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57, 닭도 있고 59, 돼지도 있는데 사람들은 유독 58, 개띠를 얘기했다. 1958년은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로 비로소 6·25 전 수준을 회복한 해다. 전쟁의 굶주림과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내일을 생각할 겨를을 맞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렇다 해도 숫자로 보면 59년생이 78만 8910명, 60년생이 80만 8684명으로 58년생 75만 910명보다 많다. 58년생이 입에 오르내린 건 그들이 베이비붐의 중앙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름의 어떤 시대적 역할을 수행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히 “개띠”였기 때문에 더했던 것 아닐까. 개는 만만하다. 개는 오욕과 비루함을 견디며 굴러온 한국 현대사와도 닮았다. “아비는 종이었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자화상) 그 1958년으로부터 60년, 다시 개의 해가 밝았다.

 

‘읍견군폐’(邑犬群吠)라고 했다. 동네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 댄다는 뜻이다. 소인배들이 떼 지어 누군가를 헐뜯는 세상이다. 술집 개가 사나우면 주막의 술이 시어진다.(구맹주산)는 말도 있다. 권력 주변에 사나운 개들이 많으면 현명한 이들이 모이지 않는 법이다.

 

속담과 격언에 나오는 개는 하나같이 흔하고, 친하고, 싸우는 모습이다. 인간은 몇 조각 먹이로 개를 길들여 놓고 개의 대가 없는 충성심을 비굴하다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다 흔하다고 해서 곧 하찮거나 만만하게 볼 수 있을까. 옛글 가운데 드물게 개를 대접한 문장이 있다.

 

“개와 말은 어렵고 귀신과 도깨비는 쉽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개나 말은 항상 보기 때문에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어렵다.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비평의 눈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면 귀신이나 도깨비는 아무도 본 일이 없어 어떻게 그리든 시비할 사람이 없다.

 

인생의 많은 중요한 일들은 견마처럼 평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제 행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하찮게 여기고 있지도 않은 귀신이나 도깨비를 쫒는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사람보다 튀는 기행 하는 사람을 높이 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사회는 상식과 기본을 잃어간다. 도처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정권교체 이후 처음 맞는 새해에 더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많은 것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와 삶, 두 개의 전선에서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우리 삶에도 평화가 없다. 새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도 없다.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한 김정은은 “미국에 실제적인 핵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가 되었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예방전쟁이라도 할 태세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5년째를 맞은 한반도의 새 아침 풍경이다. 전쟁 전야 같은 한반도 정세와 달리 우리 내부는 이미 전쟁 중이다. 낚시 가던 15명은 바다에서,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던 29명은 땅에서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을 당했다.

 

지난달 9일 인천에서 크레인이 무너졌다. 세 시간 지나 용인에서도, 9일 지나 평택에서도, 다시 20일 지나 서울에서도 무너졌고 사람이 죽어갔다. 우리는 이게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고교 실습생은 작업장에서 30대 일용직 노동자는 지하철 선로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국 사회는 무한 반복의 마법에 걸린 시시포스 같다. 슬프지만 하루하루가 전투인 이 땅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생존경쟁에 밀린 이들이 자신을 살해하는 사회다. 한국에서 자살은 손쉬운 문제 해결책이 된지 오래다. 오늘 하루 무사했다고 내일도 그러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새해는 국민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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