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문화 제1거리 선언

와룡동에서 필동에 이르는 길목은 서울의 숨통과도 같다.  온몸의 피돌기를 관장하고 영양소를 공급하는 터미널이요 마당이다. 우리의 시원 지를 찾아 여정을 만날 수 있는 원형질, 즉 수도서울의 태초를 읽게 된다. 퇴계로, 충무로, 을지로, 청계로, 종로, 율곡 로를 서로 이어주며 마주하게 할뿐더러 수도 서울의 주산 백악과 목멱을 잇는 중심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600 여 년 동안이 길목의 중대함을 찾지 못했다. 목멱산자락 필동 언저리에서 한옥마을이 차려진 지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왜색 풍에 정형을 상실한 비원의 이름으로 창덕궁이 불려진지도 얼마 전 일이다. 일제강점기시절 수도 서울을 난도질하듯 유린한 건물 군이 어디 여기뿐이었을 까만은 아득함을 딛고 비로소 우리 스스로가 이 길목의 원형질에 대해 질문과 대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세종로의 요란한 등장은 우리는 알고 있다. 청계로의 등장은 수도 서울의 성장굴기의 일대전환기로 읽는 입장이 팽배함에도 과연, 수도 서울의 중심 거리는 무엇이며 어디여야 하는가를 질문하거나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다만, 종로통, 명동거리 또는 테헤란로 등의 번화가를 떠올리며 시대의식의 역동성을 음미하는 입장에서 자리매김 된다. 과연 한 나라의 수도요, 수도 중심거리의 명제가 토대와 지층이 없는 논리가 전개될 수 있는가. 문화논리의 치열함에 국가운명이 좌우될 만큼 중대함이 담아있을 터.

필동은 아마도 조용하고 고즈넉한 선 비네들의 은둔처에 풍경이 남다른 아름다운 마을이었으리라. 선비 문방사보의 하나인 필동의 이름은 마을의 생명력을 생생히 보여준다. 필동의 역사는 대한민국 근, 현대 인쇄문화의 메카로서 운영되었고 인쇄마을로 자리매김 된다. 와룡동은 지명운세에 번뜩이는 기지가 꿈틀거린다. 용이 누워있는 곳이니 왕의 용재가 숨 쉬고 있을 터이다. 창덕궁, 창경궁, 종묘의 종지가 그러하고 유교국가 조선의 건각들이 등용을 거듭한 성균관의 터가 와룡동이다.  백악을 좌우로 두고 청룡의 맥을 품고 서울을 드리우고 있는 여의주일 것이다. 창덕궁의 정문과 필동의 한옥마을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길목이 수도 서울의 문화 제1거리의 명제로 올려놓아도 어색하지 않은 주제다.


우리는 근현대화의 길목에서, 세운상가 1km의 거대 건축 군을 보며 나름 번뜩이는 집성 군을 주목하게 된다. 인쇄, 철공소, 기계류, 건축 류 등의 전문거리상권의 운영이다. 다만 그곳에는 그곳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라는 관점에서 발전되어 왔을 터이다. 영화, 병원, 문화 역시 충무로, 을지로 존(ZONE)을 형성하며 근현대화의 뿌리가 되었음을 익히 살펴 볼 여력이 없었다. 21C, 새롭게 대두된 한류문화 씨앗에 대한 관점, 즉 문화로서의 도시 원형질에 대한 요구다.

필동에서 와룡동까지 도보로 왕복하면 50분 내외의 산책로가 된다. 종로에서 율곡로 까지의 가로수, 플라타너스 거리는 으뜸이다. 달력 화보에서나 마주칠 명품 가로수이지만 왠지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우리 국민은 사랑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모습 또한 마음을 열고 우리 민족과 함께 걸어온 가로수 모습에서 우리의 마음을 담는 여유가 요구됨을 밝힌다.

흥인지문에서 광화문사거리까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한번이라도 준다면 서울은 그만큼 따뜻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너무 바쁘게 걸었기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존재를 미처 발견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종로를 지나 청계로, 을지로, 충무로를 관통하는 거리는 이상하게도 이팝나무, 은행나무 가로수가 엉성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식상한 식재 맛이 감돈다. 수도 서울의 나이테에 어울리지 않는 식재의 내용이다.


이쯤 되면 가로수는 아람드리가 되어 길목의 품격과 생명력을 길목마다 뿌리고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세종로, 인사로, 대학로 그 거리마다 살펴보아야 할 가로수의 모습과 ‘문화정책’의 기준은 ‘가로수 정책’이다. 왜 그럴까. 식물과 인간, 도시와 자연은 궁극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존해내는 철학의 산물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로 즉 율곡 로에서 종로에 이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에 대한 애정은 당연해 보인다.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아트홀, 대한극장. 아직도 명맥을 이으며 한류문화 창달의 원류가 연결되는 이곳은 국악로 로서의 명맥을 담당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인쇄산업은 사양 산업이라 하지만 인류가 문자, 인쇄를 통하여 이룩한 오늘의 문명 속에 스민 인쇄DNA는 함부로 여길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방송시대에 인쇄문화나 영화진흥의 뿌리는 고유하고 무한하다.

우리는 대한민국 문화 제1거리 선언을 통하여 십이 년의 집중된 시간을 요구하게 되었다. 서울의 부름켜, 즉 서와 동으로 관통하며 서울의 문화 지층을 연구하고 설정된 개념들과 직면했다. 이 같은 개념들은 보다 넓고 깊은 담론을 담아낸 이야기를 엮어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서울을 지탱하고 있는 동서남북의 산과 강의 지류의 생명 성을 담아내지 않고서는 명료한 주제를 얻어낼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고려의 하늘, 조선의 아침, 용의 눈물, 봉황의 꿈, 은하수의 전설과 같은 개념으로 수도 서울을 읽어 내고 피상적이지 않은 오늘날까지의 문화거리 주제어를 담아 와룡동-필동 설정에 이르게 된다. 와룡동에서 필동에 이르는 길목은 서울의 숨통과도 같다는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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