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글 옮김

미국의 세계적 갤러리인 페이스(Pace) 갤러리가 중국 베이징 갤러리촌인 '798예술구'에 있는 '페이스 베이징'을 최근 문을 닫았다. 페이스 베이징은 2043㎡(약 618평) 넓이 대규모 갤러리다. 뉴욕에 본사를 둔 페이스는 11년 전인 2008년에 미국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베이징에 지점을 열어 화제가 됐다. 이후 서구 갤러리들이 뒤를 이어 중국 땅을 밟는 계기를 만들었다. 장샤오강, 위에민쥔, 장환, 쑹동 등 서양인에게 인기 있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과, 알렉산더 칼더, 솔 르윗, 리처드 터틀 등 중국인에게 인기인 미국 현대미술 작가 전시를 해왔다. 페이스는 런던, 제네바, 팰로 앨토 등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베이징 외에 홍콩과 서울에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 베이징이 11년 만에 문을 닫으면서 미국 현대미술의 중국 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중 미술품 사이에도 관세 전쟁 발발

페이스 갤러리 설립자인 아르네 글림처(Glimcher) 대표는 미국 미술 잡지인 아트뉴스(ARTnews) 인터뷰에서 "지금 베이징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미술품 미국 수입에 관세를 매기는 것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 미술작품의 중국 수입에 관세를 매기는 것 때문에 중국에서 미술 사업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직접적으로 미·중 무역 전쟁의 피해를 언급했다. 페이스 갤러리는 다루는 작가 중 16%가 중국 작가이기 때문에 특히 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 7월부터 2000억달러(약 236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관세를 매기고 있으며, 올해 5월에는 이를 25%로 대폭 올린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중국산 미술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까지는 미국에 미술품이 수입될 때 관세가 없었는데, 이제 유독 중국산 작품에만 관세를 물리는 것이다.

국제정치 바람 타는 미술시장-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소장하고 있든 원산지가 중국인 미술품, 골동품 등은 무조건 관세를 물리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중국 미술품 소장자가 작품을 해외에 팔 때, 미국 경매 회사에 내놓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에서 중국 미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지금은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뉴욕 지사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 비중도 감소할 수 있다. 2017년 기준 미국에 수입되는 미술품 중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수입 미술품의 2.7%인 2억8000만달러(약 3300억원)였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이후 중국 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사치품에 대해 38%의 관세를 붙이고 있다. 너무 높다는 비판으로 관세를 점차 내리고 있지만 미국 미술품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글림처 대표는 "두 나라의 정부가 문화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문화가 희생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 위축…파리 부상

세계 미술시장은 최근 들어 여느 때보다도 국제 정세의 바람을 많이 탄다. 최근에는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유럽의 경제·금융 허브로서 런던이 가지는 불확실성 때문에 유럽 미술시장의 중심을 런던에서 서서히 파리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미술의 최고 갤러리로 꼽히는 데이비드 즈워르너(David Zwirner) 갤러리가 파리에 지사를 내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데이비드 즈워르너 대표는 "브렉시트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올해 10월부터 런던에 있는 우리 갤러리는 유럽 지점이 아닌 영국 지점이 된다. 우리는 유럽 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었던 파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문화의 중심이 뉴욕으로 옮아가면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소외되었다. 아트바젤과 UBS가 낸 보고서인 '아트마켓 2019'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열린 미술 경매시장 낙찰총액 비중은 미국(44%), 영국(21%), 중국(19%) 순으로 많았고, 프랑스는 6%로 4위였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그동안 파리가 뉴욕이나 런던에 비해 지나치게 프랑스 국내 미술에 치중했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 브렉시트 영향으로 앞으로 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과 파리의 대표적인 국제아트페어 분위기에도 변화가 있다. 런던 국제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는 파리 피악(FIAC)보다 지명도나 방문객 수에서 늘 앞섰다. 그런데 작년부터 피악을 찾는 컬렉터들 숫자가 늘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런던의 프리즈보다 파리의 피악에 방문객이 더 많았던 점과 딜러들이 런던보다 파리에서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며, "세계 미술 딜러들이 파리를 비즈니스하기 좋은 곳으로 다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6월 프랑스의 대표적 미디어 그룹 소유주인 파트리크 드라히 회장이 소더비를 인수하면서,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모두 프랑스인 소유가 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