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 김한정 기자
  • 승인 2019.02.01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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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우정국로에 위치한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는 2019. 2. 8(금) ~ 2019. 3. 3(일)까지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가 전시된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텅 빈 충만 - 유약한 식물들이 창출하는 생성의 여백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2008년은 김진관에게 있어 작업 세계의 변곡점이었다. 당시 일상 속 한 사건이 그로 하여금 “아내의 병간호와 더불어 자연의 작은 열매나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그 외형 이전에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다음처럼 기록한다:  “재작년 늦가을 서울 근교로 스케치를 다녀왔다. 오후 바짝 마른 잡풀들을 밟는 순간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들풀들의 씨앗들이 튀겨 나갔다. 자세히 보니 짙은 갈색과 붉고 다양한 씨들이 앞 다투어 터뜨려지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는 마치 동양화 화선지 위에 긴 호흡을 한 후 필연적인 점들을 찍는 것 같았다. 퍼져가는 공간의 선과 점이며 시점이었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이 사건은 작가 김진관에게, 이전에는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던 미물(微物)들로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새로운 화제(畵題)를 만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순간에 비로소, 소멸되어 가는 미미한 존재들로부터 생성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을 성찰하는 체험적인 계기를 맞이한다. 그 생명의 근원은 시간의 관점에서, 흙 속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고 스스로 썩어서 새로운 생명을 발아시키는 씨앗의 변화되는 삶으로부터 왔다. 그것은 또한 공간의 관점에서, 하나의 점으로부터 여러 점으로 산포(散布)되는 씨앗들의 편재되는 삶과 더불어 하나의 완만한 선으로부터 자신의 분신들을 복제해 나가는 풀잎들의 기억하는 삶이기도 했다.

그렇다. 근 10년 동안 작은 곤충의 크기를 거대하게 키우면서 생태에 대한 문제의식에 천착하던 작가가 2008년 전환의 변곡점에서 새롭게 모색하기 시작한 것들은, 깨, 콩, 팥과 같은 씨앗들이거나 마른 곡물의 이파리들, 낙엽, 억새 잎들과 잔뿌리가 붙어 있는 이름 없는 잡초들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가 생태라는 거시적 담론으로부터 자연이 남긴 부산물, 유약한 자연물이라는 미시적 담론으로 응축하고, 구체화된 것이다.

아울러 한국화의 채색 전통을 오늘에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의 작품 세계는, 세밀한 진채(眞彩)와 더불어 담채(淡彩)의 반복적 겹침으로 생성된 하찮은 미물들을 통해서, 이전의 안료와 종이에 대한 다양한 채법(彩法)과 질료의 실험으로부터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즉 생태라는 거대 담론으로부터 유약한 자연물이라는 미시 담론의 심층으로 한 걸음 더 진입하게 만든 것이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작은 씨앗들과 풀잎들이, 그것도 수분을 잃고 자신의 생기를 자연의 바람 속에 내어 준 채 말라비틀어진 자연의 미물들은 우리의 인생을 은유하는 주제로 깊이 작품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그의 작품은 보다 개념적인 회화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즉  ‘순환하는 자연’이란 개념과 연동되는 여백(餘白)의 공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회화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여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한한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 행하고 난 뒤 남겨진 공간이다. 그의 회화에는 ‘그려진 것’보다 더 커다란 ‘그려지지 않은 공간’, 즉 넓은 여백이 자리한다. 그 안에 작디작은 씨앗, 얇디얇은 풀잎과 같은 유약한 자연물이 하나둘 자리한다. 아니 자란다. 그것은 마치 점이나 선의 군집처럼 보이거나, 점과 선 사이를 오가는 확정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서체(書體)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략 201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씨앗과 같은 미시적인 ‘점’의 공간으로 응축하고 이후에는 풀잎과 같은 유려한 ‘선’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횡단이 자연스럽게 화폭 속에서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유념할 것이 있다. 그의 작품 안에는 소소하고 미미한 ‘자연물의 형상들’뿐 아니라 자연의 수다한 ‘촉각적 흔적들’이 한데 자리한다는 것이다. 실제의 황토를 엷게 풀어 침투시키는 한지의 표면은 빛이 바랜 듯한 효과를 드러내는데, 그것은 마치 한지 위에 그려 넣은 씨앗이나 마른 풀잎들을 ‘시간 속의 삶의 존재들’로 소환해 온 것처럼 만든다. 엷은 황톳물을 머금은 희미한 미색의 화폭 위 또는 한지 그 자체로 된 공기처럼 맑고 투명한 화면 위에는 풀잎을 거칠게 흔들었을 당시의 바람 소리나, 상냥하게 쓰다듬었을 공기의 일렁거림이 자국처럼 남아 있다. 때로는 씨앗을 싹틔우게 했던 따사로웠던 햇볕의 기운이나 풀잎을 바삭거리는 마른 상태로 박제화했던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표면 위에 흔적으로 남기고 있기도 하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빛이 바랜 듯한 화지(畵紙)의 표면 위에 남겨진 이러한 이미저리(imagery)의 흔적들은 작가의 마음속을 스치고 지났던 자연에 대한 기억이자 자연과의 대화와 같다. 설령 작가의 마음에 기억하는 흔적이나 한지의 표면 위에 남기는 흔적이 동일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지향하는 방향은 하나이다. 순환하는 자연의 근원적 성질인 ‘소멸로부터 생성을 지향’하는 방향성이 그것이다.

