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 김한정 기자
  • 승인 2020.02.23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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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가 ▶ 허은영(Hur Eunnyong 許恩寧)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금호미술관(KUMHO MUSEUM OF ART)에서는 2020. 02. 27 ~ 2020. 03. 08까지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이 열릴 예정이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김영호(미술평론가)


소멸(消滅)한다 함은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대자연이 실행하는 가장 완벽한 섭리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예외없이 적용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소멸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 소멸현상이 품고 있는 역설적 의미는 그것이 생성(生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소멸하는 모든 것은 생성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하며 역으로 생성하는 모든 것은 소멸의 과정을 행하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소멸과 생성은 다르지 않은 현상이자 하나의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순환의 과정에서 에너지의 이동이 일어나며 형상이 바뀔 뿐이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허은영의 작업은 소멸과 생성의 연계성을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가 선택한 판화기법으로서 소멸판법(消滅版法)은 이 순환의 과정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소멸판법이란 문자 그대로 한 장의 목판 표면을 계속해 깍아내면서 그 과정을 종이에 찍어냄으로써 작업을 완성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즉 제판 과정과 프린팅 과정이 하나의 판 위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작품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마지막 프린팅을 끝내고 남은 판면은 마치 풍우에 깍인 곳간의 문짝처럼 앙상한 몰골을 지니고 쌓여있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판을 먹고 태어난 판화’로서 허은영의 작품은 독특한 물성(物性)을 드러낸다. 이는 여러차례의 프린팅 작업에 의해 올려진 물감 층이 만들어 낸 효과인데 마치 회벽의 표면과도 같이 거칠다. 허은영은 프린트용 잉크가 아닌 유화용 물감을 사용하고 있어 그의 화면은 매우 다양한 색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회화성이 강조되고 있다. 로울러에 의해 판면에 올려진 물감의 양과 바렌 작업의 강도에 따라 화면은 다양한 마티에르를 만들어 낸다. 때로는 파스텔 톤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크레용과 같은 느낌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물성의 다양성은 잉킹작업뿐만 아니라 제판의 과정에서도 온 것이다. 조각도로 새기거나 뜯어내고, 스크레퍼나 쇠솔로 긁어내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망치로 두드려 표면에 다양한 형상과 질감을 주는 것이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허은영의 소멸판법은 이렇듯 나름대로 개성적인 작업효과를 발생시키는 기법으로 실험되고 있다. 주지하듯이 이 판법은 동판이나 석판에 비해 일회적 성격이 강조되는 데다 에디션이 제한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멸판법은 독특한 회화적 화면효과를 연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판에서 프린팅의 전 과정을 주도하는 작가의 역량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에서 판화의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작품의 일회적 속성은 모노프린트 기법과 더불어 이전과 다른 차원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판화의 형식적 면과 더불어 허은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성은 내용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판화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소재로서 물고기와 꽃 그리고 나무와 낙엽등을 등장시킨다. 이 미물들은 유한한 시간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화면에 등장하는 이 미물들은 서술적 상황을 나타내지도 않고 장식적인 패턴으로 그려져 있다. 나아가 물고기는 숲과 산의 공간을 유영(遊泳)하고 있으며 때로는 흩날리는 낙엽이나 또는 여유롭게 줄지어 내리는 빗방울과 어울리기도 한다. 작가는 다소 서정적이고 의인화되어 있는 물고기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어떤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에 <녹턴(nocturne)>이라는 제목을 일괄해 붙여 놓고 있다. ‘야상곡’ 혹은 ‘밤의 꿈’으로 번역되는 이 제목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몽환의 세계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작가의 세계에는 사건이 없다. 거기에는 현실 사회를 주도하는 권력과 투쟁의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비판도 없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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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는 현실에 대해 무심(無心)하고 무상(無想)한 세계로 보이며 따라서 현실도피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꿈꾸는 몽환의 세계는 덧없는 일순간의 꿈과 같은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노스텔지어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몽환세계는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드러내면서 물욕과 속세에 대한 집착을 떠나 초연한 종교적 차원의 세계와 상통하고 있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허은영의 물고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도상적으로 새겨진 물고기를 통해 내밀한 자신의 정원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물고기 이미지는 선사 유적지 바위의 표면에 각인된 동물처럼 초월적 시간을 품고 있으며, 하늘과 바다의 공간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때로는 화사한 꽃잎에 둘러싸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낙엽과 더불어 놓여지는 작가의 물고기는 규범화된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우리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때 물고기는 작가 자신의 존재방식에 대한 사유의 가시적 표현영역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가능성을 보여준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결국 허은영의 물고기는 진행되는 삶의 과정에서 사라져 가는 존재의 내면에 자리잡은 생명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소멸되어가는 육신을 통해 꽃 피우고자 하는 영혼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판의 소멸과 이름 없는 미물들의 생성을 통해 가시화 되고, 그것이 작품으로 다루어지면서 미학적 대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필자의 과분한 의욕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마리의 물고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투자한 소멸판법의 과정들을 고려할 때 허은영의 물고기는 가시적 차원을 넘어선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꿈꾸는 정원의 물고기 - 허은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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