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토포하우스에서는 2019. 12. 18(수) ~ 2019. 12. 24(화)까지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작업노트

눈앞의 풍경은 언제나 빠르게 뒤로 스쳐 지나갔다. 달리고 또 달리고, 쉬지 않고 달려 나아갔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왜 그렇게 달려야만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동일하게 인식시키는 기억 또는 추억! 6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굳게 닫아놓은 시간의 문을 나서면서 그 문 안쪽의 오래된, 지치고 아픈 내 기억들을 소환해 본다.

이순, 지천명, 불혹, 이립, 약관을 지나 지학의 나이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오래된 기억의 시작에 엄마가 차가운 그리움처럼 서 있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어느 순간 또렷이 떠오르는 기억 하나, 엄마가 평생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내 어릴 적의 부엌... 나에게 그때의 그 부엌은 엄마의 영원한 은신처이자 해방구로서 시집살이의 설움을 달래던 곳으로, 그곳은 늘 끼니를 걱정하고 가난을 이겨내고자 했던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차 있던 장소이며, 8남매를 키우고 자수성가시켰던 고달팠던 한 여인의 공간이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나는 우리 엄마가 학교를 다녔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학력에 관한 일체의 사항을 물어 확인해 본 적도 없었다. 그것을 알려고 애를 쓴 적도 없었다. 어쩌면 물음 자체가 슬픔이기에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을 뿐이었다.

고립되고 폐쇄됐던 부엌 안에서 시집살이의 엄한 눈총을 견뎌내며, 글 한 자 못 배우고 마음 조리며 살았을 엄마의 남루(襤樓)에 부지깽이로 벽에 휘갈겨 쓴 ㄱㄴㄷㄹ이 나에겐 슬프다. 그리고 아프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세월은 흘렀고 부엌의 벽들은 검게 그을렸다. 수북하게 쌓인 먼지들과 함께...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곳에 엄마는 없다. 그저 그 벽들처럼 검은, 시리도록 검은 기억들만 남았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검게 그을린 벽과 마주앉아 자식들의 무사와 안녕만을 빌며, 웃는 얼굴로 따뜻한 밥을 내주던 엄마의 초상에 그리움만 차갑게 번식한다. 오래된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아프게 웃었고, 그 기억 때문에 나는 울었다.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거칠 것 없던 나이를 지나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불러도 대답 없는 당신이 여전히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 삶을 돌이키려 한다.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내 기억의 시작으로, 당신이 서 있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검은, 그렇지만 따뜻했던 기억을 찾아서...

2019. 이평수

이평수 사진展 '검은 기억'

이평수는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후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22, 24대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26대 한국사진작가협회 부이사장 역임, 한국프로사진가 협회 회장을 역임한 후 현재 스톡사진가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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