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도스에서는 2020. 3. 18 (수) ~ 2020. 3. 24 (화)까지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이 열릴 예정이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끝나지 않는 예고편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만다라는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즉시 지워짐으로서 완성되는 깨우침이다. 심혈을 기울여 가득 채워가며 목표에 다다르려 노력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종착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부 비워내야 한다. 비움의 수행은 사람에게 무욕과 무소유를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 깨우침이 지니고 있는 허무함 역시 우리로 하여금 채움의 과정에 몰두 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욕망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모래알갱이로 느리게 그려지다 결국 지워지는 만다라처럼 사람의 인생 역시 형체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리어 그 필멸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격렬히 불태우게 되는 동기가 된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유일리는 작품을 완성 상태로 보존해야 하는 평면 회화의 방식을 선택했지만 작업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깨달음을 만다라가 지닌 원의 형태로 그려냈다. 원형 캔버스는 일반적인 사각형 화면과 달리 구석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방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선을 가두지 않는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은 화면을 절단하거나 단절시키기 보다는 테두리 너머로의 확장가능성을 암시한다. 짙은 색으로 그려진 바탕에 그어진 밝고 가느다란 선은 유성이 남기는 빛의 자취처럼 희미하고 아련하지만 그로 인해 시선을 붙잡게 되고 기억에 강렬하게 새겨진다. 사람의 손으로 그려졌기에 미묘하게 힘과 속도의 변화가 보이는 선의 농도는 평면으로 그려진 작품에 깊이감을 더한다.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두께와 속도의 붓질은 반복되며 순환하고 있는 일상에 뜻밖으로 끼어드는 사건처럼 서로 겹쳐지고 뒤섞이며 새로운 한 겹의 면을 만들어 낸다. 화면 너머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지만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형상들은 거대한 사물의 일부를 확대한 돋보기 속의 광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원의 형태에는 순환이라는 성질이 있다. 시작에서 끝으로 그리고 다시 끝에서 시작으로 되돌아가며 지속된다. 하늘의 태양과 달처럼 세상을 비추고 잠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거대하게 보이는 섭리이지만 호수의 물방울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처럼 간단하다. 작가가 만다라로 부르는 그림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는 거창하거나 심오한 철학이 아니다. 살아가며 느껴온 쉬운 듯 했지만 알 수 없고 힘들었던 관계에 대한 나지막한 독백이다.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동시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일부가 담겨있기도 하다. 완전한 전부라고 여겼지만 작은 파편이었던 깨달음은 공허하게 보이기 쉽지만 각기 다른 온도의 아쉬움과 고마움, 후회와 결심의 숨결로 채워져 있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유일리가 원을 통해 그려낸 관계는 필요가 끝나면 허물어져 사라지는 현대의 효율이 빚어낸 차가운 이해 타산적 관계가 아니다.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귀가 잘 맞지 않더라도 섞이고 합쳐질 수 있는 원이며 서로에게 기억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확산의 원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스쳐지나가는 시간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자신은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작가노트
불완전함 너머로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은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귀로 들은 것은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진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쩌면 언제 깨져버릴지 모르고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불완전함 그 자체일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이 허상과도 같은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낱 미물일 지도 모른다.
 
선은 면이 되고, 면은 선이 되기도 하며 선과 면의 자리바꿈과 뒤얽힘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관계도 만들어진다. 완전하지 않고 불안하지만 무언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무언가 틈이 보인다.
그 너머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너에게 나를 본다.
비춰지는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붙이고 있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는 흔들 흔들 흔들리고 있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타자의 추방(한병철 지음)
우리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하나의 경험도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인지하면서도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정보와 데이터를 쌓으면서도 어떤 지식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체험과 흥분을 애타게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으면서도 어떤 타자도 만나지 못한다.
사회 매체들은 사회적인 것의 절대적인 소멸 단계를 보여준다.

유일리 ‘불완전함 너머로’展

유일리는 경희대학교 예술학부 서양화, 한국화 전공,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후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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