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걸작 27편 상영, 우아한 관능의 작가 ‘자크 베케르’ 집중 조명

[경남=아트코리아방송] = 봄의 시작과 함께 ‘월드시네마 13’이 오는 3월 18일부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개최된다. ‘월드시네마’는 필견의 교과서적인 걸작은 물론, 위대한 감독들의 대표작과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수작, 낯설지만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숨은 걸작 등 영화사의 풍성한 유산을 소개해온 시네마테크의 대표적 연례 프로그램이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시절부터 계속되어온 발견과 재발견의 영화사 순례는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월드시네마 13’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27편의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적으로 볼 때, 고전영화의 산실과도 같은 미국과 일본, 프랑스는 물론이고 러시아(<택시 블루스> <아시크 케립>), 이탈리아(<직업>), 중국(<황토지>), 대만(<공포분자>) 등에 걸쳐 있으며 시대적으로는 1920년(<동쪽 저 멀리>)에서부터 1990년(<택시블루스>)에까지 70년의 기간을 포괄하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걸작들을 주로 소개하던 예년과 달리 시네필들도 쉽게 보기 힘들었던 숨은 보석들을 대거 상영한다는 것이다. 먼저, 두 편의 무성영화들이 눈에 띌 것이다. <동쪽 저 멀리>(1920)는 단순히 미국식 영화문법의 창시자, 혹은 보수적 인종주의자로 알려진 D. W. 그리피스가 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화면과 유려한 리듬을 만들어낼 줄 알았던 위대한 감독임을 입증시켜줄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이다.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랭크 보제지의 <제7의 천국>(1927)은 미국 무성영화시대 말기의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그리피스의 사실주의와 독일의 표현주의가 가장 아름답게 만난 영화에 속한다.

소위 할리우드 고전기의 작품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영화들이 소개된다. 루벤 마물리언의 <도시의 거리>(1931)는 초기 갱스터 영화이지만 장르의 관습을 넘어서는 원초적 에너지로 가득한 탁월한 작품이다. 하워드 혹스의 <에어 포스>(1943)는 전형적인 애국적 전쟁영화의 틀 안에서도 감독 특유의 개성이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이다. 그 성취에 비해 과소평가되어온 프리츠 랑의 <창가의 여인>(1944), 킹 비더의 <백주의 결투>(1946)는 억눌린 정념과 광기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따를 영화가 많지 않은 걸작들이다. 고전기에 태어난 돌연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셉 로지의 <녹색 머리의 소년>(1948)은 기괴한 상상력을 우아한 서사에 녹여낸 괴작(怪作)이다.

미지의 유럽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에르마노 올미와 자크 로지에의 데뷔작도 빼놓을 수 없는 보석들이다. 올미의 <직업>(1961)은 극히 단순한 스타일과 작은 이야기로 심원한 통찰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눈부신 성취이며, 로지에의 <아듀 필리핀>(1962) 역시 한정된 카메라 움직임과 최소한의 대사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중핵에 접근하는 놀라운 출발의 영화이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나 이제는 거의 잊혀진 파벨 룽긴의 데뷔작 <택시 블루스>(1990)는 한 감독의 데뷔작이 그의 작품 세계 전체가 될 수 있음을 실감시키는 아름답고도 가슴 저린 작품이다. 러시아의 마지막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유작 <아시크 케립>(1988)은 타르코프스키적인 명상과 러시아의 민속 문화가 윤무를 하듯 우아하게 교류하는 수작이다.

아마도 관객들에게 가장 생소할 마키노 마사히로의 <쇼와잔협전 : 죽어 주셔야 되겠습니다>(1970)는 위대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입이 마르게 칭송하는 마키노 최고의 걸작으로, 정교한 촬영과 우아한 동선, 음악적 리듬이 빛나는 걸출한 협객영화이다.

너무도 유명한 네 편의 영화는 재발견의 기쁨을 위해 준비되었다. 찰리 채플린의 <라임라이트>(1952)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인의 마음 깊은 곳의 슬픔을,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1957)은 숲이 움직이는 한 장면이 영화 전체보다 더 위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첸 카이거의 <황토지>(1984)는 이후 중국 5세대가 이룬 미학적 성취가 실은 이 데뷔작 한 편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1986)는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도 시대의 공기를 담을 수 있는 영화의 위대한 능력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월드시네마’ 안에서 특별한 주제나 감독을 조명해온 포커스 프로그램은 올해 자크 베케르에게 헌정된다.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 출신인 베케르는 르누아르의 아류 정도로 알려졌으나 이번에 소개될 11편의 영화는 이런 속설이 완전히 근거 없음을 밝혀줄 것이다. 르누아르보다 조용하지만 민첩하며, 르누아르보다 차갑지만 지적이며, 무엇보다 르누아르만큼 관능적이고 우아한 그의 영화세계는 시네필들에게 큰 발견의 기쁨이 될 것이다.

풍성한 강연과 해설도 준비되어 있다. 자크 베케르에 관한 정성일 평론가의 특강 ‘자크 베케르, 그 우아한 관능성에 관하여’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가장 활발한 비평 및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이석 교수와 강소원 평론가의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강연도 총 10회 이루어질 예정이며, 영화의전당 고정 해설자인 박인호 평론가의 ‘시네도슨트’도 마련된다. 어느 해보다 알찬 강연과 해설은 세계영화사에 대한 깊고 넓은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연과 해설의 상세 일정은 전단 및 홈페이지에서 안내)

‘월드시네마 13’은 3월 18일(금)부터 4월 21일(목)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일반 6,000원, 유료회원과 청소년 및 경로는 4,000원(월요일은 상영 없음). 특히 올해에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학생(대학원생포함)도 할인요금 4,000원을 적용한다. 상영작 소개 및 각 행사의 상세 일정은 영화의전당 홈페이지(www.dureraum.org) 참조. (/영화문의/051-780-6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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