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 상’이라는 게 있다.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글 솜씨를 발휘한 저자에게 주는 상이다.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했다. 역대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네 명이나 됐다.

 

아인슈타인도 글을 잘 썼다. 우연이 아니다. 생각을 체계적, 합리적,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은 무엇을 하든 필수다. 미국 의대 시험에서도 에세이를 중시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시대 부 서구 고등교육의 근간은 수사학이다.

 

글로든 말로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방송을 보면 길 가는 아무한테나 마이크를 들이대도 자기 생각을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그저 “너무 너무” ···같아요”만 연발한다. 앞뒤가 뒤죽박죽이면서 글로 옮겨 놓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도 없다. 때론 한국어를 배운지 3~4년 된 외국인이 우리보다 더 조리 있게 한국말을 하기 도 한다.

 

우리도 예부터 글을 잘 쓰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강조했다. 이런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 블만 중 상당 부분이 글쓰기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객관식 문제 한두 개 맞히는 데 목숨 거는 세상에선 글쓰기 교육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해진다.

 

올해 초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글쓰기 평가를 했더니 39%가 70점미만을 받았다. 주제를 벗어난 데다 비문에 맞춤법도 엉망이다. 채점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나 제대로 평가하면 점수는 훨씬 더 떨어질 것이다.

 

“거시기하다”는 등 비속어 인터넷 식 엉터리 문제가 과제물에 넘쳐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요즘 신인 사원은 영어보다 국어 실력이 문제”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 교수가 신문 인터뷰에서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신입생은 한 학기 적어도 세 편 에세이를 쓴다. 교수가 일일이 참석 지도한다. 사회에서 리더가 된 졸업생에게 ‘성공 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글쓰기’였다. ‘능력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도 단연 ‘글쓰기’였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통용된 관리등용의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신언서판’이다. 신(체모), 언(말씨), 서(글씨), 판(판단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을 뽑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서,판’이었고 서, 판 시험이 끝나야 비로소 선,언 전형으로 넘어갔다.

 

옛 사람들이 판(판단력)과 함께 서(글씨)를 그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예부터 글씨 쓰기와 같은 손동작이 눈에 보이는 뇌나 정신의 일부로 여겨졌기에 그런 대접을 받았다.

 

어른들이 젓가락 하나, 연필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야단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뇌의 두정엽에 있는 운동중추의 30%가 손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단적인 예로 젓가락을 사용하면 30여 개의 관절과 50여 개의 근육이 뇌신경을 자극해서 지능촉진에 도움을 준다는 논문도 있다.

 

연필 잡기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글씨 쓰기 자세가 건강을 해친다.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글씨를 쓰면 근시의 위험이 있으며 잘못된 자세가 유지되어 척주측면증과 어깨 통증을 앓게 된다.

 

글씨 쓰기를 기피하면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올 리도 없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자판에 의존하는 요즘에는 더욱 글씨 쓸 일이 적어졌다. 하지만 단문 아닌 장문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은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몸의 근육을 키우려면 글쓰기가 최고의 방법이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자전거의 두 바퀴오 같다.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회는 주관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냄비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2017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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