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도스에서는 2020. 1. 29 (수) ~ 2020. 2. 4 (화)까지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이 열릴 예정이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감각의 대화
 
인간의 대화는 말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말, 즉 언어를 통한 대화로 상호작용을 하며 이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사회 관습적 체계 속에서 행해진다. 예술 또한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고 교류하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하지만 예술은 일반적 대화방식과 달리 어떠한 규칙이나 약속에 얽매어있지 않다. 작품을 통해 직관적인 느낌으로 전달되는 감각적 언어의 예술은 그 내용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사뭇 다른 부류의 소통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성과 객관성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은 주관적 표현의 결과물인 예술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감각이 우선으로 살아있는 예술을 보며 관람객들은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갤러리 도스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조금 더 본능적으로 느끼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줄 것이며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감각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할 것이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완벽한 구조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설혜린이 보여주는 물의 이미지는 솟아오르는 인공의 분수나 거대하고 장엄한 폭포의 요동이 아니다. 변기에 고여 있다 사람이 거쳐 갈 때 마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며 소모되는 물이다. 변기에 고여 있는 물은 사람이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배설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계층과 지위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이다. 하지만 변기와 연관된 행위와 이야기는 더럽고 남에게 보여선 안 되는 감추어야 하는 것이며 치부이자 약점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세태는 비단 화장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조명 받지 못한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현대 국가가 다듬고 정리한 복지라는 시스템과 교육에서 이야기하는 공정하고 편협하지 않는 시각에 대한 지향은 하얗고 매끄러운 변기처럼 견고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 수준에 비해 소규모 구성원들이 따라가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애인에 대한 신파극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정의 시선 혹은 편견이 담긴 따가운 시선은 고요한 물의 표면에 거칠게 뿌려지는 물방울이나 오물과도 같다. 결국 다시 평온한 표면으로 회복되지만 작은 물 한 방울만으로도 표면 전체에 동심원이 발생하고 거품이 일어나는 변기에 고인 맑은 물에는 앞서 이야기한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가족구성원이 겪어야 하는 크고 작은 위축과 좌절이 담겨있다. 작가는 변기에 고인 물의 표면에 물이 뿌려짐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본 화면처럼 자세하고 차분히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가 반드시 지니고 있지만 양지에서의 언급이 암묵적으로 터부시되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물을 뿌리고 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행위에 대한 집착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위의 주체가 되는 대상의 상태에 대해 가십거리 정도의 관심을 표하며 정작 당사자와 주변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설혜린은 행위자의 눈을 빌려 물을 바라본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토록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자 이해이다. 대상을 이해하고 시야를 받아들이는 순간 작가가 발견한 모습은 단순히 물을 흩뿌리고 흘러내리게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쾌감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함의 물에 격동의 물이 충돌하면서 이루어내는 순식간의 형상이며, 매 순간 동일하지 않은 완벽한 구조이다. 화면에 그려진 물의 맥동은 마치 유리구슬이 가득한 만화경속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분열하는 세포처럼 활기차게 다가오기도 한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외부의 자극하나로도 표면과 입자가 요동치고 변화하는 물은 사실 그 어느 순간에도 연약한 적이 없다. 충격으로 인해 잠시 형태가 변화하는 모습은 구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흡수하고 융합하여 다시 고요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설혜린의 내려가는 물을 통해 피상적인 형태에 대한 가벼운 체험을 넘어 타인의 시야를 빌려 바라보게 된 이미지를 이해하고 연결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한 개인들의 의도치 않은 충돌이 모여 매 순간마다 규정할 수 없는 물방울을 형성하고 결국 다시 결합되어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작가노트
 
흔히 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회의 시선 아래 묻혀 있다. 사회는 ‘보통’ 사람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과 가까이할 일이 없다. 장애인이 밖을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선을 그들 주위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려보자. 장애인이 존재하듯이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도 존재한다. 장애인의 가족의 삶이란 어떤가? 그들도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작가가 살아가는 개인적인 삶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전시 제목인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작가의 동생이 하는 이상행동인 변기물을 내리며 내려가는 물을 쳐다보는 행동을 사람들이 보통 변기물을 내릴 때 물이 내려가는 것을 쳐다보지 않는 것에 빗대어 사람들이 장애인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는 동생과 “눈, 코, 입, 귀” 등의 단어를 말하며 서로 얼굴을 가리킨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 언어를 넘어 감각으로, 손끝으로 그들은 소통한다.

설혜린 ‘우리는 물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展

설혜린은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 했으며,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파르나스 서울,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AHAF)와 홍콩 콘래드호텔,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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