‘텅 빈 충만!’ 그것이 우리가 작가 김진관의 작품에서 읽어 내는 자연의 미학이다. 자신이 지녔던 수분을 공기 속에 거저 주고 자신은 말라비틀어져 생을 다한 유약하고 미미한 자연물을 보라! 그것들은 자연의 시간을 듬뿍 담은 빛바랜 빈 공간 속에서 아련하게 자리하면서, 부재와 무의 세계로부터 생성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노자(老子)의 철학에서 보듯이, 있음(有)은 없음(無)의 존재로 빛을 발하는 법이다. 더러는 빈 공간 속에 고독하게 자리하거나, 더러는 빈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산포되는 자연의 미물들(有)은 여백(無) 속에 거주하는 존재이지만, 거꾸로 말해 그 여백(無)은 자연의 미물들(有)이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가히 그의 작품을 ‘유약한 식물들이 만든 생성의 여백’이라 할 만하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텅 빈 충만!’ 씨앗과 마른 풀잎들이 화폭 위에 고독하게 자리하면서 여백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거나, 반대로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의 화폭 속에서 우리는 ‘비우기 위해 채우는(혹은 채우기 위해 비우는)’ 날숨과 들숨의 순환의 자연 원리를 배운다. 무한한 자연 속에서 보잘 것 없고 소소한 자연물은 어느덧 커다란 대자연과 우주를 자신의 몸 안에 품는다. 씨앗이나 풀잎처럼 소소한 것들인 소우주가 연동시키는 대우주를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손금과 경락(經絡)이 이미 대우주의 운행 원리와 연동되듯이, 혹은 ‘쌀 한 톨 속에 벼 전체의 이치가 있다’는 주자(朱子)의 비유처럼, “한겨울 모진 추위를 이겨낸 억새풀이나 만추의 씨앗”은 이미 대우주의 운행과 연동되는 생명의 ‘공생(共生)적 응집체’로 자리한다.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김진관 초대展 '봄이 오는 소리'

‘텅 빈 충만!’ 작가 김진관의 작품 세계에는 이처럼 비움 옆에 채움을, 소우주 옆에 대우주를 연결하면서, 타자와 연결하여 주체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피아(彼我)의 세계관으로 가득하다. ‘피아’란 사전적 의미로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내 손은 내 몸으로 연결되는 소우주이고, 내 몸은 대우주로 연장되는 소우주이다. 그렇듯이, 작가 김진관이 자신의 작품 속에 드러내는 피아의 세계관은 언제나 자연의 미물들이라는 소우주가 공기, 빛, 대자연이라는 타자의 세계와 교류하면서 ‘텅 빈 여백의 공간’ 속에 자연의 근원적 고향인 대우주를 넉넉히 품어낸다. 즉 유약한 자연의 미물들을 통해서 넓디넓은 ‘생성의 여백’을 만들고 그곳에 ‘텅 빈 충만’이라는 동양적인 우주관과 미학을 담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김진관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후, 개인전 20회, 단체전 | 300여회 출품했으며, 현재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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