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는 2020년 1월 28일~2월 9일까지 아카이브 사진전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이 전시 될 예정이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공간이 없으면, 시간은 어디에 기억될 것인가”
학림다방, 시간이 멈춘 곳에서 흐른 시절

학림다방, 1956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60년 넘게 종로구 대학로 119번지 한자리에서 세대를 넘어 성업 중인 공간이다. 서울대학교가 있던 당시부터 지성들의 단골다방이자 ‘학림사건’ 의 발원지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곳은 이후 오랜 세월을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으로, 서울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자 혜화동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로 자리지킴을 해왔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는 ‘미래유산’이기도 하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이번 전시 <학림다방, 30년 _ 젊은 날의 초상>은, 학림다방을 30년 간 운영해오고 있는 운영자이자 드러나지 않은 사진가로서, 서울의 문화예술 중심지인 대학로를 스쳐간 많은 예술인들과 대학로의 거리 풍경들을 기록한 이충열 씨의 사진들을 공공의 자산으로 나누고 아카이빙하기 위한 전시이다. 전시는 <젊은 날의 초상>, <창문 너머로 흐른 시절들>, <학림다방> 3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젊은 날의 초상
고 가수 김광석, 안치환을 비롯해 송강호, 황정민, 설경구 등 지금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주역이 된 배우들의 초년시절, 가수이자 연출가 김민기, 이상우 등 공연으로 대학로의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온 이들까지, 30년 동안 필름 안에만 담겨있던 예술인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불러낸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창문 너머로 흐른 시절들
학림다방 내부에서 창밖을 통해 바라 본 풍경. 같은 장소에서, 십 수 년 동안 여러 다른 장면들을 담은 진귀한 사진이다. 민주항쟁이 한창이던 80년대 ‘데모’행렬부터 90년대 대학로를 일상의 배경으로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 2000년대 월드컵 축제의 열기까지, 대학로의 모습이자 우리 현대사의 장면들이다. 급변하는 서울 도심에서 사라지지도 허물리지도 않고 수십 년을 자리지킴 한 학림다방의 차창 밖으로 30여 년의 시절이 지나간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학림다방
2층의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학림다방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춰서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무탁자와 커피 향, 흘러나오는 클래식음악소리도 그대로. 바뀐 게 있다면, 그 공간 안에 머물렀다 간 사람들뿐이다. 시인 김지하와 윤구병, 홍세화부터 이름 모를 시민들까지, 옛 시절의 버내큘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학림다방의 내부풍경 사진들은 그 자체가 소중한 시각문화유산이다. 

전시는 1월 28일부터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2주간 이어지며,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만날 수 있다.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서울 대학로에 수십 년간 자리해 온 <학림다방>의 주인장인 이충열 씨는 마치 학림다방처럼 한 자리에 정주한 채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로서 30년 동안 카메라의 눈으로 대학로를 흐르는 숱한 시절들을 지켜보았다. 74년 개설된 YMCA 사진학원 1기생이자 군대에서 ‘사진병’이었던 그는 87년도부터 학림다방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대학로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보도자료용 사진이 급하다하면 달려가서 인물사진부터 공연사진까지를 찍고, 귀퉁이에 마련한 암실에서 곧바로 인화해 건네주곤 했다. 이것이 외부에 알려진 그의 ‘사진 이력’이라면, 그가 학림다방에 찾아든 인물들과 창밖을 내다보며 일상의 풍경과 여러 역사적인 시위, 축제의 장면들을 찍어 온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명 문화예술인들의 초년시절부터 대학로의 변화하는 거리풍경까지 ‘버내큘러’가 가득 담긴 소중한 기록사진들이 그렇게 얻어졌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이번 전시 <학림다방 30년 - 젊은 날의 초상>은 그의 첫 전시다.

