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칠용 기자] 현생인류를 정의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슬기로운 인간)라는 용어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조각가 노창환

20만여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돌을 쪼개거나 깨뜨려 무언가를 만들어 왔던 인류는 DNA속에 도구 제작과 도구를 이용한 놀이 유전자를 자연스레 축적해왔다. 그 결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유'무형의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놀이의 성격을 갖는 문화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구 만드는 일과 놀이가 합해져 '예술'로 승화 됐을 때, 우리는 이를 '조각'이라는 장르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북 경산시 자인면 계정길 계정숲 인근에 자리한 3층짜리 건물 '계정숲 예술촌'은 조각가 노창환(52)이 공예가와 다른 조각가 1명과 함께 셋이서 2018년 봄부터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작업공간이다.

노창환은 영남대학교 미술대학(87학번)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5년 대구청년작가상 수상을 기념해 이듬해에 '흔적'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30년(대학시절 포함) 가까이 조각가로서 살고 있다. 고향이 경남 합천인 작가는 첫 개인전부터 우리 문화가 지닌 평범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귀면와, 전통문양, 농기구 등 한국성 짙은 소재로 실험적 작업을 했었다. 조각의 질료 또한 나무, 철, 돌 등을 주로 이용했다.

"대학시절 미식축구를 좋아했고 서클 활동도 했습니다. 현재도 사회운동으로 계속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에 대한 열정이 제 작품 활동의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적 질료를 이용한 조각에 몰두하는 작가는 작품 속에 사회적 성향이 짙게 드러나는 게 특징이다. 첫 개인전 작품 '흔적'도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를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노창환 작 '뱀의 유혹'

이렇듯 노창환은 언제나 작품 속에 사회성'시사성을 연관시켜 작품을 제작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조각이란 장르를 통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예술적 초월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시쳇말로 조각가로서 생활이 힘들어도 이를 극복하려는 원동력을 작품을 통한 모순극복과 운동으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통해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그가 2001년 대구문화예술회관서 연 '민들레의 추억'전의 주된 모티브였던 '구름'의 형상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당시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했지만 제가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어 생활형편이 퍽 힘든 상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가장으로서 돈도 벌어야 하는 지경에서 조각가로서의 삶 사이에 갈등이 많던 중 우연히 하늘을 보게 됐죠. 그때 자유롭게 창공을 떠다니는 구름이 그렇게 자유롭게 보일 수가 없었죠."

옳거니! 저 자유로운 구름을 조형언어로 표현해 보자고 마음먹은 작가는 합성수지, 철, 돌, 청동 등을 이용해 구름과 민들레 잎사귀를 형상화해 '구름의 자유로움'과 밟혀도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는 서민의 삶을 닮은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해 낸다. 이후 구름과 민들레는 약 10년간 노창환 작품세계의 주된 소재가 됐다.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 제게 힘을 준 사람이 아내였습니다. 그게 늘 고맙죠."

작가에게서 구름과 민들레는 2003년쯤이 접어들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크기도 소품 위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특히 2006년 대구조각가협회의 제3회 젊은 조각가상을 받으면서 노창환은 '삶의 무게를 구름의 무게로 덜어내기'를 통해 조형적 변주를 가져오고, 구름의 형상 그 자체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형상에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제 그가 원한다면 구름은 여러 형상들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는 작가적 염원을 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 '구름 기둥'은 현재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방 유쉘 아파트 앞 조형물로 볼 수 있다.

2014년 봄 대한민국을 진동시킨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작가의 사회적 참여의식이 도드라진 노창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각 작업에 잇단 변화를 가져왔다. 자기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랑의 결핍에서 시작된 사회적 외면을 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이에 그는 웅변이라도 하듯 하트 모양의 조형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질료는 나무, 대리석, 철 등이었다.

"한때 조각의 길을 때려치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죠. 전업 작가로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워왔던 지난 일들이 결국 힘들었지만 내가 잘 나서라기보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오늘까지 온 것 같습니다."

조각을 천직으로 여긴 그도 2014년 이후 약 5년 동안 개인사정으로 인해 개인전을 갖지 못했다. 그가 다시 기지개를 편 것은 2019년부터이다.

이 시기부터 노창환 조각 작업에서 대전환이 생겨난다. 이른바 '유혹 시리즈'의 출발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합리성대로 살아갈 뿐, 공동의 선을 위한 합리성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의 욕망구조나 문화적 변화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욕망대로 사는 사회에 대한 반성을 위한 그 첫 단추가 '사과의 유혹'이다. 조각 질료도 소나무나 미송 같은 나무 질료에만 천착하게 된다.

'사과의 유혹'은 에덴동산에서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하는 뱀을 상징한다. 작가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과 유혹의 본성은 다름 아닌 뱀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노창환은 2019년 한해에 두 번의 개인전을 가질 만큼 '유혹시리즈'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뱀과 함께 등장하는 작품 '메두사'는 뱀머리 하나하나가 개인이 지닌 끊임없는 욕망을 조형언어로 드러낸 것이다.

"이제부터 작가로서 보다 진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고교시절 로댕 책을 보고 회화보다 강렬한 느낌에 매료돼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된 작가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세상을 향해 약속의 손가락을 내밀었다. 올 가을 준비 중인 작가의 개인전이 궁금하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