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 김한정 기자
  • 승인 2019.12.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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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중구 명동길에 위치한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에서는 2019. 12. 19 ~ 2019. 12. 31까지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이 열릴 예정이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는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백곤(미학, 서울시 공공미술 학예연구사)


작가 김순선은 인간 문명이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과학적 탐구를 꾸준히 해왔다.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연구개발(R/D) 관리자로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정보사회의 핵심기술인 반도체, 통신, 컴퓨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한 그가 어느 순간 과학적 이성과 인간의 감성 사이에서 특정한 깨달음을 얻고 본격적으로 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은 그가 평생 견지해 온 과학적 기술을 통한 자연과의 공존을 표현하는 것이자, IT 과학기술인으로서의 사명을 다른 방식으로 완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공존의 의미는 인간의 이성이 신적 세계를 과감히 넘어서서 자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여 스스로 신의 영역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를 깨우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 공생은 반성과 성찰을 근간으로 하며,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인지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인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김순선은 자연을 과학이나 이성의 인식 틀이 아닌 예술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감성이 또한 이성을 통해 지각되듯이 그의 예술 활동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가 말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살펴보자.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과학자에서 예술가로

김순선이 보편적 법칙을 통한 과학적 지식, 즉, 합리적이고 인과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자에서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결심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물론 그 깨달음은 그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가 그의 영혼 속에 태초부터 내재하고 있었던 예술적 심미안이 있었겠지만, 자신의 길을 가다가 뒤늦게 그 깨달음을 실천하겠다는 용기를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술에 대해 알고자 하는 그의 관심과 열정은 10년 동안의 철저한 연구와 리서치를 통해 예술의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추구하여 진행된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 ‘과학적 기술을 예술에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와 ‘예술적 콘셉트를 어떻게 기술에 포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뿐 예술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링크된 플랫폼 인터페이스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구분조차 의미 없음이 되겠지만, 예술과 과학은 각각의 영역에서 엄연히 다른 인식 틀과 경험을 가진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과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터득하기 위해 그는 과학자들과 함께 과학적 지식의 근본 원리와 인간사회의 쓰임에 대해 토론하고, 더불어 꾸준히 예술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는 실증성과 논리성을 갖춘 담론들 중 과학이 되고자 하는 담론인 과학적 지식, 즉 푸코가 일상적인 담론인 사브아(savoir)를 고고학적으로 탐구한 것과 같이 예술의 일상적인 담론과 비담론을 모두 경험하며 예술적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는 미술계의 흐름을 익히기 위해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고, 전 세계 미술관 홈페이지를 매일매일 방문하고 미술 저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동시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이 이슈가 되는지 꼼꼼히 분석하였다. 그리고선 그는 미지의 세계, 혹은 새로운 세계를 탐구한다는 열정을 꾸준히 확장시켜 자기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2년간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면서 기본을 다지고,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7년간 미술계에서 작가로 자신의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과학자의 길을 묵묵히 지켜왔다. 매일 아침 2시간, 저녁 2시간씩 최소 4시간을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하면서도 과학자로서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였다. 그만큼 그는 철저하게 이성적이면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예술적 열정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과학적 법칙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던 그는 이제 예술작품을 통해 사회와 자연의 새로운 지각 틀을 발견하고, 작품을 통해 정서적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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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향한 공생의 메시지, 지의류

그가 화가로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는 ‘지의류’이다. 지의류(Lichens, 地衣類)는 이끼와 비슷한 원생생물인데, 균류(곰팡이류)와 조류(물속에서 사는 색소체 식물)가 복합체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대표적인 공생 생물이다. 이 지의류를 통해 그는 자연과의 ‘공생’을 이야기한다. 지의류는 영하 100도에서도, 진공에서도 살 수 있는 생물이지만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 대도시에서는 결코 살 수 없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심해 북한산과 도봉산에서조차 살 수 없다는 지의류는 그 흔적으로만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의류에 관심을 가졌다. 생태학자들이 공기오염을 측정하는 지표 식물로 삼았다는 지의류의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를 찾아다닌 김순선은 지의류가 각 지역의 풍토와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빛깔과 형태와 색을 담아내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자연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인 지의류를 단지 과학적 지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인 지의류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매료된 것이다. 자연의 생물이지만 그 속에 아름다움의 속성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는 지의류는 그 모습 자체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는 지의류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도시와 산천을 다니며 바위틈이나 벽면, 나무껍질에 붙은 지의류를 찾아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이끼와도 같은 지의류를 발견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과 광합성을 통해 공생하는 지의류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 등 하나하나 정성을 들이며 전국 곳곳의 지의류를 담아냈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균류와 조류, 양자의 결합으로 공생하는 지의류는 포자를 통해 유성생식을 하며 바위틈에서도 넓게 퍼져나간다. 그는 지의류의 속성과 생태, 종의 비교분석을 통한 과학적 지식을 쌓기 위해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이 지의류를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그는 인간의 눈으로 지의류를 바라보길 원한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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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꽃 핀 아름다운 그림

