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송미영 갤러리에서는 2019. 05. 07 ~ 2019. 05. 16까지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이 열리고 있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인물 옻칠화의 실험과 현대화
김미숙의 작품세계
오세권(미술평론가)

국내에서 현대 옻칠화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었다. 옻칠하면 자개장을 장식하는 정도로만 여겼고, 전통공예 분야에서 다루는 것으로 순수미술 표현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옻칠이 미술재료로 사용하기에는 고가이고, 독성 때문에 재료에 쉽게 접근할 수 도 없었으며, 회화 방법과는 다른 옻칠만의 특수한 표현방법이 있어 옻칠화를 익히기에 힘들었기 때문에 활성화되기가 힘들었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그러나 그동안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옻칠화의 현대화를 위하여 많은 연구가 있었고 옻칠화가 순수미술 장르 가운데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옻칠을 현대적으로 변용하거나 옻칠화를 연구하는데 앞장선 작가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옻칠화를 연구하는 작가들이 생겨났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국내에서 옻칠화를 연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중국에 유학하여 칠화를 전공하여 배워왔거나 한국에서 한국화나 서양화 분야에서 회화를 전공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옻칠화를 제작하는 작가들이다. 그러나 옻칠의 재료가 한국화나 서양화 재료와 같이 상품화되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재료의 구입과 표현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서 옻칠화의 작가를 확장시키는 것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옻칠과 수묵, 채색 등은 동양의 회화표현 재료이다. 한국화가 용매로 물을 사용하는 수성재료라면 옻칠은 용매를 기름을 사용하는 유성재료이다. 말하자면 옻칠은 동양의 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유화재료는 시중에 상품화되어 있어 쉽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인 반면에 옻칠은 유화 재료와 같이 쉽게 구입하고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서양 유화는 색채를 칠하고 마른 후 그 색상 위에 칠을 덮어서 전체 색채의 균형을 맞추어 간다면 옻칠은 바탕 효과를 예상하면서 옻칠을 하고 그 위에 또 칠을 반복하여 나중에 사포로 갈아내어 광택을 내면서 여러 가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점 등이 서양의 유화와는 다른 표현이다. 유화는 색칠하면 빠르게 그 효과를 바로 볼 수 있지만 옻칠은 마지막 부분에서 옻칠한 부분을 사포로 갈아내어 광택을 내어야만 비로소 그 효과를 알 수 있어 그 효과를 느리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옻칠화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바탕 판을 만들어야 하고, 칠하며, 갈아내고 하는 노동력이 많이 사용되는 것이 옻칠화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김미숙은 그동안 한국화로 여성의 얼굴을 중심으로 ()’ ‘마녀사냥연작을 제작하였다. 여기서 작품들은 비단 위에 채색화법으로 표현하였는데 특히 여성의 얼굴 부분을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마녀연작은 마녀라는 가상의 주체를 그린 것으로 한을 돌보는 작가의 내적인 제의를 나타내는데 주로 여성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근래 들어 김미숙은 옻칠화 작업으로 작품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화 작품에서 보여 왔던 인물화를 중심으로 옻칠화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함과 기법, 광택의 효과를 중심으로 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화에서 보여주던 것과는 달리 화면이 서양화 표현과 같이 두터운 한편 질감이 있고 무거우면서도 화려한 느낌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인물화의 피부나 머리카락을 나타내는 섬세한 표현은 옻칠화만의 새로운 느낌이 나는 작품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는 달리 알루미늄 가루를 화면에 뿌리고 그 위에 긁고, 옻칠을 도포하고, 갈아내는 과정에서 옻칠화 고유의 화면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국내 옻칠화 분야에서 인물화를 그려내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인물화는 정확한 데생과 섬세한 얼굴의 표정을 나타내어야 하고 동시에 옻칠화의 기법들이 더해져야 제대로 인물화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이나 몸의 피부, 세밀한 머리칼의 표현은 정성을 기우려야 하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김미숙의 인물 옻칠화는 국내에서 중요한 연구과정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인물 옻칠화의 기법이 소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물 옻칠화 표현은 김미숙의 개인적인 옻칠표현으로 끝나지 않고 국내에서 현대 옻칠화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근래 들어 옻칠화를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점차적으로 옻칠화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옻칠화의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데 김미숙의 인물 옻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작가노트 | 영국의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브랜들리(Andrew Cecil Bradley)는 아름다움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것은 숭고한(sublime), 웅장한(grand), 아름다운(beautiful), 아치있는(graceful), 예쁜(pretty)으로 인간이 느끼는 아름답다라는 쾌감의 강도나 깊이에 따라 다섯 가지 범주의 순위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순위이기도 하다. 칸트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스탕달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를 것이며, 플라톤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쇼펜하우어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가치 또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의 생각이나 가치관, 시대의 환경이나 진리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나의 작품은 그들의 가치나 생각이 어떠하든 각 낱말의 의미나 순위가 어떠하든 그것은 보는 이들의 생각에 맡겨둔 채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나의 의지를 담는다. 이 아름다움은 결코 우리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진 욕망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닿기도 어렵지만 결코 영원히 존속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더욱 욕망되어 진다. 우리는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도 욕망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살아서 반짝이며 빛나는, 누군가 에게는 이미 멀어져 버려 아득한, 누군가는 현실에서 누군가는 미래에서 맞이하게 될 아름다움을 여인과 꽃으로 형상화하고 어둠과 빛으로 빚어내었다. 잃어버린 자들에겐 그리움이며 현재 누리고 있는 자들에겐 찬란함이고 다가올 미래에 맞을 자들에겐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아름다움이고 싶었다.

‘빛의 초상, 옻칠화’ - 김미숙展

어둠에서 빛이 탄생하듯 그렇게 어느 시절 여인과 꽃은 짧은 순간 아름다움이었다가 기억이라는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산화한다. 어둠에서 빛이 탄생하였듯 그 빛은 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하나의 진리이며 내가 현재 화종으로 쓰고 있는 옻칠의 특성과도 닮았다. 달빛 한 점 들지 않는 칠()흑과 같은 옻칠캔버스는 어느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 그 자체이다. 빛을 비추어 어두움을 걷어내고 생명을 불어넣어 여인을 빚어내고 한 잎 두 잎 꽃잎을 달아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의 생명을 창조해 낸다. 작품 속 여인과 꽃은 그 아름다움의 절정일 때 작품이라는 명제를 달고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박재된 채 멈춰져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옻이라는 화종의 특성처럼 바람에 반응하고 빛에 반응하며, 또한, 따뜻함에 반응하고 차가움에 반응하며, 시시각각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것은 얼핏 채워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잃어가고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과 여인은 우리의 기억 안에 살아있는 대상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며 사후적으로 가장 빛났던 내 아름다움에 대한 카타르시스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