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돈화문로에 위치한 갤러리 일호에서는 2019. 6. 26() ~ 2019. 7. 9()까지 이희상 이 열릴 예정이다.

이희상 展

욕망이 차오르는 순간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년 전, 인류는 다른 유인원들로부터 새로운 종으로 분리되어 지금의 인류로 진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인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직립보행의 여러 종들이 동시에 유인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진화해 오다가 결국, 지금 우리의 조상이 된 단 하나의 종만이 진화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많은데 가장 유력한 것은 우리의 조상은 기후, 즉 끈임 없이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한 유일한 종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환경의 변화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인류가 유인원으로부터 분리되어 현, 인류의 조상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98만년 정도. 그 시간 동안 과연 무엇이 쌓여져 왔고,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가끔 내 속에 있을 그들의 메시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이희상 展

그 오랜 시간 동안, 끊임 없는 변화를 극복할 수 있었던 그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지금 우리에게 고스란히 그 힘이 전해져 왔겠지만, 여전히 지금도 다양한 변화를 겪고 또, 그것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전해져 온 그 힘들이 다시 이어지고 다음으로 전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고, 그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우리의 내면에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몸에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이희상 작가의 회화는, 이렇게 그들의 내면에 또는 몸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 사람을 그린다. 그들의 감정이 가장 폭발적일 때, 혹은 가장 절제되는 순간들을 작가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체 그린다. 결정적으로 그의 회화는 철저하게 붓의 흔적이 없다. 캔버스가 원래 처음부터 그 색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물론, 붓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에어브러쉬나 색면을 만들어 올리면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 때문에 그러한 기법을 썼다면, 이희상 작가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욕망들이 어떻게 절제되고 내면에 담겨 있을까에 대한 연구의 결과다. 붓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수 십 번의 붓질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그만의 기법이기도 하다.

이희상 展

인물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회화의 대상이었다. 권력자의 초상화부터 사랑하는 사람, 시대를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사람, 역사적 인물, 혹은 작가 자신 등 인물이 회화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 충분했다. 또한, 작가마다 그린 인물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대상이 인물이다라는 공통점 말고는 거의 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 여전히 인물이 회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이희상의 인물들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금방이라도 감정이 폭발할 듯 한 표정. 서로의 얼굴색이 다른 심지어 보색인 이들의 키스신. 초점 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사람들. 음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연주자들. 무언가 격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듯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배경은 단 한가지 색으로 정리된다. 어떻게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에 더 집중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작가가 선택한 그 단 한가지 배경색은 물론, 각 인물마다 배경색이 다 다르지만, 인물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 한가지 색으로 칠해진 단순한 배경이 오히려 인물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작가의 또 다른 연출력이다.

이희상 展

이희상 작가의 인물들에는 표정이 없다. 쉽게 말해, 감정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희로애락이 없다. 인물이 지닌 본연의 모습, 그 어떤 감정도 없이 드러나는 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인물들은 그 어떤 순간이든, 그 상황에 전혀 동요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 키스신 같이 격정적일 것 같은 순간의 인물들 역시,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그 순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의 감정이 오히려 더 거짓일 수 있음을 보여주듯이.

인간이 감정에 가장 솔직해 지는 것은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본능, 욕망에 충실했을 때가 아닐까. 이희상의 인물들에서 느껴지는 최초의 감상이다.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무표정한 인물들이 뿜어내는 본능적인 욕망들. 어쩌면 가장 욕망이 차오르는 순간에 우리는 더 우리 내면에 솔직해 지는 것은 아닐지. 해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감정과 욕망들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가장 자신의 내면을 닮은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을 찾고, 그들을 그린다. 그리는 동안 작가 역시 차오르는 욕망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렇게 작가의 붓은 캔버스 위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무수한 붓질을 하게 된다.

이희상 展

이희상의 인물들은, 감상하는 내내 충분히 자신들의 내면에서 차오르는 여러 감정들을 무표정하게 보여줬다. 표정이 없이 감정을 드러낸다. 상당히 아이러니 한 말이다. 그러나 늘 느끼는 거지만, 무표정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볼 때, 섬뜩할 정도로 그의 감정들이 전해진다. 방금 내가 한말이나 행동을 반성하거나, 측은하게 느껴지거나 때로 나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 한 감정들. 작가의 인물들 면면이 다 다른 감정들이겠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수 백 만년간 쌓아왔던 그 내밀하고, 은밀한 인간의 감정이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다 드러날 수 없다면, 가장 본연의 모습에서 그 내면을 보고자 하는 것. 그렇게 선택된 작가의 사람들이다.

앞으로 그려질 그의 작품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그 무엇들. 그것이 물체가 될지 아니면 초현실적인 매체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희상 작가의 회화는 여전히 욕망과 그것이 차오르는 순간처럼 은밀하고 치명적으로 우리를 자극하게 될 것 같다.

. 임대식(아터테인 대표)

이희상은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후 개인전 4,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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