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역사문화마라톤 제4루트 봉황의 꿈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제 4 루트 봉황의 꿈

 

서장의 침묵이 너무도 길고 할미꽃의 모습처럼 빛나는 해답을 찾는 곳이, 이곳이구나, 촘촘히, 정성스럽게 그 흔적을 안고, 품고, 있는 것이, 너무도 고마운 마음을 서로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종종걸음으로 내딛을 수밖에 없는 주제가 성성히 살아 있는 이곳에서, 나는 일말의 자신감을 온유하게 된다.

나는 이곳을 ‘봉황의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1. 명치유신과 명동

‘명치유신’의 함의어가 ‘명동’이라는 뜻을 내재하고 있을 줄이야! 하고 깊은 성찰을 갖게 되었다. 도도하다 못해 명쾌하기까지 한 일본근대사의 금자탑을 우리는 살펴보게 되었다. 살펴보았을 정도인가, 스스로 참여하고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어디 그 뿐인가, 명동은 한류의 성지만큼이나 번화하게 동남아, 일본관광객의 필수명소가 된지 오래다. 우리의 맥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조선의 아침-사직단·사직공원, 고려의 하늘-삼청전 -삼청공원, 용의눈물-장충단·장충단공원, 그리고 명동과 한성공원의 TEXT에서 만감이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이 우리의 첨단 유행중심지이자 발원지이며 대한민국의 유행이 발현되는 명동이고 보면 더한층 촘촘한 문화 소쿠리 싸릿문을 꾸려야하지 않을까! 지하철역이 맞닿은 곳에서 주섬주섬 모여드는 아이들의 눈빛을 새롭게 살펴본다.

‘명동’은 ‘명치유신’의 약자이자 함축어이기도 하다. 독도문제, 위안부문제에 들끓는 민심만큼이나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외규장각 반환에 쏟는 우리의 열정 속에 좀 더 진지하게 고찰해볼 영역 아니겠는가? 일본 식민화전략의 중심 궤적인 명동신드롬 자체와 우리 민 화토마저 일제 식민지우매화 전략의 작품이었다는데 문제의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 문화정책의 비전과 설계에 있어 보다 높은 단계의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무미건조하게 방류될 수도 있겠으나 그 중심의 과제는 하나이다. 자각과 준비 아닐까!


문화가 미래다

 

2. SKY ROAD 남산테라스

명동역에서 SKY ROAD 까지는 가파른 골목길이 펼쳐진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남산의 예술대학 멋을 담고 있으나 오히려 우리는 고풍스러운 달동네의 남산 그루터기에 관심이 있다. 턱오름은 아니더라도 가파른 오르막을 내치다 보면 남산케이블카정류소가 보인다. 아주 오래전 남산과 서울관광의 대명사였던 남산케이블카의 초입은 왠지 초라하기 그지없고 볼품이 없다, 곧 새로운 모형으로 변천하니 이 곳 역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터이라 애착이 든다.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하지만 대부분 쉽게 승차를 할 수 있다 -SKY ROAD- 일뿐인가!

수도서울의 전경이 5分내외의 시간에 발밑에 그려지고 있다. 남산의 풍광 또한 발밑으로 스쳐지나가고 있다, 일순간 술렁이는 관찰하는 모습, ‘봉황의 꿈’루트 SKY ROAD는 번뜩이는 IDEA이었다. 남산루트의 진입과정은 제 1, 2, 3루트의 교육효과를 찾기에 어려웠다. 부제가 대부분 소멸되었을 뿐더러 지극히 일부가 산중턱에 일을 뿐이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성은 대부분 하산코스에서 관찰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SKY ROAD와 케이블카와 접목된 것은 사설신문기사에서였다. 케이블카의 개념을 SKY ROAD라는 범주로 이해되고 있기에 무릎을 치며 IDEA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케이블카 하차를 하며 맞이하는 목가적인 남산정경의 차림표 나무마루로 잘 정비된 등산로의 모습 정겹기조차 하다.

3. 봉수대

봉수대와 봉수대재현의 현장은 확연히 검증의 사전절차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너무도 미심쩍은 봉수대 복원모형 꺼림칙하지만 우리아이들에게 직설적인 화법으로는 안내하지 않기로 했다. 더욱 더 참담한 모습을 학습하기 위하여 유보한 TEXT가 있기에. 기념사진을 남기며 남산 팔각정에 오른다. 8각의 의미와 8각 정의 태제를 이해시킨다. 완전의 숫자이자 황제의 정형이며 하늘의 뜻을 암시하고 있다. 이곳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목면산 산신과 단군이야기를 나누며 일제강점기의 우리 모습을 상기한다. 이곳의 산신을 사직공원으로 옮기고 이들의 신적인 야마토신사를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그 흔적이 이곳의 계단이자 日本人들의 열정이 되겠다. 이 흔적인 日本神社의 높이와 넓이가 된다. 이 계단의 높이는 나지막하여 기모노차림으로 계단짝을 끌 수 있는 높이이다. 양쪽의 머리석 삼각오면체는 이들의 상징물이다.

