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정원 'Triptych of Garden of Earthly Delights'

쾌락의 정원 'Triptych of Garden of Earthly Delights'

BOSCH, Hieronymus  Triptych of Garden of Earthly Delights  c. 1500 Oil on panel, central panel: 220 x 195 cm, wings: 220 x 97 cm Museo del Prado, Madrid
BOSCH, Hieronymus Triptych of Garden of Earthly Delights c. 1500 Oil on panel, central panel: 220 x 195 cm, wings: 220 x 97 cm Museo del Prado, Madrid

[아트코리아방송 = 김지인 기자] 프라도 미술관에서 발행하는 공식 도록에 소개된 내용을 위주로 조금 과장되게 한 작품 해설이다.

만약 원죄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림이 그려진지 500년도 더 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세 폭 제단화, <쾌락정원>은 늘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온 이 질문에 대해 화가의 해답을 보여준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정원>은, 환상적인 장면과 불가사의한 묘사로, 그러한 존재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작인 세 폭 제단화로, 다행히 잘 보존되어 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훌륭한 복원과정을 거쳤다.

보쉬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쾌락정원>은 관람자들을 그 자리에서 멈추게 하는데 그 흡입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일반적인 풍속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놀랍다기보다 충격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그러하듯이, 충격을 받고 그림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종말론적이고 끔찍한 꿈을 꾸는 듯 한 장면과 망상 속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화가의 믿기 힘든 상상과 창조의 힘에 사로잡히고 놀라워했다.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Carel van Mander가 언급한 표현을 빌리자면, 관람객들은 “보기에 무섭다기보다는 약간은 불쾌한, 환상적이고 기이한 공상들...” 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15세기 초현실주의의 예술이 사실은 연금술 및 점성술의 전통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 수도 있을까? 그는 그의 음울한 도안을 중세마술의 소용돌이치는 안개 속에서 끌어 냈을까? 그것은 중세시대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에 대해 단순히 알 수 없는 회상의 환각작용으로 그려진, 부도덕한 상상의 허구였을까? 

보쉬의 그림은 사람들의 말문을 막히게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질문으로 쩔쩔매게 하며, 작품에 대해 완전히 모순된 해석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편 보쉬는 난잡한 성행위와 그들의 종교적인 행동의 한 부분을 추잡하게 만듦으로써 순결함의 상태에 도달하기를 희망하는- Adamites의 분파에 속했었음이 틀림없다는 주장도 있다.

*Adamites: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이 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임을 낙원이라고 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몬타누스파, 마니교도 등 이단 종파들에게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1421년에 보헤미아의 다보르파라는 교파의 영구적인 호칭이 되었다. 이들은 약탈을 일삼았으며, 야간 무도회에서 야만적인 행위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옷을 벗고 생활하여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으며,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일반 사람들과의 교제를 회피하였다.

질문들과 난관들-아직 한 번도 정확한 답을 얻어내진 못했지만, 이 그림은 우리의 ‘발견을 위한 여행’을 늘 새롭게 만들며 우릴 초대한다. 이 특이한 전원의 목가적인 장면 혹은 타락한 성적 광기를 어느 정도로든 명백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덤불을 너무 많이 파내거나 잘라내지 않아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노출되어 있는 이 낙원의 정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쾌락정원>은 여러 가지 추문(scandal)들로 가득 찬 그림이다. 그 추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고, 종교적인 배경 안에 난폭하고 떠들썩하고 성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애초에 제단에 놓을 의도는 없었지만, 중심 패널에서 양쪽으로 퍼져나가는 접을 수 있는 양 날개를 가진 세 폭 제단화다.

왼편패널 세부도1[에덴동산]
왼편패널 세부도1[에덴동산]

잠시 동안, 만약 ‘이브가 절대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랬다_blank>면, 그 교활한 뱀의 설득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유혹도 인간의 타락도 없었을 것이다. 또, 지상의 쾌락 속에서 흥청거리는 것을 벌하는 것도, 열정을 분출하는 것을 벌하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격렬한 불길은 약한 화염으로 변했을 것이고, 적어도 지옥에서 자신의 영혼을 태워야만 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인간들은 자기들만의 공포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상에서의 인생은 천국에서의 삶과 꽤나 비슷했을 것이다.

