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코리아방송] = 철학적인 사유를 유도하는 추억의 편린들

★신항섭(미술평론가)
우리에게 추억이란 무엇일까. 추억은 기억의 창고에 존재하는 지나간 시간선상의 어떤 일들을 반추하는 일이다. 그 추억이란 반드시 아름답고 기쁜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힘든 추억은 때로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좋든 그렇지 않든 추억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운 감정을 가꾸는 기억의 장치임은 분명하다. 기억이 있음으로써 지나간 시간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 있기에 그렇다.

김단의 작업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연원한다. 그 추억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 자리하는,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싶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활동하는 이 순간에도 그는 추억의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가 형용하는 이미지는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적인 풍경과는 다른 곳에서 취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형상들이 낯설거나 생경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와 공유되지 않는 그 자신만의 체험적인 사실일 수 있기에 그런지 모른다. 현재로부터 수십 년을 소급하는 어린 시절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림 속의 형상 또는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가 형용하는 형상 또는 풍경은 현실적인 감각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지나간 시간 속의 정지된 화상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나더라도 눈앞에 보고 있는 사실처럼 명료하게 복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회화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추억의 순간들은 일상적인 편린의 조합이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가 연결고리에 이어지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 스토리는 모두 개인사적인 소소한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까마귀들이 등장하고 봉긋봉긋한 세 개의 둔덕 위에 소나무가 서 있고 넘어진 나무에 앉은 까마귀가 함께하는, 어스름 초저녁 달밤을 묘사한 대작은 일반적인 자연주의적인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에서 세 개의 봉긋한 봉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지로서의 어머니, 모태로서의 존재, 유교적인 관습에 억눌려온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의 작품 대다수는 바위 돌을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무겁고 견고한 바위 돌은 약한 자에게는 억압의 상징일 수 있다. 억압이라는 감정은 물리적인 무게가 아닌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의미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 또는 마음의 무게를 상징하는 바위 돌은 바람에도 움쩍하지 않는 강고함 또는 완고한 이미지를 은유한다. 그와 같은 이미지의 바위 돌 틈 사이에 태아가 존재하고 새, 고양이, 생쥐가 보인다. 그런가 하면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고, 돌 틈으로는 초승달이 얼굴을 비치기도 한다.

바위 돌과는 다른 소재, 즉 대나무 밭의 두 마리의 염소를 그린 작품도 있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든지 전체적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이는 소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지도 하고 무채색 중심의 색채이미지와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소재 및 색채이미지는 결코 밝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 연원하고 있기에 그렇다. 감수성이 풍부한 연약한 존재로서의 위치에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결과적으로 그 자신에게는 예술적인 행로를 유도하는 유산이 되었다.

시각적인 이미지 및 내용이 무겁다고 해서 회화적인 이미지로서의 가치가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좇는 화사한 유채색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그림이 때로는 정신적인 안식과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작품은 삶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뛰어 넘는 사유의 깊이를 통해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의 실마리를 던지고 있기에 그렇다.

그림은 어떤 경우에라도 미, 즉 아름다움이라는 본래적인 가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의 작품은 조형적인 점에서 크게 탓할 데 없이 안정적이다. 기법적인 세련미나 완성도는 작가적인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의 논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어둡고 무거운 정서가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미점으로 활용되는 밝은 유채색에서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비록 아주 적은 부분의 유채색은 구성적인 요소로서 보아 그 존재감이 미약하긴 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작은 빛이 발설하는 그 희망적인 메시지는 아주 강렬하다. 그의 작업에서 발견하는 작은 희망의 빛은 스스로에게 커다란 위안으로 작용하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빛과 같은 유채색의 미점은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바위 돌과 같은 감내하기 힘든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전시작가 ▶ 김단(Kim Dahn 金旦)
전시일정 ▶ 2016. 07. 06 ~ 2016. 07. 18
Able Fine Art NY Gallery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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