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평창36길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에서는 2020. 2. 25(화) ~ 2020. 3. 7(토)까지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이 전시될 예정이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물신의 거울, 스마트폰과 쇼윈도

작업에 요구되는 조건이 여럿 있지만 그 중 핵심적인 것으로 치자면 동시대성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동시대의 지배적인 지식체계며 인식체계를 비롯한 인문학적 배경과 문화현상으로부터 취해진 전형 곧 시대적 아이콘을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최혜란은 시대적 아이콘으로서 스마트폰을 주제며 소재로 취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경우로 보인다. 세속적인 표현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치고 늦은 시작은 없다는 말이지만, 시의 적절한 주제로 시작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에 견줄 만큼 결정적이다. 시대를 읽는 감각 레이더가 곧추 서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흔히 스마트폰은 소통환경의 혁명에 비유된다. 저마다의 취향에 맞춰 내려 받은 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손안에 구축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구축된 수중의 세계는 진정 세계가 축약된 것이며, 덩달아 사용자 또한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인가. 겉보기에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가장자리 쳐진 체계 내에서의 일이며, 그 마저도 세계의 구축에 동참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한갓 정보 소비자의 행태에 가깝다. 장 보들리야르는 우리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하고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했다. 혹자는 주체적인 소비자며 경우에 따라선 시대를 견인하기조차 하는 능동적인 소비자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역시 좀 더 큰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틀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동하는 물신이다. 소비자는 결코 물신이 그어놓은 금을 넘어설 수가 없다. 여기서 다시 주체는 상품 속으로, 기호 속으로, 이미지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 보들리야르의 말을 되새길 일이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어느 날 최혜란은 내려 받은 앱들이 아이콘으로 떠 있는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에 비친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불현듯 자신이 구축한 세계 속에 정작 자신이 들어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비치는 것은 거울의 속성이다. 핍진성 곧 영락없는 닮은꼴이 주체를 반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착각이며 허구를, 욕망이며 함정을 되돌려줄 뿐이다. 그렇게 작가는 스마트폰에서 구축되는 주체가 아닌 소비되는 주체를 본다. 그리고 관심의 축이 스마트폰에서 거울로 옮아가고 확장되고 심화된다. 액정화면에 비친 자신과의 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체가 없으면 상도 없지만, 여하한 경우에도 거울에 비친 상은 상일 뿐이며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작가는 밑도 끝도 없이 반영하고 반영되는 반영놀이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다. 이를테면 쇼윈도 안에 진열된 마네킹과 쇼윈도 바깥에 기대선 바이크 그리고 쇼윈도의 표면에 비친 고개 숙인 남자나 선남선녀들은 실체인가 아니면 이미지인가. 마네킹도 바이크도 고개 숙인 남자도 모두 그 자체로는 실체들이지만, 쇼윈도가 매개가 될 때 이 실체들은 이미지로 화한다. 쇼윈도는 물신의 거울이고 욕망의 거울이다. 그 거울은 실체(혹은 주체)를 산산조각 내 흩어지게 하는 대신 핍진성 속에 가둠으로써 사라지게 한다. 욕망을 눈앞에 보는 것 같고 붙잡은 것 같지만, 정작 그렇게 붙잡힌 것은 욕망이 아닌 욕망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상을 어떻게 실체로서 거머쥘 수가 있을 것인가. 상은 상일 뿐.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이렇게 작가는 스마트폰의 액정화면 속에, 그리고 쇼윈도의 표면에 미끄러지는 반영상들 속에 오버랩 된 물신을 예시해준다.

고 충 환
(Kho, Chung-Hwan 미술비평)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쇼윈도는 극단의 자본주의 눈이고, 쇼윈도의 유리벽은 상이 맺히는 망막이다. 보는 주체는 인간만의 것은 아니며 전달 매체 쇼윈도 또한 우리를 본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자본주의 눈이 우리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것 또한 관찰당한다.

우리는 늘 쇼윈도의 유리벽을 바라보면 소비의 욕망을 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인상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망막(쇼윈도)에 비친 그림 속 대상은 망막을 뚫지 못한 체 부유한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과 쇼윈도, 대상의 삼각관계는 만화경처럼 확장된 공간을 만든다. 욕망의 거울에 비친 허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 공간(쇼윈도)은 끊임없이 확장되지만 닫힌 공간이다. 망막의 유리벽을 표현함에 있어서 차갑고 단단함의 극사실 기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촉각적으로 차가운 화면의 질감이 소비와 욕망으로 인해 소외당한 우리를 형상과 구성, 촉감으로 적절하게 표현해준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마네킹과 인물의 중첩되는 구성은 관람자들에게 누가 마네킹이고 사람인지, 누가 쇼윈도 안 혹은 밖에 위치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처럼 현시대에 우리(관람자)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어떤 것이 마네킹이고 어떤 것이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시선 또한 구분되지 않는다. 마네킹과 인물의 시선은 마치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산되어 관람자를 향하기도 한다. 마네킹의 시선은 인물의 시선과 중첩되고 교차하며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보는 관람자의 시선을 모호하게 한다. 동시에, 작품 안의 마네킹과 인물을 마주하는 관람자는 쫓기는 시선과 함께 그들의 관계를 자신의 표상처럼 느끼게 된다. 어느 시선 하나 분명하진 않지만, ‘마네킹-인물-관람자’ 이 세 개의 시선은 동일하고, 그들의 표상 또한 같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세 시선(마네킹-인물-관람자)은 작품의 표면을 구분하는 유리벽으로 인해 나눠지고 다시 합쳐진다. 관람자는 작품에 자기 자신의 모습이 살짝 얼비춰 보이기도 하고 마네킹과 인물의 모습과 함께 섞이기도 한다. 소비사회에 살고 있는 무비판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작품의 쇼윈도는 현대사회의 모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을 말한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작품의 반짝거리고 매끄러운 표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위태로운 시뮬라크르와 같다. 이러한 반들거리고 붓 자국 하나 없는 매끄러운 표면의 모습은 현대 소비사회와 회화의 역설적인 관계를 보인다. 안팎이 구분되지 않은 사물, 마네킹, 인물의 위치와 중첩되는 시선과 같은 모호한 모습은 현대사회와 하이퍼 리얼리즘의 모순적인 관계와 같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여러 레이어가 중첩되는 평면 작업 <relocation> 시리즈에서 확장되어, <The Virtual Window> 시리즈 또한 입체적으로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확장된 시각과 시야를 말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의 눈을 통해서 보는 안경, 베냐민의 사진술, 포토샵, 영상, VR 등은 단순히 보고자 하는 욕구를 위한 매개체일 뿐 이다. 나의 주체는 화가이고, 이러한 매개체는 인간의 시각과 시야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써만 사용될 뿐이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현대사회는 수많은 매체의 발전으로 확장된 공간과 시각이 해체되고 다시 뭉쳐져 새로운 시각이 탄생했는데, 이것을 평면 혹은 설치를 통해 관객에게 좀 더 쉽게 말하고자 한다. 궁극적인 것은, 어떤 매체를 사용하던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확장된 시각과 시야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최혜란 展 '다시 마주하는 시선'

최 혜 란은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수료 후 다수의 개인전과 수백회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제16회 나혜석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원시미술전시관 | 2012 제13회 신사임당미술대전 특선, 강릉문화예술관 | 2012 제14회 단원미술제 특선, 단원미술관 | 2012 제46회 국제문화미술대전 동상수상, 서울메트로미술관 | 2011 제15회 나혜석미술대전 특선, 수원시미술전시관 | 2010 제14회 나혜석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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