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오픈하여 6월 30일까지 전시되는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은 한나라 시대에 만든 도용부터 수대의 단아함이 깃든 조각상, 당나라 시기의 이국적인 삼채기, 명대의 정교한 관음보살상, 청나라의 호화로운 공예품을 선보인다. 1층 전시실은 황제의 정원, 지하 전시실은 수집실의 컨셉으로 구성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3월까지는 1층 전시실만 한정적으로 오픈하고 전화로 사전예약한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

소규모이지만 국내의 사설 갤러리에서 중국의 고미술 조형물을 보게 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2016년 파에즈 바라캇이라는 컬렉터가 소격동에 오픈한 이곳은 고미술 고대의 유물을 전문으로 해 왔다.


1층 ‘황제의 정원’으로 들어서면 양쪽에 두 명의 시녀 석상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안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서 있다.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

중국 청나라 때 제작된 한 쌍의 여성 석상으로 ‘여성 수행원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정교하게 차이나칼라의 단추 같은 의복의 디테일과 장신구를 재현하여 청대의 화려한 복식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첩군(주름치마)의 착용 및 뾰족한 전족용 궁혜宮鞋가 묘사된 것으로 두 여성은 한족의 풍습을 따르고 있음 또한 보여준다. 한 명은 나이 든 유모처럼 보이고 한 명은 젊은 시녀처럼 보인다. 각 조각상의 손에 들린 기물은 예복용 목걸이인 조주朝珠와 화려하게 장식된 관모冠帽로, 살짝 허리를 굽힌 자세의 두 여성이 고위층의 치장을 돕기 위해 서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대 상류층의 무덤을 장식하고 신분 높은 망자의 사후의 생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으로 추정된다.


1층 전시실의 중심이 되는 조각상은 높이 230cm에 이르는 명대의 관음보살상이다. 얼핏 보기에 회갈색의 얼룩덜룩한 표면과 신체의 두터운 양감, 섬세한 조각면으로 인해 금속제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표면이 채색되어 있던 목조 보살상으로, 수월관음보살 좌상에 해당한다.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크기이지만 세월 때문에 은은하게 바랜 채색과 자비로운 관음보살의 표정 덕분에 감상자를 편안하게 이끈다. 관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현세 구복적인 보살로 화엄경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빛과 향기를 내는 꽃이 자라고 물이 흐르는 보타락산Potalaka에 머문다. 관음보살의 도상 중 수월관음은 보타락산의 기암괴석에 앉아 발아래에 물, 그에 비친 달그림자,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배례하는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수월관음의 도상은 중국,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공유하고 있다.


한 다리는 편안히 아래로 내려 연꽃 위에 올리고 한쪽 다리는 올려 걸터앉은 유희좌遊戱坐는 수월관음의 특징적인 자세 중 하나이다. 왼손은 대좌를 딛고 오른팔은 굽혀진 오른쪽 무릎 위에 얹었다. 발 아래 연꽃은 암석 대좌 아래로 물이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측은 머리에 화불化佛(아미타불)이 장식된 보관을 써서 이것이 관음보살임을 보다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높은 관 장식과 상투,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 타래 등은 명대의 관음보살에서 잘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목조 수월관음보살 좌상 아래 좌우에는 송나라 때의 석수石獸 한 쌍이 지키고 있는 것처럼 배치되었다.


아래층 보물창고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마지막 부조 작품이 걸려 있다.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

명나라 시대의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던 이 부조 장식품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생생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어떤 통속적인 소설 중 한 장면인 것처럼 남성과 여성이 실랑이/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대에 다양한 계층이 문화를 향유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문학과 세속적 즐거움의 향유가 시각예술 장르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부채를 든 남성 인물과 가볍게 숄처럼 걸치는 피백披帛을 두른 여성 인물은 관능적인 동세와 향락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부조 상단에 묘사된 건축물의 지붕과 기둥, 중앙의 가구 및 각종 집기 등으로 실내 공간임을 알 수 있는데 구름과 나비, 식물 등 자연물과 난간 등으로 개방된 테라스나 복도 같은 곳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동방견문록 - 바라캇 갤러리 중국 유물전

명과 청나라에 모셔졌던 조각상을 주문하고 제작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하여 5대째 고미술을 수집하는 컬렉터에게 수집되어 한국의 궁궐 옆 한 갤러리에 전시될 것이라고(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그나마도 제대로 보여지지 못하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시명을 빌려 온 <동방견문록>은 마침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코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쓴 것이다. 4월중 오픈되는 지하층, 다보각경을 재현했다고 하는 황제의 보물창고에 모셔질 유물들이 팬더믹을 뚫고 잘 도착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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