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서울= 아트코리아방송] = 조선시대 정인지는 세종의 명으로 편찬한 고려사의 서문에서 태조 왕건의 건국 광종의 과거제 도입 성종의 종묘사직 확립 문종 때의 태평성대 이후의 쇠락으로 간략히 고려사를 요약하고 있다. 과거제가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거는 중국에서 귀화한 자문관 쌍기의 건의로 도입돼 조선 말 고종이 폐지할 때까지 이어졌다.

 

시험으로 공무원을 충원하는 것은 유교 문화권의 오랜 전통이다. 그 현대판이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라고 할 수 있다. 고시 하면 가장 먼저 사법시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행정고시에합격하면 행정직 5급이 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면 외무직 5급이 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가 되면 3급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외무고시는 2013년 시험을 끝으로 사라졌다. 행정고시만 남았다고는 하지만 고시의 상징과도 같은 사법시험이 사라지는 것은 고려 광종 이래 1.000년 넘게 순전히 시험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던 전통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법시험 합격은 옛날로 치면 과거 급제와 같은 것으로 온 동네의 경사였다. 언론은 합격자 발표가 나면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인간 승리를 이룬 화제의 인물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스토리에서 희망을 읽었다. 서울대가 위치한 관악구 신림동에는 고시학원과 고시원이 밀집한 고시촌이 형성됐다. 떠들썩한 합격의 기쁨 뒤에 더 많은 불학격자의 절망과 고시 낭인의 우울도 있었다. 고시의 종말과 함께 고시촌은 활기를 잃고 인생역전의 꿈도 사라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기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1975년 사시 합격이 그랬다. 그 해 고시계 7월호에 합격기를 직접 썼다.

 

고교 졸업 후 마을 산기슭에 토암집 짓고 공부했다... 법률서적 살 돈이 없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다 이빨 3개가 부러졌다. 그랬으나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얼마나 기뻤을까. 부인 권양숙 여사는 남편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고 하다.

행정고시 폐지 양비론

둘이 연애 결혼해 막 2년이 지났을 때였다. 권 여사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생 바꿀 기회로 택한 것도 사시였다. 1978년 제대했지만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 됐던 전력 탓에 복학도 취직도 되지 않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어 사시 보기로 결심했다 고 한다. 전남 해남 대흥사로 들어갔다. 복학한 뒤 1980년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경찰서장은 면회 온 학생처장과 법대 동창회장을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 조촐한 소주 파티를 열게 해줬다. 그때 사시 합격자는 그런 대우를 받았다. 사시는 그야말로 왕이 되는 문(등용문) 같았다.

 

시골에서 사시 합격자가 나오면 돼지 잡아 잔치를 했고, 지역 기관장들은 부모에게 인사를 왔다. 사법연수원을 들어가면 마담 뚜 들의 타깃이 됐다. 집안이 가난한 이들이 특히 공략 대상이었다. 마담뚜들이 ‘개룡’(개천에서 난 용) 들에게 신부 지참금으로 빌딩 한 채 또는 현금 10억 원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돌 때도 있었다.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인기가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사시 합격의 무게는 여전하다. 여러 화제 인물도 낳았다. 1996년 막노동하며 서울대 인문계 수석으로 들어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을 펴 낸 장승수씨는 2003년 사시에 합격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마지막 ‘개룡’이라고 했다. 2008년엔 음성으로 변환환 법전으로 공부한 최영씨가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합격했다.

 

3년 전에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씨가 합격했다. 사시는 성공의 사다리 역할도 했지만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문제도 낳았다. 결국 2007년 로스쿨 도입이 결정돼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다.

 

2017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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