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용산 국민 품으로
부제: 수도 서울, 보물지도를 품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탁란의 계략, 축제를 품다.
◦탁란의 계략을 끊다.
◦조선의 아침
- 호국성전 스토리           - 유네스코 스토리
- 치유의 문화축제           - 유불선 합일 스토리
- 인왕산 국사당 굿당 철폐와 국사당 다례복원을 하여야 한다.
- 국사당 관음전 다례복원    - 설득력과 보편성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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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의 계략, 축제를 품다.

한양도성의 멘토는 스님이었다. 97구간의 모든 정령은 금수강산의 민초였다. 이 간결한 명제는, 결코 한양도성과 서울의 아우라는 이씨조선 왕조의 노획물이 아님을 응변한다. 조선과 고려를 연결하는 황금시대를 설계하는 판타지아다. 한양도성의 중심에는 호국 불교의 성지 <선바위> 법당이 존재한다. 인왕산 솔밭만큼 아스라한 조선의 격조를 지키는 곳이다. 고려의 국사인 나옹 선사, 조선의 국사 무학의 여여한 기도터다. 물론 수도 서울의 밑돌이다. 혹자는 조선의 역성혁명을 통하여 승유억불의 역풍을 말하고자한다. 물론 삼봉 정도전의 이상세계는 도도했다. 개혁의 밑그림은 불교철폐였다. 종, 정의 분리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호국성전 인왕사의 존재는 동서남북으로 비보사찰 운영을 주관하고 있다. 진관사, 승가사, 불암사, 삼막사의 도도함이다. 한양도성의 울타리를 지키고 있다.

숭례문을 승전문으로 알고 있는 일제는 숭례문을 나폴레옹의 승전문처럼 추앙했다. 임진왜란 때 그들이 입성했던 문이었다. 물론 흥인지문도 이러한 이유로 존치케 했다. 돈의문은 철거되었다. 광화문은 논박 끝에 궁 뒷문으로 추방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정문을 막아선 이유다. 대일본영의 설계도는 목멱의 국사당을 인왕사 성지로 옮겨놓게 된다. <탁란의 계략>이다.

목멱산을 남산 동산쯤으로 삼고 벚꽃 놀이터이자 조선신궁의 가라오케 급으로 전락시켰다. 왜, 이러한 치밀함이 요구되었을까, 국사당-인왕사의 존재가 무엇이기에 철거만으로 부족해서 탁란의 계략을 시도한 것일까! 질문과 대답을 거듭한 끝에 우리의 <존엄>을 읽게 되었다. 물론 <문명의 방>이다.

인왕산 인왕사는 고려와 조선의 연결이다. 아득한 우리의 뿌리와 만나고 있다. 트실 한 역사의 파노라마를 공유할 수 있는 터미널이자 허브다. 인왕산 선바위법당의 격조는 대흥사 서산대사의 법력과 도도히 조우하고 있다. 탁란의 계략을 매듭질 법력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아침-인왕, 고려의 하늘-백악, 용의 눈물-낙산, 봉황의 꿈-목멱, 은하수의 전설-청계천과 한강을 연결하는 첫 매듭은 인왕산 인왕사 선바위법당의 원형질을 읽는 마음이다. 개산대제의 염원이다.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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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성전 스토리

대국 침략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러 나간 장군은 순교자가 되었다. 그러나 장군은 침략에 맞서 결국 승리하였고 잘린 자신의 목을 품고 조국에 승리의 소식을 전하러 간다. 그 길을 순례자의 길이라고 부른다. 곧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이다. 온 인류가 감동하며 그 길을 <순례자의 길>이라 칭송하며 <치유와 용서의 길>로 여행을 떠난다. 위대한 여행상품이 사랑을 받고 있다. 스페인의 관광 고도화는 모든 나라의 부러움을 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라톤의 미학>은 인류평화의 제전을 빛나게 하고 있다. 절대절명의 위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 승리의 소식을 조국에 알리려 달려온 거리가 42.195km 이었다. 마라톤거리다. 물론 승리의 소식을 알린 병사는 소식을 전하고 죽고 만다. 후세의 많은 이들은 병사의 정신을 기려 마라톤의 미학을 평화의 제전으로 승화하였다. 올림픽경기 중 유일하게 하사하는 월계관이다.