왼편패널 세부도2 [에덴동산]
왼편패널 세부도2 [에덴동산]

기존의 보스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창조,원죄, 추방의 관례를 대신하여 창조만을 표현하였는데 이 장면이 육욕이라는 도덕적 주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즉, 여성의 창조가 육욕의 주제와 강한 연관성을 암시한다 하겠다. 세부도 하단의 검은불이 고인 작은 연못의 죽은 물고기는 인간의 죄악을 암시한다.

전통적인 에덴동산의 이미지인 풍성한 과일과 맑은 하늘, 동물들과 달리 괴기한 형태의 바위 봉우리가 등장한다.

중앙패널 [쾌락동산]
중앙패널 [쾌락동산]

중앙 패널 즉, 쾌락정원으로 눈길을 옮겨보자. 보쉬는 의도적으로 그의 쾌락정원을 왼쪽 패널의 에덴 동산과 오른쪽의 지옥 사이에 배치했다.

달리 말하면, 쾌락정원은 원죄의 장소와 형벌의 장소 사이에 놓여있다. 왼쪽은 아담과 이브의 창조로 시작되는 천국과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신은 이 첫 번째 결혼의 끈을 이어주는 중이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서 보면: 보쉬는 인간의 타락을 그려 넣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한 보쉬 학자 Belting의 경고에 따르면, “몇몇 야생동물들의 폭력성이 우리에게 이 목가적인 장면을 회의적으로 보게 해준다.

그리고, 그는 보쉬의 밤을 나타내는 모호한 창조물인 올빼미는 그 장면의 순결함을 파괴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심하게 채색된, 벌거벗은 남녀들로 가득찬 풍성한 볼거리를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거리낌 없는 성적 행동들과 함께 추잡한 욕망을 나타내는 여기저기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중에는 새, 생선, 기이한 창조물을 타고 날아다니는 인간들이 있고, 분수 주변을 행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딸기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 거대한 과일 조각 밖으로 기어가고 있는 사람들, 조개껍질이나 유리캡슐과 같이 생긴 기괴한 유기물 안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1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1

걱정이라고는 없어 보이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상한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혼란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 전경에는 규칙적인 개요가 없다.

이제 우리는 충격적일만큼 아름답고 기괴한 이 장면에서 다음으로 가야만 한다. 어떻게 이 지도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없다. 어떤 설명을 찾는 것도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연속은 우리를 소리쳐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그림의 수수께끼같은 언어를 찾아내며 만들어진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서 보쉬의 즐거움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수많은 관용어구로 우리의 관심을 끌어왔던 이미 정립된 학문이 아니라, 여기까지 새로운 그림의 언어로 전환되어 왔던 언어유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림 정원의 중앙에 있는 둥근 연못은 젊음의 샘이며 상상속의 동물들을 탄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다. 이 그림에서는 동물들이 가득한데 이 중 일부는 천국과 지옥 모두에 등장한다. 코끼리, 낙타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짐승들이 상징적 의미를 지닌 평범한 동물들과 함께 등장한다.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

보쉬의 <쾌락정원>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딸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들은 과육에서 느끼는 기쁨의 헛되고 덧없는 맛을, 그리고 과일을 집는 것은 순결함의 어떤 상태와도 관련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진정한 의미에서, 금단의 과일은 여기서 수확되고 있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당시의 생각들과 규범화된 임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화가 특유의 언어를 발견하길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모든 것들(그 시대의 생각들과 규범화된 임무들)과 관계없이, 인간의 덧없음, 육체적인 욕망과 부도덕한 욕구들의 결과를 경고했던 그 시대의 유명한 속담들을 이용해 작업했다. 

결국 괴물이 내밀고 있는 체리를 따먹기 위해 붕어처럼 입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은 육체의 욕망에 굶주려 있는 인간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해 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
중앙패널 [쾌락동산] 세부도

이러한 작업속에서 보쉬는 새롭고 독립적인 미술언어들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이상적인 세계를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보쉬의 이상적인 세계는 화가의 낙원을 어떤 속세의(실재하는 세상의) 경계밖에 둔다.

아마 이 환상적이면서도 어지럽고 그  당시의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 작업의  내용을 밝혀내는 학문적 연구는 향후로도 지속 될 것 이다.

