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코리아방송]=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 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 129번지에 있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세계적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을 완성시킨 허준의 묘는 파주 하포리 산에 모셔져 있었다.

허준의 묘를 확인할 수 있는 모표(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주변에는 참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 있어 가을이 짙은 지금은 참나무 잎들이 떨어져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폭신폭신한 느낌이 들었다.

재실이 우측에 제일 먼저 나오고, 허준묘를 올라가는 입구에 얼굴을 돌려 우측을 보고 있는 거북머리가 있는 비석이 있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1991년 9월 30일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허준의 묘가 발견 되었다. 서지학자 이양재께서 긴 연구 끝에 발견한 것이라는데 그곳에는 이런 푯말이 서 있었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의성 허준의 묘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재미 고문서 연구가 이양재씨는 한 통의 간찰(편지)을 입수했다.

“7월 17일 허준 배. 비가 와서 길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허씨 대종회를 찾아가 종친회 족보를 뒤적여 준(浚)자를 썼던 사람을 찾던 중 한국전쟁 이후 실전된 허준의 묘가 ‘장단 하포 광암동 선좌 쌍분(雙墳)’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그는 허준 선생의 묘서를 찾기 위해 일제 강점기 토지대장을 확인하던 중, 하포리에서 허준으 ㅣ종손인 허형욱(1924~?)의 이름을 찾았고 군 부대의 협조를 얻어 허씨들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땅을 찾았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하지만 이미 무덤이란 무덤은 모두 도굴돼 있었는데 그중 한 무덤이 유독 눈길을 끌었고 무덤 주변을 파던 중 두 쪽으로 동강난 비석이 나왔다. 비석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고 내용은 ‘陽平 o o聖功臣 o浚’이었는데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다.

 

이렇게 허준묘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한 명문 6자는 허준이 후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허준선생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1537(중종32)~1615(광해군 7)까지 살았다.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무과출신으로 용천부사를 지낸 허론의 서자로 선생은 무과에 지원하지 않고 29세인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에 들어간 후 혜민서 봉사를 거쳐 전의로 발탁되어 왕실의 진료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허준은 선조의 피난지인 의주까지 호종(왕의 가마를 수행함)하여 왕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셔 호종공신이 되었으며, 그 뒤에도 어의로서 내의원에 계속 출사하여 의료의 모든 행정에 참여 하면서 왕의 건강을 돌보았다. 그러던 중 1596년 선조의 명을 받들어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였으나 어지러운 나라 사정 등으로 10여년 만인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였다.

 

허준은 의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당상의 부원군과 보국의 지위를 누렸다. 그의 저서로는 동의보감, 언해그급방, 언해두장집요 등이 전한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동의보감

 

1610년(광해군2) 허준이 지은 의서로 25권 25책으로 이루어졌다. 내용은 총 5개 강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경편 6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이다.

편집의 특징은 내경-회형-잡병-탕액-침구 등 5대 강편 아래에 질병에 따라 항-목을 정하고 각 항목 아래에는 그 항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약방들을 출전과 함께 자세히 열거하여 그 병증에 관한 고금의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데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각 병증의 항고 목이 주로 증상을 중심으로 열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뒤에 청나라와 일본에서 여러 번 번각되었으며, 최근까지도 민국상해석인본-대만영인본 등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이는 ‘동의보감이’란 책 제목처럼 동양의학의 보감이며 동양의학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찾은 허준의 묘, 파주탐방(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허준은 양천허시, 무관집 소실의 자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허륜이고 당시 ‘유의’였던 할아버지 허곤의 누이아들(5촌 당숙) 김안국, 동생 김정국 두 형제의 존재가 허준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있다. 당시 유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김안국은 간이벽온방, 창진방의 발행자이며, 김정국은 촌가구급방의 저자로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두 사람을 모셔 놓은 ‘임강서원’이 허준묘 근처에 있다. 그리고 김안국의 제자였던 당대 유학자이며 선조의 사부를 지낸 유희춘이 허준의 출사를 도운 사람이다.

 

허준은 서자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여 의술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어의로 활동하였던 의료인으로 우리는 그를 의성이라고 부른다.

 

(자료출처 : 페이지 세상만사)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