올레길, 둘레길 스토리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가 고향 제주도에서 시작한 소박한 땅 사랑이었다. 우리 땅을 읽는 철학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올림픽의 마라톤에 비추어 제주도의 올레길, 요즘 유행하는 둘레길에 반드시 꾸려야하는 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종교, 국가, 민족차원의 승화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평화, 사랑, 치유를 만나게 하는 철학의 부재다.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 올림픽의 마라톤은 비록 조국사랑을 씨앗으로 삼고 있으나 결코 전쟁, 애국차원에서 머물고 있지 않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인종, 국가, 신념의 차원을 넘어 사랑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서산대사와 무학대사의 스토리는 온 인류의 사랑을 받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문화적 서사의 스토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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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스토리

 수도 서울의 위상은 숱한 잔상을 담고 있다. 식민지, 분단, 전쟁, 한강의 기적, 정보화시대, 참으로 격정적인 역사의 드라마 이미지다. 한류열풍이 뜨거워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조선의 마지막 개국을 통하여 식민지국가가 되었다. UN이 창립되어 최초로 UN군을 보내 국제전쟁을 치르게 된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져도 우리의 D.M.Z.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숱한 잔상의 무거움이 우리를 경직시키고 있을 뿐이다.

 <문화>는 <무거움>을 오히려 멋진 스토리로 번역할 능력과 책무를 내재하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목을 안내할 에너지다. 문화는 거친 파도를 넘어 고유한 물결로 승화시킬 에너지를 작동시킨다.

 이집트문명의 침략사는 유럽열강과 페르시아, 회교원리주의, 유대교 교량 중심에 서 있다. 그럼에도 피라미드에 대한 인류사랑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아수안댐 공사로 피라미드유적이 매몰될 위기에 처하자 모든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함께 하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철학이다. 한국산사 유네스코 등재의 정신은 도도함의 명제를 안고 있으며 문화에너지를 발현시키는 방향성이다.

 한양도성은 600년 전 스님들의 지도와 감수 속에 완성된 호국성지다. 무학대사, 서산대사의 혼 결이 깨어나는 여울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치유의 문화축제

 한양도성은 18km, 99구간으로 나누어 완성되었다. 조선팔도 모든 백성이 참여했으며 고려의 문화중심에 있던 불교의 스님들은 건축, 안보의 멘토였다. 고려 팔만대장경 드라마를 살펴보아도 호국성지를 완성하는 중심 주체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프로그램은 치유, 문화 축제가 되어야한다. 국사당, 성균관, 삼청전, 소격소, 종친부를 읽는 치유의 축제다. 왕건의 6조는 문화의 완결판이었다. 팔관회, 연등회를 중심으로 석천대제가 합류하고 있다. 또한 수륙대제는 고려, 조선의 연착륙을 의미하고 있다.

일제식민지, 근, 현대화과정을 거치며 기독교문명의 융합, 실험은 독보적인 문화형태를 내재하고 있다. 이 또한 함께 하여야할 주요한 가치일 것이다. 불교, 유교, 도교, 민족 신앙, 기독교의 융합은 결코 간단치 않은 방향성이다. 그럼에도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유네스코 프로그램은 함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 <치유>를 통한 <문화축제>의 전당이 될 것이다.

