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42탄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42탄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 최윤영 기자
  • 승인 2019.04.07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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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 최윤영 기자]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에 위치한 아트코리아방송 미디어센터에서는 2019년 4월 6일 오후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42탄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에 대한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42탄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안정적인 작업 공간이 필요하나, 수입이 많지 않은 A가 감당하기에는 대부분의 작업실이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고 있으나, 향후 작업을 할 충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삼청동에 위치한 거트(Gert)는 A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입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작업 공간 속 예술가와 시민들의 소통이 일어나며,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경험 속 안정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결과물 뿐 아니라 과정과 생각도 경험할 수 있다면 거트는 '젊은 예술가가 자생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오프더메뉴(Off the menu)가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작곡가와 예술애호가 두 명의 친구가 만든 오프더메뉴는 올 초 준비기간을 거친 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거트를 운영 중이지요. 음악/미술/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무료로 작업실을 사용하며 입주자 서로를 통해서 영감을 얻고, 살롱나이트(Salon Night)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아티스트와 깊이 만날 기회를 제공합니다. "공간의 이름은 미국의 예술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예술가와 예술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살롱에서 편안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실제당시에는 그러한  풍경이 자주 펼쳐졌다 하고요.

평소 예술을 좋아하는 저희도 예술가와 시민들이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그 과정,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랬죠" 최근 취향 기반 커뮤니티 및 공간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오프더메뉴 멤버들은 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살롱도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삼청동에 위치한 공간에서, 그들의 꿈을 직접 실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도 처음 작곡을 하면서 수입이 충분치 않기에 와인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작곡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잃고 있는 것 같더군요.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예술가들간, 예술가와 시민 간 협력을 위하여 거트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는 크게
1)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무료 작업실 제공 : 충분한 수입이 없지만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 온 예술가들은 거트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로 다른 분야와의 작업에 열려 있는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며, 현재는 음악/그래픽/현대미술/비디오아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상주하고 있지요.  

2)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살롱나이트 : 올 6월부터 시작하여 총 8회가 진행된 살롱나이트에는, 모임마다 대략 15명이 참여했습니다. " 아직 오프더메뉴의 브랜딩이 잡혀있지 않기에, 현재는 저희가 섭외한 작가들과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주로 오세요. 다 같이 둘러앉아 더 깊게 자신의 경험과 문화예술 분야에 흐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죠. 그분들이 이런 공간이 꼭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을 때, 그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죠."

3) 자유롭게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 : 오픈스튜디오는 주말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트에 들어오길 바라며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 저희 공간 앞에 큰 유리창이 있어서 내부가 보이지만, 지나가시는 분들이 작업실이라고 생각은 하는 듯 하나 부담스러우셨는지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거트는 갤러리도 카페도 아닌 공간인데, 저희가 포지셔닝을 잘 해서 사람들에게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2018년 막 시작하며 생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들어선 오프더메뉴에게, 비영리스타트업과 함께한 지난 수개월은 그들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예술가 멤버십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거트를 운영한 오프더메뉴는, 연말이 다가오며 내년에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본격적으로 논의 중입니다. 시민 대상 멤버십도 검토하는 방향 중 하나이며, 어떻게 하면 지속성을 가지고 안정적인 작업환경을 갖출 수 있을지 계속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진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통해, 6개월의 기간 동안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가능할 것 같아요." 당장은 거트의 안정화가 필요하겠지만, 오프더메뉴는 장기적으로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교류하며 안정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대 졸업 후 막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A'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42탄

잊혀진 우리 토종쌀의 이야기 _ 토종쌀, 트럼프 대통령 만찬에 올라가다. 

세간에서는 독도새우의 의미가 주목받았지만, 숨겨진 주역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4종의 토종 쌀로 지은 송이밥입니다. 이 송이밥에는 북흑조, 흑갱, 자광도, 충북 흑미가 사용되었는데 어떤의미가 있었을까요? 북흑조와 흑갱은 북방지역, 자광도와 충북 흑미 남쪽지역에서 재배되는 토종쌀입니다. 이처럼 남북을 대표하는 쌀로 지은 밥은 남북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한다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심 속 자본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농부의 삶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법한 인생이다. 자신이 직접 고른 작물을 기르기 위해 밭부터 일구고 씨앗을 뿌린다. 하나의 농산물이 생산되기까지 전 과정을 손수 관리하며 느끼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 그 삶을 꿈꾸기만 하지 않고 힘껏 부딪히며 우리의 롤 모델이 되는 이가 있다. 바로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의 최초 설립자이자, 공동체 전통농사를 지향하는 이근이 우보농장장이다.

