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벗이여
  • 박동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1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벗이여

우리가 지금 건너는 강이 어떤 강인지 알고 있겠지강물이 자네 발목을 적시면 오히려 창공의 새소리를 맞이하겠지만 자네 배낭에 담겨진 걸쭉한 막걸리가 그립지그런 소탈한 시상(詩像)이 어떤가이 강을 건너면 오도송의 만남을 읊조릴 것인가피안차안의 둑을 넘는 화두 같은 것인가

아닐세자네의 발목은 차디찬 겨울이네계곡의 큰 뿔 사슴마저도 올빼미의 동공을 서글퍼할 만큼 세찬 바람결이 자네 겨드랑이를 팔 것이네왜 그런고 하면 우리는 이 길목의 차가움을 받아들이고서야 산골의 할매와 할배들이 처들던 굴뚝의 연기구름을 읽을 수 있거든가을 풍경빨간 고추잠자리와 고추된장 같은 풍경 말일세

간곡히 말하더군. 시인의 탈을 쓴 고백이라고나 할까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보다 어둡지 않음을 늘 말하려하지 않았는가불꽃처럼 산화한 글장이다운 매듭 같아서 강을 건너봄즉 함을 토로하네

늘 그러하듯이 징검다리와 여울목의 멋스러움은 지혜와 만나는 사람의 마음 결 같아서 정겹지하지만 요즘 볼 수가 없지 않은가우리가 하는 일이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으나 물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는 그 만큼 작아질 것이라는 결정론적 온정주의를 설파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직시도 어찌 보면 이 가엾은 징검다리와 여울목에 지나지 않을 걸세

그럼에도 벗이여이 망측한 논리의 모든 것은 결처럼 소소한 것이어서 살결처럼 물결처럼 마음결로 파고들다가 시인의 일성으로 마주하지. 바람에도 결이 있어서라는 화두를 접하는 것이지아마 우리 발목을 족히 적시고도 남을 물결은 차안의 관통 아니겠는가

늘 염두에 두고 있으나, 아는가. 산을 끼고 넘어야할 이 가난한 나라의 땅겨레의 숨결을 위하여 화두삼아 오르고 잦아들기로 하세시인이 천대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는 시성 타고르의 외침은 결코 잊지 않아야할 발목의 서성임 아닌가

 

문화를 잃은 가난함은
오히려 이 징검다리의 발목 차가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적네

벗이여,
오늘 동방의 등불한줌 새겨봄이 어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