한때 서울의 중심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번화가였던 명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동대성당의 디아트플랜트 요갤러리의 전시는 작가 김순선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에서 사라진 지의류를 작품으로 다시 도시 한복판에서 선보인다는 의미가 크겠지만, 그는 단지 지의류가 아닌,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안에 내재된 예술적 감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라 하겠다. 그것은 또한 도시의 개발을 위해 버려지고, 기억에서 지워진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결코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인간 본연의 근간인 자연을 기억하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그의 지의류는 복잡한 도시망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한 눈꽃송이처럼 퍼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다. 그의 표현기법은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선과 면으로 확장되는데,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지의류의 모습 그 자체를 드러낸 것이다. 2009년 계룡산에서 만난 너럭바위의 지의류에서부터 미국 뉴저지, 옐로스톤 공원, 스페인 그라나다와 우리나라 장령산, 해인사, 고창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지의류를 표현한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나는 지의류를 그릴 때, 지의류가 바람을 통해 포자로 이동하고, 떨어진 자리에서 나는 생태를 염두 해 둔다. 이는 내게 있어 물감을 떨어뜨리고, 겹쳐 떨어뜨리고, 높낮이를 달리하여 떨어뜨리고, 던지고, 흩뿌리고, 물감의 농도를 달리하고, 톡톡 치고, 자유낙하로 떨어뜨리는 등등의 행위와 같다. 내게 있어 물감 방울은 바위나 나무껍질에 안착하는 지의류 포자와 다름없는 것이다.” 작가는 각각의 지역에 생태하고 있는 지의류를 단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그 지의류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예술적 교감을 통해 살아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는 때로는 점묘법으로 표현하거나 액션페인팅처럼 흩뿌리는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각각의 작품에 맞게 사용한다. 수억 년의 시간을 담아내는 ‘생물의 시간’을 그것들의 생성 방식 자체로 표현하고자 한다. 때론 동그랗고, 또 때론 길쭉한 선들이 복잡한 회로망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꽃처럼 피어나기도 한다. 마치 추상회화와 같이 복잡하면서도 균질한 질서와 패턴을 가지고 있는 그의 회화는 ‘지의류’를 그렸다는 사실을 감추더라도 이미 조화로운 구성과 형식미를 갖춘 훌륭한 작품이다. 또한 양식적으로 구상과 추상이라는 경계로 구분 짓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바라보는 것 자체로 편안하고 따뜻하다. 마치 겨울철 눈꽃을 바라볼 때의 신비로움과 조감적 시선에서 대자연을 내려다 볼 때의 경외감이 들거나, 때론 비행기에서 밤이 내려앉은 도시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반짝이는 불빛들의 향연과도 같이 아름답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김순선의 최근 작품 제목은 <화엄사에서>, <횡성에서>와 같이 격 조사인 ‘~에서’로 끝난다. 그가 이전 작품에서 명명했던 <AE-L>(Anti-Entropy Lichens)이 직접적으로 사회와 자연의 공생을 표현하였다면, 최근 작품에서는 보다 예술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은유적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의류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만들기 위해 특정한 지역을 연구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그의 행위는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벗어나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집중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지의류의 재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중요하고, 수 만년 동안 형성된 그 지역의 생태와 시간을 담에 내는 것이다. ‘불영사에서’ 그가 느꼈던 감성을 전달하고, 그 장소의 시간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자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그가 평생 몸담고 연구한 과학적 이성이 발현되는 표면이 된다.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자연을 담은 김순선의 예술 지형도 - 김순선展

인간의 실존적 깨달음이 만들어낸 최고의 과학적 사유가 이성이지만, 그 이성을 흔들어 더욱 강력한 이성을 가능하게 하는 비사유의 감성이 바로 예술인 것처럼 그의 작품은 과학적 분석을 넘어서서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향한다. 이것이 김순선의 그림이다. 물론 그의 그림이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사회적 혁명을 유도하는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겠지만, 그의 예술적 여정은 단지 환기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최근 지의류 그림에 지하철 노선도를 그려 넣는 등 예술적 상상력을 가감 없이 실험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지의류의 재현을 넘어 예술가로서 그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읽혀진다. 약 20여년을 준비한 작가로의 삶에서 예술가가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과 예술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의 자연적·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말이다. 지의류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하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순선의 예술적 지형도가 앞으로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가 사뭇 궁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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