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어르신들은 백년설, 고복수, 이난영 같은 가수가 없었다면 1930~1940년대 그 막막한 시절을 어찌 견뎠을까. 일제의 문화 탄압이 극심했던 당시 고복수 ‘타향살이’(1934), 이난영 ‘목포의 눈물’(1935)은 신문사가 후원하거나 현상 공모한 행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백년설 ‘나그네 설움’(1940)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발길/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로 시작하는 첫 소절부터 나라 잃은 설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6·25 직후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1953), 남인수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4) 같은 노래가 없었다면 전쟁으로 꺾인 무릎을 어찌 다시 펴고 나라 재건의 기운을 차릴 수 있었을까.

누구는 지게 목발 두드리다가 누구는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 털다가 그대로 트로트 박자가 됐다. 그 덕에 팍팍한 세월을 뚫고 나갈 수 있었다. ‘파’와 ‘시’를 뺀 ‘도레미솔라’ 달조 소음계와 흔히 뽕작 이라 부르는 2박자 가락이 우리 성정에 딱 맞았다.

올 들어 TV 방송에 12부작 ‘미스타 트롯’이 주말에 최종순위를 가렸다. 지난 10년 지팡파, 종편 다 합쳐 35.7% 최고 시청률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번 르네상스 열풍은 비주류로 밀려있던 트로트를 화려하게 전면 무대로 호명했을 뿐 아니라, 진짜배기 ‘우리 것’을 즐긴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젊은이까지 열광케 하는 통세대적 장르로 금의환향했다.

더욱이 ‘코로나 19 사태’라는 국가적 비상 상황 속에서 거둔 성과다. 트로트는 1970년대를 고비로 포크 음악 같은 서양풍 장르가 유입되면서 뒷전으로 밀리는 조짐이었고, 1990년대에 이르면 급격한 쇠퇴를 겪는다.

물론 이미자, 남진, 나훈하, 현철, 송대관, 태진아, 심수봉, 설운도, 주현미 같은 빛나는 이름이 맥을 잇긴 했으나 전체 시장으로 보면 앞자리가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 ‘어머나’의 장윤정을 비롯, 박상철, 박현빈, 홍진영 같은 젊은 가수가 쏟아져 그나마 숨통이 틔었다.

‘미스터 트롯’은 결승전 날 문자 투표의 대폭주로 우승자를 정하지 못하는 곡절까지 겪었다. 그러나 “국민이 힘들고 어려웠던 때에 큰 위안을 줬다.”는 응원이 많았다.

특히 저마다 어려운 가정 사연을 가진 출연자들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국민을 감동시켰다. 다시 트로트 마법의 계정이다. 가수의 꿈을 품고 2년 전 태평양을 건너온 푸른눈의 미국인 마리아는 ‘울면서 후회하네’를 주현미 버금가는 구성진 가락으로 열창했다.

영락없는 서양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한국 정서에 시청자들은 감탄했다. 초등생 국악 신동 김태연의 트로트 도전은 제2의 정동원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응원의 박수를 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스페이스 A 출신 김현정의 새로운 변신 시도가 신선했다. 2002년 월드컵 한국전 경기가 열리면 거리가 한산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그 풍경을 재연하고 있다. 밤 10시 이후 대학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다가 항의 답장을 받기도 했다.

지금 미스터트롯 본방 사수 중입니다. 나중에요~. 미스터트롯 시즌 최고 시청률은 18.1%, 미스터트롯 시즌 최고는 35.7%였다. 개천용 탄생 드라마가 주는 짜릿한 감동, 땀 흘려 쌓아 올린 실력으로 겨루는 공정함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무엇보다 코로나 19로 지치고 불안한 국민들이 트로트로 위로받는 듯하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바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큰 것도 아니고/아주 작은 한마디/지친 날를 안아주면서/사랑~한~다~/정말 사랑한다는/그 말을 해준다면/...”,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트로트로 울고 웃으며 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모두 건강과 함께하시고, 방송사와 출연자 전원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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