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한창 뜨거운 여름이 시작된 7월의 첫날에 아트 코리아 촬영팀은 김주연 서각 명인을 찾아 나섰다. 용인시에 있는 그녀의 아카데미 갤러리는 마트 옆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공방 겸 아카데미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마침 제자들의 서각을 지도하고 있는 명인의 모습을 본 기자들은 잠시 지켜보았다. 명인 인터뷰를 하는 영상 속에 ‘딱, 딱’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그 소리가 바로 서각도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이다. 제자들은 그날 마쳐야 할 서각 작업을 진행해야 해서 영상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멈추라고 할 수가 없었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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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은 9살에 아버지 친구분이신 강세환 선생님을 서예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스승님께서 자연을 벗삼아 살라고 호산湖山이라는 호를 주셨는데 그때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웠고 평생 글씨만 쓰고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서예에 이어 서각을 시작했다. 서각은 애초에 묵적(먹 흔적)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염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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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하는 나무로는 은행나무, 알마시카, 느티나무, 대추나무 등을 사용하는데 김주연 명인은 은행나무를 즐겨 사용한다. 은행나무는 비교적 칼 터치가 수월해 양각할 때 글씨의 깊이를 깊게 하여 글씨를 돋보이게 하고 살충, 살균 성분이 있어 벌레가 없고 200년을 보존할 수 있는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서각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편도와 서각도를 사용하여 오로지 손작업으로만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요령도 없고 나무의 결도 몰라 다치기도 하고 스승께 야단을 맞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김주연 명인에게는 서예 스승과 서각 스승 두 분이 계신데 서예 스승님은 작고하시고 서각 스승님만 생존해 계신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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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에게 서각이란 어떤 의미냐고 묻자 구방심求放心, 즉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 한다. 흐트러진 마음을 잘 추스리고 다시 불러 모아 놓친 마음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벗과 같다는 말이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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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해 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갈등으로 고민할 때였다. 이제는 대중의 기호나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내면서 일관성 있는 작품을 하여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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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이 된 이후의 달라진 점과 바라는 점에 대해 묻자 아카데미 제자들에 대한 교육과 전승 과정을 통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고 대답한다. 바라는 점은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오직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라고 답한다. 서예나 서각이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직업이 아니라 서예, 서각을 사랑하는 후학들에게 이 길을 쉽게 권할 수 없을 때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매일 500자에서 1000자를 쓰며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는 오늘도 ‘만 권의 책이 가슴 속에 들어있어야 그것이 넘쳐 흘러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는 말씀에 따라 좋은 책을 읽고, 좋은 필적을 보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글씨(서예)는 마음을 쓰는 것이고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씨를 새기는 것(서각)은 곧 마음을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김주연 서각 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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