어릴 적에 나는 내 얼굴이 아주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에 나온 내 얼굴은 내가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건 카메라가 잘못된 것이든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일거라 생각하면서, 사진 찍히는 걸 아주 싫어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자리에서건 사진을 찍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을 수 있을까 궁리한 것이, 사진을 계속 찍는 계기가 된 것 같다.
 1974년인가 YMCA에 사진학원이 처음 생긴 해에 1기로 등록했는데, 연세가 많으신 최수길 선생님이 수강생들을 가르치셨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안셀 애덤스 같은 사진가들처럼 멋진 흑백사진 찍는 법을 배울 줄 알았는데, 주로 원판필름 수정하는 법, 화공약품을 저울에 달아 현상약 만드는 법 등을 배웠다. 당시 겉멋이 잔뜩 들어서는, 카메라가 좋지 않아 좋은 사진을 못 찍는다고 여겼다. 장비욕심은 많은데 돈은 없으니, 당첨되면 라이카 핫셀블러드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주택복권을 사기도 했었다.
 그러다 입대를 했는데, 운 좋게 국방대학원 비서실에서 사진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의무와 취미가 겹친 행복한 시기였지만, 제대하고는 학업과 취업 등으로 사진과 멀어지고 꿈만 꾸는 어려운 시절이 이어졌다.

학림다방, 30년 _젊은 날의 초상

 내 생에 행운이 찾아온 것은 1987년이다.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을 운영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 것이다. 서울대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은 나 같은 사람은 몇 번 밖에 못 가본 다방이었다. 75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다가 결국 새 주인을 찾는 중이었다. 실내 분위기도 클래식음악이 흐르고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진지하게 토론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유선방송 가요에 나팔바지를 입은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학림다방을 시작한 것은 87년 3월 20일이었다. 나는 먼저 음악을 클래식으로 바꾸고 3월인데도 주렁주렁 걸려있던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치웠다. 집에도 가지 않고 소파를 붙이고 잠을 자면서 내가 동경했던 옛 학림다방의 모습으로 하나씩 하나씩 어색하지 않게 고쳐나갔다.


 옛 학림의 모습을 얼마나 되찾았는지에 관해서는, 이런 일화가 있다.
 지금은 작고하신 문인 이덕희 선생님은 서울법대 시절 ‘학림다방 비품’이라 불릴 정도로 단골손님이었다. 그런 분이 나중에는 크게 실망하여, 아예 학림이 있는 대학로 방향으로는 다니지도 않고 창경궁 쪽으로 에돌아 다녔다. 어느 날, 소설가 정찬 씨가 이덕희 선생과 식사를 했는데, 식후에 학림에서 커피를 하자고 권했더니 이덕희 선생이 한사코 싫다하셨다 한다. 변해서 나는 안 간다고. 어떻게 변했기에 저러실까 싶었던 정찬 씨는 자기가 한번 올라가 보겠다며 학림엘 혼자 왔다. 그런데 변했다던 학림은 예전 그대로 클래식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분위기가 아닌가. 결국 함께 올라와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이덕희 선생님을 내가 알아보았다. 그 과정이 정찬 씨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에 한 줄거리로 나온다. 학림의 단골이라 할 수 있는 여러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선생님과의 교류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80년대 90년대, 대학로에서는 민주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그걸 막는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거리는 소음과 최루탄냄새가 가득했다. 그 시절 학림다방은 학생들이나 데모하는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장사는 잘되지 않았지만 학생운동의 시발점인 학림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이 있었다. 학림의 창밖으로 대학로 거리의 데모 장면을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연우무대’가 신촌에서 대학로 극장으로 옮겨오고 나서부터는 연우무대의 연극사진을 찍게 된다. 김민기, 이상우, 김석만, 김광림 등 서울문리대에 다녔던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단골손님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때 연우무대에 지금은 유명한 대배우가 되어있는 송강호 씨가 신입 단원으로 연극 <동승>에서 조연을 맡고 있었다. 지금처럼 유명해 질줄 알았으면 사진을 많이 찍었을 텐데.


 ‘학전소극장’에서도 <김광석 콘서트>, <뮤지컬 지하철1호선> 등 많은 공연이 열렸다. 가수 김광석의 빛나던 시절과 설경구, 황정민 그리고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만큼 열심히 활동 중인 여러 배우들의 초기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학림다방 한 장소에서 30년 넘게 지켜본 사람들, 주변의 풍경들,,, 사진을 보면 모든 것들이 참 많이 변해 가고 있는 걸 느낀다. 그동안 학림다방에 오신 손님들을 한분한분 촬영했으면 지금쯤은 우리나라 근대인물사가 되었을 텐데 그걸 기록하지 못한걸 보면 유능한 사진작가의 자질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여기에 보여 드리게 되는 사진들은 30여 년이 지나고 보니 세월이 귀한 사진으로 만든 것 같아, 오래 동안 사진기를 놓지 않은 보람을 느낀다.

학림에서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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