중앙패널[쾌락동산] 세부도
중앙패널[쾌락동산] 세부도

육욕의 죄는 이국적인 식물에서 자라난 크고 투명한 방물에 갇힌 연인들에 의해 저질러 지고 있다. 유리구체라는 모티브는 연금술사의 도구들과 플랑드르의 속담 "행복은 유리와 같아서 빨리 부서진다" 라는 의미를 연상시킨다.  

우측패널[지옥] 세부도
우측패널[지옥] 세부도

오른쪽은 누가봐도 명백한 지옥이다. 인간의 수중에서 세상은 고문받는 방들, 전쟁들, 지옥과 같은 곳, 꽁꽁 얼어붙은 얼음으로 채워진 악마의 큰 냄비가 되었다.

심지어 음악조차도 순교의 도구로 변했다. 모든 음역은 악마의 건반으로 작곡한 것이다. 꿀벌통처럼 와글거리는 행동으로 가득 찬 중앙패널은 Belting이 칭했듯이, 어느 곳의 중앙도 아닌 천국과 같은 섬, 쾌락 정원에서 굴레를 벗어던진 환락을 보여준다.

어느 곳도 아닌 바로 그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이 감각적인 쾌락의 세계 안에 기독교에서의 천국도 지상에 존재하는 죄의 수렁도 참조하고 있지 않다.

우측패널 [지옥] 세부도
우측패널 [지옥] 세부도

상단의 어두운 배경은 다른 두 패널의 밝은 하늘과 분명히 대비된다. 그러나 지옥의 불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듯 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그림의 중앙에는 뿌리(팔)가 두척의 배에 고정된  나무 (남자) 의 모습을 한 자화상을 그렸다.

속이 텅빈 그의 몸 안에는 악마가 잠시 쉬기 위해 자주 들르는 지옥의 선술집이 있다. 그는 악과 육욕의 상징인 백 파이프가 달린 회전대를 머리에 쓰고 있다. 왼편에는 화살에 찔리고 큰 칼에 잘린  거대한 두개의 귀가 있다.일리있는 해석에 따르면 이 기묘한 지옥의 물건은 신약성서에 있는 "귀 있는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우측패널 [지옥] 세부도3
우측패널 [지옥] 세부도3

탐욕스러운 식욕을 상징하는 냄비를 머리에 쓰고 있는 새머리는  악의 존재를 상징하는데 그는 저주 받은 자들을 집어삼킨 다음 이들을 구덩이로 배설하고 있다.

탐욕스런 인간은 그 구멍에 금화를 배설하도록 선고받은 한편, 다른 죄인은 폭식에 대한  징벌로 구토를 하고 있다.

아래에는 벌거벋은 한 여인이 사탄의 옥좌의 발치에 가만히 누워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의 가슴위에는 두꺼비가 있다. 그녀는 악마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선고 받았는데 이는 허영에 대한 징벌로 해석된다.

지금까지의 세개의 패널중 인류 이전의 세계와 쾌락정원으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두 개의 바깥 패널을 다시 접어보자. 양쪽을 접어보면 뒷면에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마치 . 말 그대로, 닫혀 있고 색이 없는 세상을 펼쳐진다.. 세폭화의 바깥 날개를 넓게 펼치면, 뒤에 있던 잿빛의 텅빈, 무구한 지구에서 낙원의 재밌는 게임 속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다.

패널후면  중알패널을 중심으로 양쪽을 접었을 때[지구]
패널후면 중알패널을 중심으로 양쪽을 접었을 때[지구]

결국 이 작품은 수많은 가설과 해석이 난무하는 지금까지도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기 어려운 수수께끼같은 작품이지만 결국은 타락한 인간의 육체적 쾌락에 대한 경종인 동시에 그 타락에 대한 징벌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시지를 보냈던 듯 합니다.

그 밖에도 세부도에서는 정말 괴기하고도 당시의 상상력으로는 믿기지 않을만큼 특이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여 세부도를 몇개 더 소개하며 이번호를 마칠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다가오고 저 또한 나름대로 미술 공부를 하는 시간이 맣아 질 수 있을 듯 하여 그 동안 밀린 공부를 더하는 마음으로 자주 페이퍼를 발행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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