숭례문 방화, 숭례문 부실복원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한 상처다. 오히려 상처는 깊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일제식민지 탁란의 계략으로 인왕사에 국사당이 존재한다. 종친부 존재 자체를 말살시키려는 식민지계략보다 아픈 상처를 잉태시키고 있다. 깊은 통찰의 사유가 요구되는 것은 한양도성의 모든 것이다.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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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불선 합일(合一) 스토리

 고려의 정점은 문화융합의 실험장이었다. 려말 정국의 유교혁명을 통한 조선건국의 결과물도 문화 여울목 차원에서 살펴봄이 마땅하다. 조선건국의 엘리트그룹은 불교문화, 유교문화의 충돌이 아니라 융합의 필요성을 정책으로 선택하였다. 위민정책의 선택이다. 호국불교의 정통성은 삼국시대에 꽃을 피워, 고려 건국과 함께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 왕족의 사찰은 이러한 맥락에서 도도히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배불승유>의 방향성은 문화정체성의 모순을 조정하고 유지하는 고도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이른바 <유불선 합일>의 정신세계다. 그러나 유불선 합일사상은 삼국시대부터 <도교> <선> 사상의 실험을 토착화하여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융합의 단초가 내재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선 건국의 태조 이성계의 사상적 내재는 융합의 태제다. 위화도 회군, 유교혁명의 그림자를 확연히 읽기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삼청동-삼청전의 일화는 고려의 신하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야한다. 또한 무학대사와 이성계 자신의 관계를 통하여 유불선 합일의 의도를 확인한다.

<효령대군>의 발자취를 통하여 조선의 사상 밭을 음미하는 초석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유불선 합일 사상의 완결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의 융합 초석은 <유불선 합일>의 드라마였다. 효령대군의 합일사상의 초석은 종친부 원형복원, 인왕사, 성균관, 국사당, 뚝섬법당의 맥락을 유유히 음미하는 정형임을 탐복할  뿐이다.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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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국사당 굿당 철폐와 국사당 다례복원을 하여야 한다.

 수도 서울의 호국불교 성지인 인왕산 인왕사는 우리가 보존해야할 성지이자 문화의 전당이다. 무학대사의 천일기도가 서려있는 자연법당 선바위는 인왕산 솔밭과 함께 서울시 보호림 제1호로써 종교수행자, 신도, 산을 찾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관음전, 보광전, 대웅전, 선암정사, 기원정사는 선바위와 함께 전통사찰 인왕사로서 특별히 보존, 계승하는 전통문화 보호지구다.(인왕사 사적비)

 일제시대, 조선얼 말살정책으로 목멱산(남산) 국사당을, 인왕산 인왕사로 옮겨놓게 된다. 그 자리에 조선신궁을 짓기 위한 계략이었다. 조선신궁과 국사당은 국가의 중심신사였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일제는 왜, 국사당을 호국불교의 성지 인왕산 인왕사에 옮겨놓았을까, 탁란의 계략이다. 불교-민속종교의 충돌과 갈등을 초래하게 한 것이다. 국사당 문화는 불교의 법례와 상극이다. 소와 돼지의 생명을 받치는 당 문화 때문이다. 살생을 금하는 청정도량 인왕산 인왕사의 법맥을 끊어놓는 계략을 일제는 노렸던 것이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분노할 사건이다.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인왕산 국사당)는 일제의 탁란 계략이다.

 국사당은 목멱대왕을 모시는 국가의 신사 격이다. 지공, 나옹, 무학대사와 함께 신사 격으로 모셨던 주요한 제전법당이다. 국사당과 함께 관음전을 두어 다례 제를 정성스럽게 올린 것은 청정한 법례를 말하고 있다. 지공, 나옹, 무학대사는 삼화사의 삼 화상을 모시듯 고려와 조선을 잇는 불교의 대 법맥이다. 목멱신사는 고구려의 적통성을 부활시킨 고려의 중심사상이었으며 단군의 신앙 처다. 최영, 정도전, 정몽주 신위와 함께 국사당을, 목멱산 목멱신사를 다례로, 법맥을 잇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명일 것이다. 일제의 탁란 계략을 극복하는 첫 단초다. 국사당의 굿당은 당장 철회되어야한다. 인왕산의 청정한 자연을 더럽히는 비극은 단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사당 굿당 운영은 불법이다.

