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토포하우스에서는 2018년 9월 12일~9월 17일까지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가 전시되고 있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엘랑 비탈, 그 근원적 힘
고원재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철이 밥이다. 내 삶이 그렇다.
철로 울고 웃던 30년 삶 속에 녹록지 않았던 인생이 녹아있다. 큰돈도 벌어봤고 날개 없는 추락의 속도감도 느껴봤다. 한없이 흔들리던 부평초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막다른 모퉁이에서 나를 잡아준 것은 '가장(家長)'이란 단어였다. 모든 걸 비우고 발견한 또 다른 나. 내 앞에 철처럼 견고해진 고원재가 버티고 있었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맘껏 힘들어본 사람은 안다. 세상의 끝에서 건져 올린 인생의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평온한 오늘이 주는 소중함의 참 뜻을...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엘랑 비탈(élan vital)은 삶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 속에 건져낸 애증의 산물이다. 결코 편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고통 앞에 현실 도피를 도와준 조력자이자 공범자였다. 다면적인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철에게서 나왔다. 차가운 이성과 견고한 물성의 철에게 세상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배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가 되면 회사에 출근을 한다. 동트기 전부터 수많은 스크랩을 실어 나르는 대형트럭들이 분주히 몸무게를 재는 계근대 위로 넘나 든다. 하루를 정리하는 토요일 오후, 묵직한 무게를 감내해내던 계근대는 새로운 무대를 준비한다. 엉뚱한 화학자가 펼치는 철의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녹을 만드는 레시피(Recipe)를 꺼내 든다. 계근대는 실험대이자 인화지로 쓰임을 달리하고 나는 녹을 창조하는 행위예술가가 된다. 소금과 식초를 뿌리고 물과 식용유를 붓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몰입하던 유년의 놀이처럼 혼자만의 진지함으로 하루살이 녹을 그린다. 밤 새 피울 녹의 형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한 저녁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밤사이 백색 금속이 습기를 만나 녹을 만들어낸다. 암흑 속의 차가운 공기가 새벽으로 향하는 온기들과 회합을 갖고 날마다 새로운 신화를 피어내는 것이다. 여명이 걷히는 고요의 시간, 호두까기 인형처럼 간 밤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가득 채웠을 녹들의 현란한 신화를 채집하는 시간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유의미한 형상을 둘러싼 거대한 서사를 목격한다. 익을수록 안으로 향하는 미시적인 감성들이 균열과 얼룩이 주는 시선의 자극을 탐한다. 낯선 또는 굼뜨게 피어나는 기억의 흔적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녹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번 세대에 못다 한 이야기들은 다음 세대의 신화로 피어낼 것이기 때문에 행복을 이야기한다. 인생은 그렇다. 나는 오늘도 켜켜이 묵은 녹을 토해낸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유헌식(문예평론가, 단국대 철학과 교수)

“익히 알려진 것들은 익히 알려져 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아직 인식되지 않고 있다.(Das Bekannte überhaupt ist darum, weil es bekannt ist, nicht erkannt.)” 독일철학자 헤겔(G.W. Hegel)의 <정신현상학> 서설에 나오는 말이다. 나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치와 같다. 나에게 익숙한 것은 나와 늘 붙어 있어서 무의식중에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바로 그러한 사실 자체가 사태의 인식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나에게 가까이 있는 대상을 나에게서 떼어 놓고 의식하는 데에서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이 생겨난다. 사진작가 고원재는 자신의 작업 현장에서 이미 항상 동행하여 자신에게 충분히 익숙하고 당연한 ‘강철판’이라는 대상에 주변의 일상에서 찾은 조미재료를 뿌린 뒤 그 결과를 촬영하여 사진 이미지의 새로운 영역을 선보인다. 4 년여에 걸친 노고 끝에 빛나는 결정체들을 관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고원재 개인전 ‘엘랑 비탈(Élan Vital)’에 부쳐

고 작가는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렀으며 한국리얼다큐사진가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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