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코리아방송] 김한정 기자 = 작가노트

★윤정

prologue

2014년, 에티오피아와 네팔에 다녀왔다.
무작정 이끌렸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였다.
찬찬히 내 시간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떠나기 전, 그곳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상상이 안 되는 부분들은 그냥 비워뒀다. 비워둘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게 두렵기도 설레기도 했다.

처음.
새로운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작업이 들쭉날쭉 오갔고 낯선 땅은 그걸 묵묵히 받아줬다.

시간이 훌쩍 지나 지금 내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아득하지만 아직 그 곳이 먹먹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1. 선물

까르르 웃음소리
 수줍은 터치
 아쉬운 눈빛
 간절한 마음
 행복한 배웅

고마워.

#2. 설렘

동네도 사람들도 열려 있다.
덩달아 마음이 들썩 거린다.

#3. 허상

어른들의 얼굴은 거기도 무거워보였다.
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가기 전 상상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궁핍, 그것이 주는 무게가 아니었다.
현실, 삶이 주는 무게였다. 거기라서 ‘특별히’가 아니라 거기도, 여기도, 어디든 비슷한 것 같았다. ‘아프리카’란 곳에 내 스스로 덮어씌워둔 허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내 일’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직장생활 10년 만에 글과 사진, 인터뷰, 미술 이란 ‘평생 즐기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직장을 그만뒀다. 출근 시간에 쫒기지 않고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으며 작업하는 여유로운 일상의 그림을 머릿속에 수백 번도 더 그렸다.
부딪히기 전 상상했던 달콤한 프리랜서 삶의 허상도 아프리카의 것과 비슷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프리카란 전혀 새로운 곳에서 뭔가 ‘특별하고 커다란 감흥’을 얻어가겠다는 게 욕심은 아니었을지. 그 허상이 떠오르자 갑자기 그걸 맞닥뜨리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냈다.

#4. 색이 피다

색으로 일렁이는 에티오피아.
색 속에 묻힌 사람들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색이 즐겁다.
사람이 즐겁다.
내가 웃고 있다.

#5. 예가체프

예가체프는 커피가 아니라 흙이었다.
붉은 황토 길을 걸었다.

삶이 무거울 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야 살아지니까.

걷다보면 내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길이 나를 데려간다.

그 길에서 만난 예가체프는 평온했다.
초록 커피나무들이 붉은 흙과 사람들 속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예가체프 붉은 황토 길에 그렇게 나를 맡겼다.

#6. 다른 박자

어릴 땐 스스로 쉬어갈 줄을 몰랐다.
스스로 걸을 줄도 몰랐다.
누가 뛰면 덩달아 같이 뛰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제 스스로 걸을 줄도, 쉬어 갈 줄도 알게 됐다.
달려가는 사람에게 어느새 진심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7. 여운

“에티오피아 어땠어요?”
사람들이 많이 묻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것, 또렷해지는 것. 그런게 있었다.

#8. 길을 달린다.

6시간을 달렸다.

뜨겁게 내리쬐는 볕,
얼굴을 세게 비비는 바람,
지나치는 풍경,
시간의 흐름,
온전히 내 것 같다.

곱씹던 생각들이 하나 둘, 길에 떨어진다.

#9. 떠나는 길

아름다운 ‘떠남’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떠나는 길이 아름다우려면 얼마나 더 애썼어야 했을까.

#10. 낯섦

얇은 한 줄기, 차가운 물로 겨우 샤워를 한다.
추워서 머리는 안감기로 한다.
어두침침한 숙소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뭐가 뭔지도 모른 체 그냥 집히는 걸로 입었다.
트렁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어제까지 그나마 약하게 들어오던 전기마저 오늘밤엔 안 들어올 모양이다.
캄캄한 방에서 용케 칫솔도 찾고 물도 틀어 씻는다.

아프리카다.

#11. 위로

때로는 위로가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에게서 온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것도 궁금해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손만 잡아주는 것,

그게 가만히 고맙다.

#12. 괜찮아

괜찮아.
충분해.

토닥거린다.

#13. 사진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이 낯선 이의 카메라가 들어오는 순간
 잠시 새 옷을 입는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우리도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루함과 낯설음이 만나는 아주 짧은 순간, 그도 나도 설렌다.
그것을 담는다.

#14. 더디게

네팔에 더 머물렀다.
더딘 시간 속에서 채우려고만 했던 마음이 비워졌다.

#15. 조금씩

조금씩 커다란 눈동자를 굴린다.
조금씩 몸을 내민다.
조금씩 표정을 짓는다.

희죽 웃는다.

풀렸다.

그렇게 경계가 허물어졌다.

#16. 처음

처음이 주는 ‘설렘’이 있다. 그 두근거림은 꽃처럼 화사하다.

처음 만났던 그 느낌 그대로
 화사한 마음을 잡아둔다


전시작가 ▶ 윤정(April Jo)
전시일정 ▶ 2015. 10. 27 ~ 2015. 11. 23
관람시간 ▶ Open 00:00 ~ Close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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