 전통사찰 인왕사는 국민 모두의 뜻을 모아 국사당 원형복원 청원입법 준비를 하여왔다. 일제시대 탁란 계략을 끊는 일이다. 한편으론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이다. 세계유산위원회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산사의 건물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2) 종합정비 계획을 수립하며
3) 세계유산 등재이후 관광객 대응책을 짜는 한편
4) 산사 내 건물을 신축할 때는 세계유산 센터와의 협의를 한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가이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
(전통사찰 인왕사 총회 협조공문)

인왕산을 사랑하고 호국불교의 성지, 인왕산 전통사찰 인왕사를 사랑하는 서울 시민의 뜻을 모아 국사당 굿당 영업을 중지시켜야함을 제안한다. 전통문화의 다례로 복원, 보존되어야한다.(국사당 원형복원 서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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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당 관음전 다례복원

고도 문명국가의 원형은 온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붕괴되어 볼품없는 돌 조각 하나마저도 정성을 쏟아 보존하고 승계한다. 종교성을 보존함에 더욱 더 엄격해지는 것은 온당한 방향성이다. 불경, 성경의 존재가 그러하고 유학, 성리학풍 역시도 고매한 탐구는 계속된다. 켜켜이 쌓인 퇴적층 위에 쌓아올린 탑과 같다. 아티스트의 조각품처럼 불순물을 제거한 정수다. 수도 서울의 문화유산을 읽는 준비단계다. 고도 문명의 정수를 읽는 마음결이다.

조선개국과 함께 창건된 전통사찰 인왕사는 600년의 도도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선바위 법당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자연법당이다. 무학 대사의 천일기도가 서려있다. 선바위 법당은 인왕사 가람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석불 아미타부처님을 비롯하여 나옹 스님의 기도터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 제1호 자연숲은 인왕사 솔밭이다.

한양도성, 조선정궁 경복궁의 설화가 전해져오는 전통사찰 인왕사의 존재는 한양 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시작이자 중심과제다. 고도 문명국가의 원형을 간직한 <탁월함, 보편성>이다. 조선 문명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있던 일제는 경복궁을 중앙청건립을 통하여 제압하려했다. 대일본영, 청와대, 중앙청, 시청건물의 설계도는 그들의 상형문자다. 분명, 열등감의 소산이지만 목멱산, 국사당을 인왕산 인왕사 가람에 옮겨놓은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조선신궁을 목멱산에 건립하며 행한 일이다. 왜 인왕산 인왕사에 국사당을 옮겼을까! 열등감에서 비롯된 탁란 계략이다. 어미는 자식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키우는 비극을 초래하기 위한 계략이다. 인왕산 인왕사 가람에 놓이게 된 국사당의 뿌리다.

불교의 법례와 국사당의 무속제례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법례에는 무속 제례는 금기다. 인왕산 인왕사 가람의 법례를 뿌리째 뽑아낸다. 조선신궁을 건립키 위하여 민족 신앙처를 뿌리째 흔들고 서로 앙숙지간을 조장했다. 불교 법례를 무속 제례가 뛰어넘어 상극을 이룬 적은 없다. 불문율로 전해 내려온 하나의 예법이었다. 인왕산 인왕사 가람의 국사당은 관음전 다례로 전승을 복원시킴이 마땅하다. 국사당-당 운영권의 불법운영을 정지시켜야한다. 국사당, 관음전, 초례의 법력을 되살려야 마땅함을 선언한다.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의 특별함은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진 역사다. 종교, 정치, 경제, 사회의 편견과 틀을 벗어난 공유의 전당으로의 자리매김이 요구된다. 민속제례, 당 문화의 혐오감(소, 돼지, 제례상)은 정화되어야한다. 인왕산의 정화다. 국사당원형 입법청원 준비와 함께 국사당, 당 제례 운영권을 회수해야한다. 관음전 다례의 전통을 복원함이 마땅하다.
■ 설득력과 보편성

