
 
-작가 노트 중에서-

위 사진은 최근에 완성한 '엄마가 눕는다'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나의 어머니는 2년 전 낙상사고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게 되었고, 최근에는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그 후유증으로 심각한 상태를 맞이했었다. 필자는 유일한 딸이자 주 보호자로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야만 했는데, 응급실을 오가면서 또한 병동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딸에게 어머니란, 보다 깊은 복합적 의존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사라지는 느낌으로 인한 상실감이 무척 컸다. 집안의 기둥으로서 언제나 합리적 결정을 해오시던 어머니는 불과 2년 만에 딸조차도 알아보시지 못한 채 튜브를 꽂고 흐린 눈망울로 신체적 고통만 호소할 뿐이었다.

비록 상담심리사로서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돌봐 온 필자이지만, 개인적인 심리적 고통은 솔직히 털어놓을 데가 없고 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 그림은 나의 유일한 경청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필자는 '반려화'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작품에 몰입할 때 생각과 감정은 사라지고 작품만 남는다. 그리고 몰입할 때 붓은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이 작품 또한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 중 하나이다. 즉 필자의 자기치유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어머니의 기억이 사라지므로 얼굴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 땅으로 서서히 어머니를 돌려보내는 것 같은 느낌들이 모두 그림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작업 말미에 붓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빛들을 작업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승화되는 과정 또한 일어났다.
작품에 몰두하게 되면 저절로 승화가 일어난다. 즉 심리적 고통에 대한 표현, 몰입, 그리고 드러남은 그 자체로 승화인 것이다. 작품의 결과보다, 작품으로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를 유사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자기치유과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치유는 일어나므로.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 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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