이 디자인은 日本人들의 문장이자 목표가 되었다. N타워로 개칭하며 남산타워의 모습은 진지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가로축의 돌계단 남산팔각정 밑줄 친 숙제처럼 놓여있다. 남사타워의 꾸밈은 열쇠꾸러미와 테라스 맛을 풍기게 하는데 자유의지를 유도하고 있다. 해방감 같은 유쾌함을 유도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스럽게 이 맛을 만끽하며 남산타워의 정경을 흡입한다. 남산타워 옆구리에 성곽흔적을 살피며 흥인지문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서울성곽이 내음 새를 호흡한다. 공간언어의 기호를 연결한다. 우리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이해할까! 하지만 N타워옆구리 귀퉁이에 서울성곽 마침표가 존재한다는 정보는 잊지 않을 것이다.

4. 아산 정주영, 호암 이병철, 박정희 로드

SKY ROAD를 이용하여 남산봉우리에 오르고 하산 길에 접어들게 된다. 왼쪽에 조악하기 그지없는 모양으로 국적불명의 성곽이 복원되어 있다. 도대체 언제 이 성곽모형이 조성되었고 존재하였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달음질치듯 하산 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계단길이라 발목부상이 염려된다. 마음 졸이면서 조그마한 팔각 정자에 들러 간단히 휴식시간과 ‘참’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이곳을 아산 정주영 망루라고 이름 지었다. 장충단의 망루를 호암 이병철로 하였듯이, 대한민국 국민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건국번영에 으뜸인 사람 1,2위가 정주영, 이병철, 3위가 박정희 대통령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의 긍정에너지를 위하여 이름 짓게 되었다.

아산 정에서 달음질치듯 내려 가다보면 망루테라스가 나타난다. 의도적인 공간 확장 터가 된다. 인왕, 북악, 낙산, 삼각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올뿐더러 남산정상에서 가장 좋은 전망 터가 아닌가 싶다. 산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학습하며 기념사진을 남긴다. 하산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우리가 확인하여야 할 질문과 대답이 있는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5. 화강암, 성벽의 모습

나도 이곳을 확인하기까지 자신감이 없었다. 감히 ‘봉황의 꿈’이라는 주제의식을 내놓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산 마무리 정도에 갑자기 등사 로를 이탈하여 급경사지를 타고 왼쪽으로 향한다. 30여 미터 구렁텅이를 내려가다 산허리를 타고 오르면 왜 조바심을 내고 하산 길을 재촉하였는지 우리 아이들 모두 이해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서울성곽원형이 3백 미터 남아있다. 잘못 복원된 성곽 밑으로 원형의 모습이 방치되어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조상의 숨결, 손결, 마음결 정성의 에너지를 마주하게 된다. 급조, 왜곡된 국적불명의 성곽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이미지에 하나라도 찾아 마음에 담아 우리의 모습이 온전해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곳에서 ‘봉황의 꿈’을 차라리 움켜쥔다. 서글픈 진실의 무게를 안고 응비의 날개 짓, 품은 알들의 부활을 준비한다. 우리 아이들의 눈빛 너머에 가을 포도의 빛깔만큼이나 상큼한 눈망울, 눈물자욱같은 대화가 요구된다. 봉황의 꿈 문화소쿠리를 엮는다.

6. 남산 돌계단, 신사디자인

촌스럽기까지 한 남산 분수대전경, 어린이회관, 거창한 독립투사의 동상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우리의 답사가 명동에서 출발한 뜻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TV광고에서도 만나는 남산의 아이콘이 된 이 돌계단이 일본 신사루트의 유적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가? 그 자체의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가. 기념사진을 남기며 다시 한 번이 계단의 높이와 기모노 계단의 실용높이를 확인한다. 셋 방향으로 이 계단은 꾸며져 있으며 삼각 오각형 피라미드조각은 숭례문입구까지 이루어져 있다. 팔각정 망루까지 신사유적은 디자인되어 있다.

 

7. 한성공원, 사직공원, 삼청공원, 종묘공원, 장충단공원, 그리고 봉황의 꿈

‘봉황의 꿈’ 루트는 숭례문 하산루트, SKY ROAD루트, 남대문시장 루트로 이루어져있다. 한성공원의 푯말은 슬픔의 모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남산의 모든 이야기를 모아서 고종황제에게 ‘한양공원’이라는 푯말을 세우게 하였다. 신사아래 동산으로 고종황제의 영혼을 요구하였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삼청전을 삼청공원으로, 창경궁을 창경공원으로,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그리고 봉황이 사는, 목면 산신이 사는 이곳을 ‘한양공원’이라고 명명하게 하였다. 명동이 보이는 이 언덕바지에서 황제는 무엇을 살펴보았을까, 비석에는 6.25흔적이 엿보인다. 총탄자욱에 어그러진 모습과 비석 뒷편에 성난 국민이 정으로 쪼아낸 흔적이 보인다. 돌이킬 수는 없으나 유산으로 남기지 않겠다는 분노가 정으로 쪼아내 아픔을 감추고 있다. 좀 더 온전한 공유를 요구하지만 대답과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봉황의 꿈은 누구누구에게서 시작되고 있을까!

어느 날 눈송이가 날리고 바람이 불었다. 하산 길 몇 분도 안 되어 온천지가 하이얗게 눈발이 날리어진 적이 있다. 우리의 숨 가쁜 질문보다도 온천지의 하이얌에 우리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가득하게 되었다. 그럼 대자연의 이치가 이렇게 광활한 것인데 하물며 우리가 찾는 ‘봉황의 꿈’은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한 초롱 눈발의 모습처럼, 우리 아이들의 드러난 미소의 앞니를 살펴보며 한성공원의 처마 끝을 이해하고 있다.

‘봉황의 꿈’을 누가 먼저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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