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코리아방송]= 삶의 터전에 대한 단상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SPACE-사람의 집 - 최해진展


최해진은 종이에 수묵과 채색을 섞어 자연과 집/건물을 함께 그려놓았다. 전체적으로 단색의 채색이 침잠하듯 스며든 화면에 부분적으로 색채가 악센트가 되어 반짝인다. 화면의 중앙에 섬처럼 떠 있는 영역은 연하고 희박한 흑백의 톤으로 거대한 도시의 건물 군을 집적시켜 보여준다. 단일한 빌딩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수한 건물들이 달라붙어 이룬 변종의 건축물처럼 다가온다. 다닥다닥 붙어 하나로 이루어진 기이한 도시의 건물이다. 흡사 픽셀이미지로 보이지만 일일이 손으로 그린 아날로그적인 회화이기도 하다. 한편 채색과 수묵을 교묘하게 섞어 쓴 그림이기도 하고 바탕 면을 마치 선염으로 연하게 물들이듯 칠해나갔고 다시 그 내부를 특정 공간으로 구획해나갔다.

그리고 그 안을 예민하고 가는 선조로 대상의 외관을 윤곽 짓는다. 먹의 미묘한 농담 변화가 다채로운 흑백 톤의 차이를 자아내고 그것이 은연중 형태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그림은 면으로 칠해진 부분(단색의 평면적인 부분)과 선으로 그어진 부분(드로잉적 요소)으로 나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모필의 구사에 관한 작가의 의식적인 활용으로 읽힌다. 선의 쓰임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그림은 여전히 모필의 활용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빚어진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동양화에서 모필의 선이 보이는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선은 무의미해졌다. 아니 선을 세울 수가 없어졌다고 말해야 한다. 동시대 젊은 작가들은 먹과 모필을 사용하되 이를 다분히 서양화 재료체험으로 해석하거나 활용하고 있다. 아니면 먹과 모필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최해진은 먹과 모필, 채색을 여전히 끌어안으면서 이를 동시에 한 화면 안에서 소화해내고자 한다.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통해 수묵화와 채색화를 병행하고 있다. 수묵과 채색이 함께 맞물리는 지점을 적극 공략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채색과 연하고 맑은 흑백의 먹색은 ‘낯선 조화’를 이루고 그것은 동시대 우리 삶의 부조화를 암시하는 장치일 수도 있고 또는 밀집된 도시공간의 폐쇄성과 상반되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은유하는 틈을 만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회화적이면서도 디자인적인 감각과 장식성이 결합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디지털적인 감각, 펙셀화된 화면 구성 역시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풍경으로 읽힌다.

자연 풍경과 도시 풍경을 결합시킨 그림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상반된 몇 가지 요소들이 절충되어 있거나 종합되어 있다. 작품의 주제 역시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파생된 문제의식을 길어 올리는 편인데 그것이 바로 도시 공간과 사람의 집이다. 자연과 집(가정) 역시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모색이고 이 둘 사이의 종합적인 조화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SPACE-사람의 집 - 최해진展

그림은 대체로 두 개의 화면으로 분할되어 설정되었다. 바탕 면과 다시 그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하나의 화면이 있다. 연한 담묵, 단색으로 스며든 바탕 면과 그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면안에는 도시 건물의 외형이 기하학적으로, 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선조로 그려진 건물, 집, 숲, 정원 등이 가득하다. 건물과 집들은 흔하게 접하는 도시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도시인의 거주공간인 그곳은 동시대 삶의 공간이자 도시인들의 생존 조건을 암시한다. 도시와 자연이 공생하면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장소는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욕망과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재편된다. 장소는 사람이 개입하고 삶을 부려놓고 삶의 필요성과 욕망에 의해 관리되고 구성되는 한편 그곳을 길들이는 여러 방식에 의해 비로소 장소가 된다. 그러니까 장소는 ‘정치적, 문화적’이다.

작가의 근작은 바로 인간의 집/공간을 다룬다. 집과 자연풍경은 멀리 원경에 위치해있다. 수많은 집들 사이에 나무와 풀이 있고 그 위로 태양과 떠 있기도 하고 더러 집은 열기구가 되어 ‘둥둥’ 부유하기도 한다.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풍경이고 상상적인 풍경이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가정, 집에 대한 염원을 그림으로 실현하고 싶은 것 같다. 작가에 의하면 빽빽이 밀집한 집들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삶의 터전을 이루는 것은 개개인들의 집단이 모여 보살핌과 양육을 위한 사람과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SPACE-사람의 집 - 최해진展

작가가 그린 풍경은 결국 개별적인 가정의 집합적인 장면이자 집/가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상적인 장면이고 생명의 근원이 발아되는 곳이자 사람과 사람들의 유기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암시하는 매개다. 그런가하면 열기구는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비근한 일상 속에서, 답답한 공간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동일한 장소에서 생을 소진하지만 늘상 그 안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공간, 낯선 곳으로의 여행 혹은 각자 꿈을 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SPACE-사람의 집 - 최해진展


작가는 한 인간이 지닌 지극히 소박한 꿈을 화면 가득 펼친다. 사람의 삶의 기반이 되는 가정, 그리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집, 그 집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 사회, 도시 공간과 그 공간을 보듬고 있는 자연으로 확장되는 장소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터전에 대한 단상이다. 작가의 근작이 그리고 있는 건물/집이 있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소망과 간절한 기원과 애틋한 염원을 품고 있는 거주 공간, 가정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SPACE-사람의 집 - 최해진展은 인사동 갤러리이즈에서 3월 22일~28일까지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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