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9번지에 위치한 장은선 갤러리에서는 2021. 5. 12 (수) ~ 5. 29 (토)까지 임만혁 초대 展 '단란한 가족이야기'가 전시된다.

새와 가족19-5  133x176 한지에목탄채색 2019년

계절의 여왕인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단란한 가족이야기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임만혁 작가는 한지, 동양화 채색염료와 목탄 드로잉이라는 서양화 기법을 결합하여 단란한 가족풍경을 그린다. 여러명의 사람들, 가족의 모습으로 확장된 인물화 위주의 그의 그림은 ‘가족’과 ‘바다’가 주된 테마를 이루고 있다. 이 두 개의 테마는 각각 독립되어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섞여서 표현되기도 한다. 작가는 새로이 바다를 발견한 뒤 갈색톤으로 표현되는 그만의 바다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임만혁 작가는 전통 장지 기법의 투명하고 담백한 느낌을 살리면서, 인물화를 통해 현대적 느낌과 사유를 담아냈다. 목탄의 날카로운 느낌을 살려 현대인들의 감수성과 가족 구성원의 성격, 작가의 개성을 표현한다. 붓 대신 사용하는 목탄. 현대적 채색방법을 통해 동서양화를 아우르고 작가 개인적 삶에 연유한 그림으로 보는 이들과의 따듯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작가는 원주에서 직접 한지를 구입해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하는 그의 작품은 ‘서양화 같은 한국화’, ‘한국화 같은 서양화’의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은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주눅들지 않은 자유로운 사유로 인해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한다.

소와 가족18-2  133x176 한지에목탄채색 2018년

화목한 가정의 달 5월에 단란한 가족의 풍경을 그리는 임만혁 작가의 작품 25점을 장은선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대학원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기법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임만혁 작가는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박준용 청년예술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장은선갤러리, 강릉시립미술관, 청화랑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진행했다. 작품은 미술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강릉시청, 성곡미술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젊은 예술가들의 등대, 화가 임만혁
이홍섭 (시인)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모사해보면서 화가에의 꿈을 키우고 훗날 거기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기법을 찾아낸 화가가 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관령 산신제에 갔을 때 처음 만난 민화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은 터였다. 
 훗날 그의 작품들이 미국의 시카고 아트 페어(2002)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한국에서 온 이 생소한 작가의 작품들은 순식간에 솔드 아웃 (전작 매진)되었다. 서양화와 한국화를 동시에 공부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절치부심한 한 젊은 화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강릉이야기16-1  133x177한지에목탄 2016년

 이 젊은 화가가 이제는 어느덧 국내 화단의 중견이 된 강릉 출신의 화가 임만혁 (47)이다. 시카고 아트 페어에 출품할 당시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개인전을 열어 본적이 없었던 그는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을 통해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여 왔다.
 2000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동아미술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들어선 그는, 2002년 젊은 작가들이 선망하는 성곡미술관 주최 ‘내일의 작가’ 공모에 선정되어 이듬해 ‘현대인의 초상’이란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국내의 대표 화가들을 후원해온 박여숙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어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에는 박여숙 화랑의 주관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전속작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는 독립작가이자,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고향 강릉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고향에서의 활발한 창작활동은 지난 2011년 강릉문화예술진흥재단이 제정한 ‘박준용 청년예술문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 상은 강릉의 문화예술 발전을 책임질 유망문화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의 설립기반을 제공한 재일동포 故 박준용 선생의 이름을 따 제정한 상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임만혁은 강릉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중앙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한 독특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전공에 대한 구획이 확실한 국내 예술계의 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대학에서 강의하기가 어렵다며 교수님들이 말리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본능대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본능’이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학벌과 자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본능대로 살기란 지난한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대학 때부터 평생 작품에만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을 팔아서 독립생활이 가능한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다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학부 시절, 그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몽땅 쏟아 부어 극사실화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한국화를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에는 신사임당이 초충도를 그릴 때 사용한 기법을 체득하기 위해 두세 달의 정성을 쏟아 그림 한 점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다른 화가들이 백 대접 정도의 물을 사용할 때 그는 신사임당의 기법을 따라 이백 대접 이상의 물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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