물론 설득력은 보편성과 품격을 유지한다. 흔한 검증의 단계를 뛰어넘는 자리매김이다. 족적을 남긴 그들의 기호는 유효해 보인다. 그럼에도 암초는 도사린다. 보편성과 품격은 지극히 평범한 논리 위에 놓인 허구일 때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역사논쟁이 그러하다. 설득력 가득한 역사기술의 완연함은 대부분 승자독식의 축제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이해한다. 역사논쟁은 종교 성전에도 뿌리를 깊게 내린다. 각색, 원색의 덧칠은 계속 첨가된다. 우리가 맞이하는 종교 예술의 진화는 덧칠이자 원색의 결과물이다. 애착의 극치 덩어리지만 오히려 애착의 끈이 정수를 잉태하곤 한다. 아트의 명제다. <르네상스>의 정수는 규칙으로부터 탈출한 아트의 실험이다. 그렇다면 설득력의 기준과 직면한 한양도성의 파고를 맞이해본다.

조계종 법맥은 그다지 아득하지만은 않다. 결코, 한국불교의 법수를 도도히 수렴하였는가는 의문이다. 단지 경허스님, 한암스님, 수월스님의 선문답의 층이 결을 이루었음이다. 강석주스님과 칠보사, 그리고 선학원의 테제가 주요한 것은 그 자체다. 그럼에도 삼청동 <고려의 하늘> 켠을 수사하거나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칠보사 큰 법당 한글 현액이 보여주듯 아득했던 해방공간의 치열한 순수주의를 만나게 된다. <강석주 스님과 박희선 선사>의 그 곳은 분명 삼청동의 하늘, 고려의 하늘이었다. 박희선 선사가 말씀하신 <조선의 마지막 중, 강석주 큰 스님>이다.

 인왕산 인왕사의 법맥은 오히려 여래종 인왕스님의 아득함으로부터 사유된다. 대한제국으로부터 침하된 무허가 사찰부락의 함몰을 받아들이고 금강 뻘에 세운 여래사의 아련함이다. 선바위골, 그 곳의 성성한 솔밭처럼 <조선의 아침> 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일엽스님의 자취는 그 자체다. 성철스님의 피붙이 스님의 타경을 데자뷰 하듯 일당스님과 성북동 아틀리에는 지금도 눈물이다. 왜 그러할까! 일당스님의 예술세계가 현해탄의 아스라함만큼 맺혀있다. 그 곳엔 만해스님, 법정스님 이슈가 도도해도 눈물이 가깝다. 일당스님의 애착덩어리가, 성북동 콘크리트미술관이 다가오고 있다. 일당스님으로부터 용의 승천은 <눈물>이 되었다. 안양암의 빛을 만나면 더욱 고유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봉황의 꿈>은 한 여인의 몫이었을지 모른다. 스물일곱 차례의 천제를 스스로의 몫으로 올린 <도깨비> 여인의 업보다. 목멱대왕은 단군이요, 우리의 시조다. 물론 국사당의 결은 능히 일본의 신사를 뛰어넘는 결이다. 도깨비원장, 김재연의 숙명은 봉황의 꿈을 내재한다.

뚝섬법당은 조선 초 효령대군의 퍼포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뚝섬법당의 법맥은 이건호 회장의 울림이다. 뚝섬자락은 우리의 혈(穴)을 읽는 관문이자 첫 걸음이다. 그렇다면 한강 뚝섬법당, 천도수륙제의 원형은 무엇일까. 삼청초제, 개산대제, 목멱천제, 용왕산신제의 보편성과 품격을 위한 서사는 왜 부재한가.

강석주 스님, 일당스님, 인왕스님, 그리고 박희선 선사님은 이미 열반하셨다. 김재연 원장, 이건호 회장의 숨결은 얼마나 지켜내질 지 …….

조선의 아침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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