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 남산예술센터는 오는 3월부터 9월까지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 5편을 공개했다. 지난해 극장의 존속 여부를 두고 연극계와 함께 극장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해 온 남산예술센터는 극장의 미래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남산예술센터 2020 시즌 프로그램 발표

올해의 프로그램은 5월의 광주를 기억하는 작품부터 그동안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무대에 처음 서는 젊은 창작자들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작품까지 총 5개로 구성됐다. 주요 작품은 ▲지난해 시즌 프로그램이자 2019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 3’(한국연극평론가협회 주관)에 선정된 <휴먼 푸가>(공연창작집단 뛰다) ▲한강의 소설「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럽에서 최초로 무대화한 <더 보이 이즈 커밍(The boy is coming)>(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진실을 묻는 <왕서개 이야기>(극단 배다) ▲광장을 통해 개인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동시대가 공유하는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이언시 스튜디오) ▲기독교 예배의 연극성을 부활시켜 극장으로 가져온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쿵짝 프로젝트)가 있다. 지난해 작품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던 대규모 사회적 참사에 주목해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짚었다면, 이번 올해 프로그램은 가해와 피해의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을 고찰하며, 시대가 그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야할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공유할지를 고민한 것이 특징이다.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의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져왔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 기억해야 하는 것,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5월, 광주를 기억하는 한국&폴란드 두 개의 시선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두 개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다. 우선, 지난해 시즌 프로그램이었던 <휴먼 푸가>(원작 한강/연출 배요섭)를 5월 13~24일에, <더 보이 이즈 커밍(The boy is coming)>(원작 한강/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을 5월 29~31일에 무대에 올린다. 두 작품은 모두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토대로 제작됐다. 역사적 사건 때문에 상처받았는데 아직까지 온전히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동시에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작품들이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였던 <휴먼푸가>는 파격적인 무대연출과 공연전개로 평론가와 연극계의 화제를 몰고 왔으며, 연말에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주관한 ‘2019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된 바 있다.

<더 보이 이즈 커밍>은 폴란드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의 작품으로 2019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초연한 바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 ‘베를린 샤우뷔네 <햄릿>’(2010), ‘고골의 꿈’(2010), ‘델루즈(DELUGE): 물의 기억’(2015) 등 몇 편의 해외 작품들을 초청한 바 있으나, ‘동시대 창작초연 중심의 제작극장’이라는 목표 아래 대부분의 작품들을 국내 초연들로 채웠다. 이번 <더 보이 이즈 커밍>이 국내 창작초연 작품은 아니지만, 폴란드의 시선으로 5월의 광주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올해 5월 ‘휴먼 푸가’와 함께 극장의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것에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것 이라 생각하여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하였다. 한국에서 시작해 폴란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광주의 아픔이 1980년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는 5월, <휴먼 푸가>와 <더 보이 이즈 커밍>이 연이어 공개됨으로써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아픔이 반복되지 않은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목적이다.

30대 젊은 창작자의 발언, 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과거

이번 시즌 프로그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작품이 30대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1930년대부터 1950년까지의 만주를 그린 <왕서개 이야기>(작 김도영/연출 이준우),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의 아픔을 이야기한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작/연출 김지나), 기독교의 역사를 바라본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공동창작/연출 임성현)가 있다. 실제 사건을 겪지는 않았지만 역사를 지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가 그들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역사적 아픔을 풀어가고, 고찰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2020년 시즌 프로그램의 막을 올리는 <왕서개 이야기>(4월 15~26일)는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로 시작해 제작 전 콘텐츠를 사전에 공유하는 작가 발굴 프로젝트인 ‘서치라이트(Searchwright)’를 거쳐 시즌 프로그램으로 안착된 작품이다. 이는 남산예술센터의 단계별 제작 시스템을 모두 거친 것이다. ‘왕서개’라는 인물의 복수를 통해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세계사 아픔을 이야기함으로써 가해의 역사가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말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6월 24일~7월 5일)은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가 낳은 여러 사건의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기억을 무대화했다. 파편화된 기억이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아픔은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경험이 아니라 동시대 우리가 함께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시즌 프로드램 대미를 장식하는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9월 2~13일)는 형식에 잠재되어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예배의 제의성과 연극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제사장의 위치에 기독교가 배제해온 ‘퀴어(Queer,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주류 기독교가 독점해온 사랑, 공동체, 믿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퀴어를 둘러싼 불안과 혐오, 기독교의 위기와 분열을 한곳에 담아내 극장과 연극의 공공성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2~3월, 한․중․일 동아시아의 현대 희곡을 한자리에 모아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2017년부터 잠재력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 완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서치라이트>를 올해도 이어간다. <서치라이트>는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낭독공연과 워크숍, 주제 리서치를 위한 공개토론,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등 발표 형식도 자유롭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제작비 지원을 비롯해 오는 3월 극장, 관객, 기획자,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격년으로 진행해오던 일본과 중국의 낭독공연을 처음으로 동시에 추진한다. 오는 2월과 3월, <일본희곡 낭독공연>(2월 21~23일), <서치라이트(Searchwright)>(3월 3~13일), <중국희곡 낭독공연>(3월 24~29일)을 차례로 선보임으로써 동아시아의 현대 희곡을 한자리에 모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불어 남산예술센터는 작년 한 해 동안 특정 회차를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공연을 진행해오며 장애인 관객의 공연 관람 접근성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지난 12월 ‘극장 접근성과 장애 관객 서비스’ 포럼을 통해 이를 좀 더 구체화 하고 확장해 장애 관객들의 극장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을 이어온 바 있다. 2020년 시즌 프로그램에서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해 장벽 없는 공연 문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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