처음 다섯 평짜리 주말농장부터 시작한 그는 올해로 농부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우보농장을 운영한 지는 횟수로 7년째다. 농부가 되기 전에는 잡지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당시 계간지 편집장을 지낸 그는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지만 극심한 마감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냈다. 잡지사를 아예 인수하면서부터 광고 압박까지 받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침이 나오는 계절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여유 있는 삶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 일종의 도피처로서 그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다.

“도심 속 삶은 자본주의의 굴레에 있다 보니 늘 무엇인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내가 생산한 결과물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고요. 그저 하나의 완성물이 나오는 과정 일부분에만 참여할 뿐이에요. 평생 그러한 시스템에 묶여 사는 겁니다. 일에 대한 만족감이 높을 리도 만무하지요.” 그렇다면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생산한 것을 오로지 자신의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답은 역시 농사밖에 없더군요.”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작물이 잘 크도록 관리한 끝에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는 농산물…. 우리가 온전히 시작부터 끝까지 권한을 행사할 권리가 생긴 셈이다. 그 만족감은 일주일에 한 번씩도 맛볼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작물이 커가는 것을 볼 때는 마치 스스로가 하나의 생명을 다루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 같아 신비로울 따름이다.

“또 하나, 농장에서는 사회 직위 막론하고 누구나 농사 초보자, 평등한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위 관직자든, 청소부든, 다 똑같은 입장에서 땀 흘려 일하며 조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지요. 자연 속에서 삼림욕도 실컷 하고요.”

전통 공동체 농사

7년 전, 이 농장장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할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음이 잘 맞는 지인 세 명과 함께 운 좋게 무료로 빌린 땅 200평을 활용해 농사를 지은 게 시초였다. 다 함께 모여 땅을 일구고, 생산물은 똑같이 나누었다. 그야말로 공동체 농사였다.
“도시농업에서 공동체가 갖는 의미는 꽤 커요. 특히 저는 전통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요. 그때는 화학비료도 없을 때인데…. 더욱이 여러 사람이 모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 정보를 많이 공유할 수 있지요.”

사회 각계각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이면 전혀 다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손꼽힌다.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사장, 예술가, 작가 등 각자 사회생활을 하며 쌓은 노하우나 강점을 농사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모두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이 공동체가 도시농업에서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일지도 모른다.
“옛날 우리 조상들도 농사를 지을 때 다 함께 힘을 보탰어요. 모내기 하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도왔고, 또 두레, 품앗이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농사란 기본적으로 공동체인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초창기 200평이었던 땅을 차근차근 1만5000평까지 늘린 그는 농사 공동체를 지향하는 조직,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고양 곳곳에 있는 각 농장의 밭장들을 뽑아 주기적으로 밭장 회의도 하고, 풍악을 울리며 시농제 행사도 주관했다. 전통농사를 지으며 얻은 각 작물의 토종 씨앗을 나누는 일이 삶의 락(樂) 중의 하나였다. 가을에는 추수제, 일 년에 한번 도시농부의 날, 모내기, 벼 베기 행사도 연 그다. 지금은 전통농법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농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대표직을 내려놓고 필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통농법의 핵심은 자연의 순환이다

그가 말하는 전통농법이란 옛 선조들이 짓던 농사법을 일컫는다. 자연농법보다는 좀 더 상위 개념이다. 한반도에서 농사가 시작된 5,000년 이래 우리 조상들은 순환하는 농사를 지어 연명했다. 절대 자연을 고갈시키는 법이 없었다.
“순환이라는 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에요. 내 몸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모두 땅으로 돌려보내는 거지요. 인간의 부산물을 포함해 동물의 부산물 도두 흙으로 돌아가 그 흙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해주면 그만입니다. 옛날에는 인분을 모두 거름으로 썼잖아요. 저 역시 각 농장에 꼭 생태뒷관을 하나씩 조성해 실제 농사를 지을 때 인분을 퇴비로 쓰고 있답니다. 전통농법은 핵심은 자연의 순환이에요.”

우리나라가 콩의 원산지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밭에 꼭 콩을 심어 자연스럽게 퇴비 역할을 하도록 했다. 농사를 짓는 흙에는 질소와 인산, 칼륨이 꼭 필요하다. 특히 질소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 물질인데, 이 때 박테리아가 풍부한 콩이 뿌리를 통해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땅에 공급해주는 것이다. 콩만 심어도 땅이 비옥해지는 이유다. 이것 또한 자연 순환의 일환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강낭콩부터 메주콩, 서리태까지 이 콩들의 원산지가 모두 우리나라인 데는 그만큼 우리 조상들이 콩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흙을 만드는 데 콩은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전통농법의 기본 중의 기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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