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을 딛고 있는 뮤턴트MUTANT에서 무중력을 가르는 오리진ORIGIN으로의 변신


이번 지용호 개인전은 2010년 뮤턴트 시리즈 신작을 중심으로 한 개인전 이후 4년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지용호(b. 1978)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타이어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형태에 대한 실험의 결과물을 본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그가 선택한 작품의 기본재료는 전복껍질로, 이전 작업의 재료인 타이어와는 반대의 성질을 갖는다.

타이어가 인공의 산물로 땅을 딛고 있는 재료인 반면, 전복껍질은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바다 속에 존재한다. 또한 타이어는 휘어지는 성질을 갖지만 작품을 통해서는 단단한 힘을 보여준다면, 전복껍질은 유연한 성질은 없는 대신 작품 속에서 스스로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뮤턴트 시리즈에서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가 아닌 타이어를 선택했다면, 이번 오리진 시리즈에서는 전통공예의 재료인 전복껍질을 선택한 점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품의 형태적인 면에서도 대치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뮤턴트 시리즈를 통해 동물에서 인간까지 구체적 형태를 재현하는 가운데 새로운 종을 만듦으로써 자신만의 종의 계보를 체계화했다면, 오리진 시리즈는 외계생명체와 같은 느낌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추상의 형태를 지향한다.

- 조각의 본질을 향하여 작품 안의 생명력을 끄집어 내는 여정 위의 작가. 지용호


예술 비평가 허버트 리드가 조각을 "촉각적인 예술"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처럼, 조각은 시각과 촉각이 공감각적으로 반응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예술 장르이다. 조각가는 여러 신체 기관 중에서 특히 손의 노동을 통해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에, 손에 닿는 다양한 물질을 작업의 재료로 삼고자 하는 태도는 자연스러우며, 현대조각에서 전통적인 조각 재료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용호 역시 경계 너머의 새로운 재료에 도전하고 있는 작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예술의 정신을 물체로 형상화'하는 조각의 본질에 대해서는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뮤턴트 시리즈와 오리진 시리즈를 관통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예술의 정신이란 물질이 내재하고 있는 일종의 생명력을 끄집어 내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다만 두 시리즈의 차이점은 뮤턴트 시리즈에서는 야생이라 부르는 초자연적인 에너지에 대해 주목하여 속력과 에너지의 발산을 통한 긴장감을 극대화하려 했다면, 오리진 시리즈에서는 에너지가 내재화되는 동시에 작품을 둘러싼 공간 속으로 조용히 느릿하게 확산되어 간다는 점이다.

작가노트 2012


나의 기존 작업은 라는 주제로 사회, 과학, 윤리, 철학적 내용을 토대로 실제 형태를 왜곡, 강조하여 동물이나 사람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재현에서 벗어나 조각의 본질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 보다 근본적인 미적 가치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번 작업의 주제인 ‘origin’은 근원 또는 기원의 의미로, 재현된 것이 아닌 ‘그것 자체’라는 의미이다. 즉, 나만의 창작물인 순수 형상을 통해서 기존의 형태와는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이 작업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조각을 해 보고 싶었다. 물론,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존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이에 도전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뒤샹의 변기 이후로 재료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것이 미술의 재료가 되었고, 다양한 재료에 관한 나의 관심은 재료들을 다루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시리즈에서는 주로 강한 생명체 표현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인공물인 폐타이어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 재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는 타이어를 통한 보다 다양한 표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시리즈인 은 개념만큼이나 재료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Origin’을 통해 재현된 형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디자인을 시도하자 재밌게도 공상 과학 영화의 인공물과 같은 이미지가 자주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역으로 자연물에서 재료를 찾게 되었고, 땅을 느낄 수 있는 재료인 폐타이어와 달리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조개류를 선택하게 되었다. 두 재료 모두 ‘껍질’이라는 느낌은 같지만, 구부림이 자유로운 타이어와 달리 조개 껍데기는 상당히 딱딱하고 견고하다. 붙이는 방식에 있어서도 타이어는 주로 텍스처가 있는 거친 바깥 부분을 이용한 반면, 조개류는 매끈한 안쪽 부분을 이용하여 인공적인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제작 방식은 단순한 원형이나 타원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디자인하고 여기에 생명감, 통일성, 일관성, 충실감 등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내가 원하는 형태의 디자인을 도면화시킨다. 이러한 도면을 입체로 옮기면서 형태나 크기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완벽한 대칭의 형태를 원할 때는 기계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주로 수작업을 통해 세부 묘사를 해나간다. 이렇게 완성된 형태를 캐스팅하고 거푸집을 만든다. 이 거푸집 안에 여러 가지 형태로 불규칙하게 쪼개진 조개 껍데기들을 붙이고 그 위에 다시 레진을 부어 고정시킨 후 거푸집을 떼어내면 비로소 시리즈가 완성된다. 이는 기존의 작업 방식과 같은 전통 방식을 따라 가면서 나만의 양식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기존의 작업을 토대로 다음 작업을 구상,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재현과 오리지널 사이의 고민은 지속될 것이다. 나는 아직 ‘진정한 창조’란 재현된 것인지 재현되지 않은 어떤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영원한 신의 영역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술의 고유한 가치(진,선,미)는 불변한다는 것이며, 작가로서 나의 의무는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미적 질서를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작가약력

지용호 (b. 1978)

학력
2008 뉴욕대학교 대학원 미술과 석사, 뉴욕
2005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서울

주요 개인전
2014가나아트센터, 서울
2013아부다비 F1 경기장,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
2011 Mutation, 캔버스 인터내셔널 갤러리, 암스테르담
2010 나는 곧 나의 세계다?두 세계의 만남: 김남표, 지용호 2인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In Between Imagination and Reality: 지용호, 이환권 2인전, 타임즈 스퀘어, 홍콩
2009 Mutant Color, 소카아트센터, 타이페이
2008 Mutant Mythos, 가나아트뉴욕, 뉴욕
2007 Mutant, 인사아트센터, 서울
주요 단체전
2012Keeping It Real! Korean Artists in the Age of Multi-Media Representation,
콜로라도대학교 미술관, 불더, 콜로라도, 미국
2011 Power of Making,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런던
Beyond Limits Sculpture Exhibition in the Garden, 채스워스, 더비셔, 영국
Barye to Bugatti, Beelden aan Zee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
2010 Fantastic Ordinary, 사치갤러리, 런던
녹색 한국으로부터의 반향, 토탈미술관, 서울
2009 Double Fantasy, 마루가메 겐니치로 미술관, 마루가메, 일본
괴물시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Works of Wonder, 크라슬아트센터, 세인트 조세프, 미시건
The Garden at 4 AM, 가나아트뉴욕, 뉴욕
초콜릿 박스, 장흥아트파크, 양주
2008 가나아트 개관 25주년 기념전: The Bridge, 가나아트센터, 서울
고독한 명상, 두산갤러리, 서울
세비야 비엔날레, 세비야, 스페인
2007I Love New York, 33본드갤러리, 뉴욕
개관기념전, 다니얄 마흐무드 갤러리, 뉴욕
2006 카오스,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5 치환(置換), 샘표스페이스, 이천
유페스타 2005,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Between (Lange Nacht Der Museen),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미술관, 슈투트가르트, 독일

가나아트센터 3전시장
2014. 1. 23. 목 ? 2. 16. 일 (총 25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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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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