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마포구 와우산로에 위치한 대안공간 루프에서는 2019. 12. 04 ~ 2019. 12. 13까지 기억장치 - Virtual memory가 전시 될 예정이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윤제원


사이버스페이스는 기억장치의 집합체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수많은 영상, 이미지 그리고 텍스트가 코드화 되어 저장된다. 정보는 웹을 통해 서버에 저장되고 게임의 정보 역시 디지털코드로 저장되어 재생된 결과가 우리가 사이버스페이스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총아다. 사이버스페이스가 보다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그 방대한 데이터를 유저들이 이용하다 보면 그것은 어느새 사이버스페이스를 넘어 현실의 우리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온라인의 기억이 오프라인의 기억만큼 저장되어 그것을 초과하는 지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한다. 특이점은 미래기술적 용어이지만 게임계에선 아주 친숙하게 통용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후, 누구나 사이버 시대를 말하지만, 정작 누구도 사이버 시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 게임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이해하는데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사회적으로도 한국문화의 아이콘이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본 전시기획을 구상하면서 PC방의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화려한 게임포스터가 걸려있는 입구에 들어서서 컴퓨터 앞에 앉아 사이버스페이스에 진입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던 PC방. 내가 언제 어느때 방문해도 나의 전용석을 예약석으로 비워 놓았던 사장님의 배려덕에 PC방은 나의 현실과 가상을 서로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오래 상주함에 따라 나의 가상은 현실보다 중요하게 되어 가상의 세계 속에서 한없는 충족감을 가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가상에서 만난 동료들이 오프라인에 모이고 우정을 키워 현실의 친구들 보다 더 막역한 사이가 되기도 했고 가상에서 획득한 아이템들을 판매해 현실의 재화들을 획득하기도 하였으니, 현실과 가상이 혼재한 헤테로토피아였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개인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 과몰입(過沒入)하였고 게임과 예술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게임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도를 수반한 전시를 희망하였다. 물론 게임이라는 서브컬쳐에 과몰입한 유저들만이 이해할 만 한 '서브컬쳐의 서브컬쳐'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해보았는지 그 몰입도에 따라 해당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보다 전문적이고 미시적인 연구가 결국은 거시적인 실체를 탐구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본 기획은 전시 자체를 하나의 게임으로 상정한다. 관객은 그 속으로 진입하고 플레이 하면서 경험하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게임 속에서 발생하는 시뮬라크르의 단계를 추적하게 될 것이다. 허나 우리는 각자가 독립적인 기억장치로서 관객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게임의 인식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담론도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순수한 시뮬라크르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게임이나 나름의 세계관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임무가 있다. 게임의 환상성에 심취한 기간 동안엔 타인과의 경쟁, 즉 PVP(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경쟁)관점에선 우위를 점하긴 힘들다. 게임 속의 나무를 나무로 인지하는 게 아닌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구조물로 파악하고, 스토리텔링 속 사연이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고 애지중지 하고 있을게 아니라 효율성을 따져 아이템을 세팅하고, UI(User Interface)를 편집하고, 게임 내에서 공식적으로는 제공되지 않지만 게이머들 스스로가 찾아내고 개발한 수많은 정보들과 보조 프로그램들을 활용하는 등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게임에서 최정점에 오르는 게이머들은 겉보기엔 이 환상성이라는 전체 투시적 체계에서 진정한 영웅의 지위에 올라선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환상성의 세계에서 가장 파편화 되고 모듈화 된 조작적인 진실로서의 게이머들, 몽타주인 것이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신창용(b.1978), 안가영(b.1985), 은유영(b.1981), 남진우(b.1985)의 작품들이 등장하는 전시공간의 1층 스테이지는 이러한 게임 속에서 작동하는 이미지의 변화를 미학적으로 해석하고 그 의견을 제시하는데 있다. 그리고 두 층 사이를 개입하는 midiDICE(team)의 스테이지에서 관객들은 독립적인 타일(텍스트)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정보를 도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이전 스테이지가 관객이 게임의 세계로 진입하고 이해하는 측면에서 유희로써 게임이 아닌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 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면 박지혜(b.1992), 안가영(b.1985), 함준서(b.1975)의 작품이 등장하는 다음 스테이지는 '기억장치'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의 단계이다. 작가들의 기억장치와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각자의 기억장치를 통해 이 여정을 세이브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 진입하면서 처음 대면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본 스테이지에 이르러 처음 조우하게 되는 것은 인터페이스다. 사이버스페이스 곳곳에 스며든 우리들의 정보들은 지금도 어딘가의 기억장치에 파편적이고 산발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그것들을 컨트롤 하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많은 경우 실패를 맛보게 된다. 잊혀진, 내 것이 아닌, 적응하지 못한 인터페이스에 의해 그 권한은 타인에게 넘겨지고 기억되거나 소거되고 만다. 시공과 인간 속에서 축적된 데이터들은 급기야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적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곧 대상에 대한 시선으로 치환되며 자서전적 기억의 반복과 연계로 인해 시선의 빅데이터가 형성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메커니즘이 방대한 기억(데이터)를 이용한 딥러닝(머신러닝) 기술을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관객 앞에 등장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한 가상의 생명체의 생태계는, 전시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목격되고 전시가 끝날 시점의 데이터덩어리들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이번 전시기획을 위해 일부 참여작가들에게 전시공간과 주변환경을 작가들의 기억장치를 이용해 재생해 주길 주문했다. 전시공간이라는 현실과 작가의 기억장치라는 가상의 조합으로 신체적 안구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증강현실적 시각으로써 전시공간의 모습을 세이브 한다. 따라서 일련의 전시 동선은 게임의 특징을 이용해 사이버스페이스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플레이하고 장소성에 가상을 가미해 구성한 현실과 닮은 가상공간으로 마무리 한다. 이곳은 어디일까. 당신의, 우리의 산책이, 동시대의 아케이드를 마주하며 돌아서는 발걸음에 그 흔적 하나 남기고 공유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이를 통해 관객들이 저장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어느 시점에서 저장을 멈췄든 계속 이어나갔든 또는 기획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했든 이들은 네트워크에 방대한 기억장치의 편린으로서 구축되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동시대 우리사회의 아이콘이자 서브컬쳐에 머물러있는 게임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하고 다방면으로 접근하여 그 정보의 지층의 쌓임이 반복되었을 때 비로서 우리는 게임으로 사이버스페이스의 실마리를 찾고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억장치 - Virtual memory

PC방에 둘러앉아 게임이라는 스페이스 속에서 드래곤을 물리치기 위해, 마왕을 쳐부수기 위해, 최강의 검투사가 되기 위해 함께하며 목숨을 걸었었다. 그 시절 동료들은 지금 곁에 없지만 그곳과는 다른 장소, 미술계에서 나는 새로운 동료들을 모아 내가 경험하고 우리가 경험했던 이야기에 대해 발표하고 듣고 질문하고 있다. 그렇게 동시대에 당면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담론을 형성시키고자 한다. 근래에 게임, 인공지능 그리고 예술의 융복합적인 형태인 아트게임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본 기획의 텍스트는 그것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전시가 프로그램이라면 작가와 각각의 작업들은 독자적인 정보 단위인 기억장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디지털의 메커니즘과 유사하게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조합됐다가 다시 각자의 정보량으로 환원된다. 이런 특질로 인해 전시 자체를 아트게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전시와 기획자 그리고 작가의 디지털적 상관관계에 대한 담론이 발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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